원유 70%·LNG 18% 호르무즈 노출…물량 차질 전에도 비용 부담 확대
국제 유가·환율·해상 운임 동반 급등…정유·석유화학·발전 등 산업 전반 압박
산업계 출신 김준호 수석자문위원 “5년 사이 세 차례 공급망 차질로 안정적 가교라 부르기 어려워”
기후솔루션은 10일 이슈브리프 ‘반복되는 위기, 미뤄진 전환: 화석연료 의존에서 에너지 자립으로’를 발간하고, 반복되는 국제 에너지 공급망 리스크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다시 드러내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브리프는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을 단일 사건으로 보기보다, 한국이 오랫동안 원유와 LNG 등 수입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해 온 조달 구조가 외부 충격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분석했다. 브리프는 국제 유가 급등, 환율 상승, 증시 하락이 동반된 이번 시장 반응이 한국 경제의 화석연료 의존 구조가 얼마나 큰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번 브리프는 HD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에서 ESG 기획 및 기후변화 전략팀의 수석매니저를 지냈던 김준호 기후솔루션 수석자문위원이 공동 집필했다. 기후솔루션은 이번 보고서가 온실가스 감축 관점의 일반적인 문제 제기를 넘어, 산업 현장에서 축적된 공급망·조달·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산업과 정부가 함께 검토해야 할 구조적 리스크를 짚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별개의 과제가 아니라 하나의 공급망 문제로 보고, 외부 충격이 기업 비용과 공공부문 부담, 국가 경제 전반으로 전이되는 구조를 집중적으로 다뤘다고 밝혔다.
기후솔루션 김준호 수석자문위원은 “LNG가 탄소중립의 가교라는 논리는 공급망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때에만 성립한다”라며 “최근 5년 사이 세 차례나 공급망 충격이 반복됐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안정적인 가교라기보다 취약한 경로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김 수석자문위원은 “이제 공적금융은 ‘남의 나라 연료’를 실어 올 배와 인프라보다 국내 전력망과 재생에너지 기반을 안정적으로 확충할 기회에 더 우선적으로 투입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브리프에 따르면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 LNG 수입의 약 18%가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으며, 물리적 공급 중단이 현실화되기 이전부터 시장이 먼저 반응하며 발생하는 ‘비용 폭탄’이 더 심각한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가운데, LNG 운반선 운임은 2월 말 대비 약 650% 폭증한 일일 30만 달러를 기록했다.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운임 역시 일일 약 43만 6000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에너지 도입 비용을 수직 상승시키고 있다. 브리프는 이러한 원자재·운임·환율·보험료의 동반 상승이 정유·석유화학·발전 등 국가 기간산업의 원가 부담으로 즉각 전가되어, 실물 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분석했다.
브리프는 이번 위기를 단순한 중동 리스크가 아니라, 수십 년간 반복돼 온 공급망 충격의 연장선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1979년 2차 오일쇼크, 1990년 걸프전, 2019년 사우디 유전 피습,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3년 홍해 사태에 이어 2026년 호르무즈 위기까지 유사한 충격이 반복됐음에도, 한국의 에너지 조달 구조는 여전히 특정 지역과 특정 해상 경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리스크가 반복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일시적 불운이 아니라 구조적 취약성”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브리프는 미국 알래스카 LNG와 같은 대체 공급 논의 역시 공급 국가만 바뀔 뿐, 여전히 외부 연료와 국제 운송망, 지정학적 긴장, 가격 변동성에 의존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근본 대안이 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공급처를 다변화하더라도 외부 충격에 따른 가격 불안과 비용 전가 구조는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리프는 LNG를 “가교 에너지”로 간주해 공적금융을 집중한 결과, 의존도는 높아지고 외부 리스크가 비용으로 전가되는 악순환이 고착됐다고 짚었다.
해외에서는 이미 위기를 구조 전환의 계기로 삼은 사례가 나오고 있다. 브리프는 유럽이 2022년 가스 위기 이후 REPowerEU 계획을 통해 3년 만에 러시아산 가스 비중을 45%에서 19%로 줄였다고 소개했다. 이는 단순히 공급처를 바꾼 것이 아니라, 가스 소비 자체를 17% 감축하고 재생에너지를 58% 확대해 이뤄낸 변화였다. 브리프는 또 유럽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7개월 동안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168조원의 화석연료 수입 비용을 방어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대만은 해상풍력을, 중국은 재생에너지 제조 공급망을 중심으로 산업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솔루션은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어디서 더 싸게 들여올 것인가’보다 ‘어떻게 외부 연료 의존 자체를 줄일 것인가’가 에너지 안보의 핵심이라는 점이라고 밝혔다.
브리프는 이번 위기를 단지 비용 부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산업 전환의 기회로도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은 세계 LNG 운반선의 74%를 건조하는 조선 강국이며, 이미 대형 선박·해양 구조물·기자재 분야에서 축적한 제조 역량을 갖고 있다. 보고서는 이 역량이 LNG 의존을 확대하는 데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해상풍력 설치선과 청정선박, 전력망 연계 인프라 등 차세대 에너지 산업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국은 지난 11년간 화석연료에 141조원을 지원한 반면, 같은 기간 재생에너지 지원은 11조원에 그쳤다며, 공적금융의 방향만 바뀌어도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자립도를 동시에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24년 한 해 석유·가스 연료비로 160조원이 지출된 현실을 감안하면, 수입 연료에 소모되는 자본의 일부만 국내 전력망과 재생에너지 공급망, 청정산업으로 돌려도 경제적 파급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고 덧붙였다.
기후솔루션은 공적금융의 우선순위 역시 재검토돼야 한다고 밝혔다. 브리프는 전력 생산의 약 60%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구조 속에서 한국전력 부채가 205조원 규모까지 누적됐고,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7차례 인상되며 약 70% 올랐고, 가스요금도 38.5% 인상됐다고 짚었다. 또 그동안 LNG 운반선과 화석연료 인프라 중심으로 배분돼 온 자본을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를 함께 높일 수 있는 전력망·재생에너지·청정산업 분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후솔루션은 정부와 공적금융 기관이 이번 위기를 단기적인 수급 불안 대응 차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에너지 조달 구조와 투자 우선순위를 전면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브리프는 에너지 포트폴리오 리스크 평가 강화, LNG 관련 신규 공적금융 재검토, 재생에너지 및 청정선박 금융 확대, 에너지 자립도 제고를 위한 장기 로드맵 마련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또한 반복되는 공급망 위기 앞에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화석연료 의존이 아니라, 외부 충격에 덜 흔들리는 에너지 체계와 산업 구조로의 전환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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