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 선박의 항로를 거슬러 올라가면: 캐나다 선주민이 한국에 찾은 이유
insights 2025-03-13
가스

LNG 선박의 항로를 거슬러 올라가면: 캐나다 선주민이 한국에 찾은 이유

LNG 산업의 이면...'호재'라는 말 뒤에 감춰진 이야기

박윤경

저는 기후솔루션에 오기 전, 증권사에서 투자자들을 위한 글을 썼었는데요. 옳고 그름의 판단과 별개로, 많은 분들이 투자에 참고할 수 있게끔 이해관계의 논리를 명확하게 담아내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호재를 강조한다’.

가령, 그 중엔 이런 글도 있었어요.

“조선업이 ‘슈퍼 사이클’을 맞이했다.

특히 LNG(액화가스)를 운송하는 LNG선박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현 상황은 LNG선박을 만드는 조선사에는 큰 호재다. LNG선박은 건조에 높은 기술력을 요하기 때문에 값이 비싸고, 똑같이 배 한 척을 팔아도 다른 종류보다 훨씬 더 많은 마진을 남기게 된다.”

이제는 시간이 한참 지난, 예전 글을 새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LNG선박의 호재니 이해관계니 하는 것들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하지만 누구보다 가까이 영향을 받고 있는 나목스 씨와 제시 씨가 제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림 1. 2월 14일 캐나다 웻수웨튼 선주민 나목스 씨와 제시 씨가 기후솔루션 사무실에 방문해 간담회를 열고 있는 모습

웻수웨튼 선주민과 LNG 파이프라인

나목스 씨와 제시 씨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웻수웨튼’(Wet’suwet’en) 선주민*입니다.

 *’원주민’은 문자 그대로 ‘원래부터 살고 있던 사람’을 의미하지만, 일각에선 ‘미개하다’ ‘뒤처지다’ 등 부정적인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본 글에서는 ‘먼저 살다’는 의미를 지닌 ‘선(先)주민’이라는 표현을 대신 사용하였습니다.

LNG선박의 이해관계는 명확합니다. LNG를 실어 한국으로 들여오고, 또 세계 각지로 수출하기. 그런데 LNG가 최종적으로 선박에 실리기까진, 일단 가스를 땅에서 채굴하고, 기나긴 파이프라인을 통해 바닷가에 있는 액화 공장으로 보낸 다음 LNG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는 가스 산지와 액화 공장을 잇는, 총 길이 약 700km의 기나긴 파이프라인이 있고요.

문제는 이 파이프라인의 상당 부분이 웻수웨튼 선주민의 땅을 통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파이프라인을 짓는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수많은 중장비 차량이 오가며 넓은 숲과 습지가 개간되었습니다. 이에 순록, 무스와 같은 대형 포유류 동물들의 이동경로가 차단되고 다른 야생동물들도 기존 서식지를 떠났습니다. 또, 파이프라인이 강 바로 아래를 지나게 되면서 물은 이전과 같은 청정함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깨끗한 물을 필요로 하는 연어 등의 어류는 더 이상 번식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렇게 웻수웨튼 선주민의 사냥터, 천연 식수, 식량이 모두 파괴되면서 말 그대로 ’생존’에 대한 문제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선주민들은 십여 년의 시간 동안 파이프라인 건설에 반대해왔습니다. 나목스 씨와 제시 씨는 그 선봉에 섰고요, 자신들의 영토에서 장벽을 세워 차량을 막아섰습니다. 이에 경찰은 제트보트부터 헬리콥터, 드론, 열적외선 카메라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선주민들을 감시했고, 실제로 100명이 넘는 선주민과 활동가들이 체포됐습니다. 사전 회의에선 “모든 폭력적 수단을 써서라도” “이 지역을 멸균하라” “선주민에게 접근할 때는 총을 숨겨라”는 모의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관련 기사).

하지만, 정작 웻수웨텐 선주민은 캐나다 정부에 자신들의 땅을 양도하는 그 어떠한 조약에도 서명한 적 없습니다. 캐나다 대법원 역시 ‘선주민은 그들의 영토에 대한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바 있고요. 그럼에도 정부와 기업은 파이프라인이 설치되는 22,000㎢의 토지를 부당하게 앗아갔습니다. 건설공사를 주도하는 회사는 사업에 동의하는 일부 선주민들과만 계약을 맺은 채 이에 반대하는 족장들의 협의 요청은 거절했고, 정부는 ‘절차를 따른 것뿐’ 식의 태도로 일관해왔습니다.

가장 많은 돈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이 소유하지도 않은 땅에 난입하고 있는데, 각종 수단을 동원해 저항하는 사람들의 편을 가르고 소진시키고 있음에도, 이를 아무도 막지 못하는 상황. 웻수웨튼 선주민은 이런 상황에 오랜 시간 놓여 있습니다.

한국과 LNG 사업

나목스 씨와 제시 씨는 그럼에도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이번 2월, 한국에 왔습니다. 왜냐? 이들의 싸움이 사실은 한국의 ‘이해관계‘를 위해 벌어지는 일들과 관련이 깊기 때문입니다.

우선 앞서 말했듯, 파이프라인을 통해 운송된 가스는 LNG로 가공되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으로 수출될 예정인데요. 이에 활용되는 LNG 수출설비(FLNG)와 LNG선박을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짓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의 ‘기여‘가 컸습니다. 수출용 LNG 공장을 짓는 프로젝트에 지분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나아가, 생산 설비를 2배로 늘리는 계획에 추가 투자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관련 기사). 그렇게 되면 더 많은 가스를 공장으로 운송하기 위해 파이프라인의 확장이 필요해질 수도 있습니다.

 *LNG Canada는 수출을 위해 태평양 연안 키티맷(Kitimat) 지역에 연간 1,400만 톤 규모의 LNG 생산 플랜트를 건설하였으며, 한국가스공사의 100% 자회사인 'Kogas Canada LNG Ltd.’는 LNG Canada의 지분 5%를 보유하고 있음.

서울에서의 일정

그리하여 나목스 씨와 제시 씨의 여정은 한국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난 2월 11일부터 15일까지 4박5일의 짧은 일정 동안 한국가스공사와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면담을 갖고, 기후솔루션 사무실에선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는 공개 간담회를 열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낯선 서울의 곳곳을 오갔고, 그 길에서 고향에서 사냥하던 새와 똑같은 새를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그림 2. 웻수웨튼 선주민 나목스 씨

이들의 이야기는 지난해 넷플릭스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습니다. 제목은 YINTAH, 웻수웨튼 선주민의 언어로 ‘땅’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땅’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자주 말할까요? 갖가지 복잡하고 어려운 용어가 넘쳐나는 현실에선, 다소 단순하고 순진하게 들리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구를 지켜라'라는 거대한 과제 앞에서는 이렇듯 얼핏 순진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땅은 어떤 곳인가요?”
“땅은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땅은 누구의 것인가요?”

웻수웨튼 선주민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땅은 ‘우리’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웻수웨튼 부족은 소유보다는 나누기를 먼저 가르칩니다. 아이에게 사냥하는 법을 알려줄 때에도 자기 것이 아닌, 남에게 나눌 것을 먼저 사냥하라고 일러줍니다.” (제시)

“고향의 강물을 따라가다 보면, 상류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던 곳이 나옵니다. 중류가 제가 살던 곳이고요, 하류엔 조카들과 손자 손녀들이 있어요. 그렇게 강물을 따라 저의 이야기가 모두 흐르게 됩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시면 이 모든 것이 다 연결되는 느낌이 듭니다. 또, 나는 어떤 이야기를 물려줄지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스스로 나 자신이게끔 해 주는 것이 ‘자유’라면, 고향은 자유와 같습니다.” (나목스)

그림 3. 웻수웨튼 선주민의 투쟁을 다룬 넷플릭스 영화 <YINTAH>의 한 장면 ©Amber Bracken

‘호재’의 또 다른 얼굴

LNG 사업이 '호재'가 되는 이야기. 다른 한편에서 LNG선박의 항로를 거슬러 올라가면 존재하는, 나목스 씨와 제시 씨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 두 이야기를 함께 곱씹다 보니 기후와 환경을 위한다는 건 어찌 됐든 우리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 그러니까 이해관계 영역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화석연료를 퇴출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건 결국 우리의 경제, 안보, 먹고사니즘 등등 우리의 ‘이해관계’를 위한 일입니다만…!

그럼에도 ‘왜 기후환경에 신경을 써야 하느냐’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선, 일상의 이해관계보다는 좀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니까요. 설령 내가 사라진 이후에도 여전히 지구는 아름답게 지속되길 바라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후환경이 생사여탈권이 달린 현실이라는 걸 새삼 헤아리는 마음.

이런 마음을 조금이나마 품게 된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일상이 더는 예전과 같이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좋은 일이겠지요…?)

덧붙여, 수많은 사람과 단체가 스스로의 이해를 좇는 동안, 웻수웨튼 선주민들의 땅이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어왔다는 이야기를 위에서 했는데요. 그런데 사실… LNG 사업이 이득이 된다는 믿음은 사실, 많은 부분 허상에 가깝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LNG 사업은 정말 ‘호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