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가요? 산뜻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수소 자체는 물 분자에도 있고, 우주 질량의 75%를 차지하는 원소인 동시에 우리 주변 온갖 물질에 있다고 볼 수 있으니 친숙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수소가 기후 문제까지도 해결해줄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수소에는 대표적인 온실가스를 이루는 탄소분자가 없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다보니 앞으론 발전과 산업에서 주요 에너지 운반체로 활용되어 새로운 과학기술 분야를 만들고 유관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경제에 기여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수소경제를 떠올리면 희망이 부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 수소경제는 모든 면에서 긍정적이기만 할까요?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기후에 친화적인 기술은 결과만 깨끗해서 되는 게 아니라 전체 과정이 깨끗해야 합니다. 수소경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소경제의 원천이 되는 수소가 어떻게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를 봐야 합니다. 만약 수소를 만드는 데,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이 발생한다면 어떨까요?
같은 수소라도 기후 친화적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생산 방식을 보면 됩니다. 수소는 생산 방식에 따라 색깔을 붙입니다.
그레이수소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화학반응을 거쳐 생산하는 방식으로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매우 많이 발생합니다. 과정이 깨끗하지 않고, 기후위기 대응에 유용하지 않은 방식입니다.
그러나 2024년 지금까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수소는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의 수소경제는 기후위기를 악화하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후를 위해서 나온 대안으로 떠오른 아이디어가 오히려 기후위기에 일조하니 참 이상하죠?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게 블루수소입니다. 블루수소는 가스를 고온의 수증기와 반응시키는 개질이란 공정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러나 부산물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그럼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면 되는 거 아냐?”라는 아이디어에서 ‘탄소포집 및 저장(CCS)’이라는 기술이 동원됩니다. 이 기술은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대기 중으로 날아가지 않게 따로 포집해서 모아놓는 기술이고, 이게 블루수소의 핵심입니다.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온실가스가 문제라서 애초에 발생하지 않게 하면 되는 건데, 문제를 만들어 놓고 해소하겠다는 아이디어니까요. 비유하자면, 인스턴트 식단을 즐기다가 병이 나버렸는데, 인스턴트 식단을 줄이거나 끊겠다고 결심하는 게 아니라 식단을 유지하면서 병을 치료하자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게다가 돈 문제도 있습니다. CCS라는 기술이 경제성을 갖춰 지속 가능한 탄소중립 기술이 이 될 것인지 구성원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블루수소 가격이 내려가지 않으면 결국 비싼 에너지원이 되고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하는 상품이 될 테니까요.
화석연료를 활용한 수소 생산의 문제는 사실 경제와 경영학 측면에서도 있습니다. 락인(Lock-in) 효과를 가져와 탄소중립 달성을 늦춘다는 사실입니다. 락인 효과는 경로의존성이라고도 설명하는데, 쉽게 말해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한 번 의존하게 되면, 그 제품이나 서비스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컨대 애플이 만드는 아이폰을 사서 그 운영체제에 익숙해지고 유료 앱도 구매하면 할수록 좀처럼 안드로이드 OS가 탑재된 스마트폰으로 넘어갈 수 없다는 겁니다. 오랫동안 특정 은행이나 금융 서비스에 계좌를 개설하고, 대출, 신용카드, 자동이체 등 경제와 관련된 일상을 연동해 놓고 나니, 더 나은 금리를 제공하는 핀테크 서비스나 블록체인이나 핀테크 서비스로 옮겨가기 어려운 것처럼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블루수소 기반의 수소경제에 더 많은 돈을 들이고, 설비를 확대하면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레이수소나 블루수소 생산을 늘리는 것은 결국 탄소중립을 달성하려고 더 많은 화석연료를 생산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쯤되니 뭔가 이상하게 들리지 않나요?
이렇듯 수소경제가 막 뿌리내리는 와중에 화석연료 기반의 수소경제 기반을 다져놓는다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되는 셈입니다. 막대한 돈이 이미 그레이수소나 블루수소에 투입되고 나면, 정말로 기후 친화적인 수소경제 모델을 갖출 돈이 없어지니깐요. 우리는 잘못된 길을 들어 탄소중립까지 더 멀리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어떤 수소경제로 나아가야 할까요?
바로 그린수소입니다. 그린수소 모델은 화석연료 가치 사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물과 전기만 있으면 됩니다.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뽑아내는 과정인데, 여기에 쓰는 전기의 발전원만 화석연료가 아니면, 정말로 전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없는 청정한 에너지가 되는 거죠. 그래서 수소경제의 중요한 한 축은 발전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재생에너지입니다.
수소경제가 그리고 있는 지속가능하고 깨끗한 방법은 결국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생산한 수소뿐입니다. 정답이 정해진 수소경제 모델이 있는데도, 문제점도 있고 락인 효과로 수십 년은 곤란해질 길로 들어설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기억해봅시다! 지속가능하고 깨끗한 수소경제는 그린수소뿐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