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자동차 리더보드’서 중국 지리에 역전당해… 철강 탈탄소 부진이 결정적 원인
제철소 보유한 유일한 완성차 그룹임에도 ‘녹색 철강’ 전환 지연… 글로벌 ESG 최하위권
현대차 2045년 vs 현대제철 2050년, 엇박자 탄소중립 목표에도 이사회 조율 논의 ‘0건’
유럽발 '2028년 완성차 탄소관세' 도입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현대자동차가 글로벌 공급망 탈탄소 경쟁에서 중국 기업에마저 밀리며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특히 핵심 계열사 간 탄소중립 목표 시점조차 엇박자를 내는 등 이사회의 전략적 대응이 턱없이 부족해, 향후 그룹 전체의 수출 경쟁력이 좌초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9일 기후솔루션이 발간한 ‘한중일 자동차사의 기후 리더십, 철강에서 멈추다: 철강 공급망 탈탄소화의 과제’ 이슈브리프와 ‘기후 대응의 빈 자리: 현대자동차 기후 거버넌스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는 철강 공급망 탈탄소 부진과 이사회의 기후 거버넌스 공백이 맞물리며 글로벌 ESG 경쟁력에 적신호가 켜졌다.
현재 철강·알루미늄 등 기초 소재에 적용되고 있는 유럽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2028년부터 완성차 등 하위 스트림으로 확대 적용될 전망이다. 완성차 무게의 약 60%를 차지하는 철강의 탄소 배출 수준에 따라 기업별 관세 부담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된다. 특히 유럽은 현대차 전체 수출의 약 15%(기아 18%)를 차지하는 핵심 시장인 만큼 공급망 탈탄소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다.
그러나 전 세계 주요 자동차 제조사의 공급망 ESG 수준을 평가하는 ‘2026 자동차 리더보드(Automaker Rating)’ 결과, 현대차는 사상 처음으로 중국 지리자동차(Geely)에 동아시아 1위 자리를 내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평가가 도입된 이후 현대차가 1위 자리를 뺏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기업의 순위를 가른 핵심은 ‘철강’이었다. 현대차는 철강 부문에서 100점 만점에 12점이라는 최하위권 수준의 평가를 받았다.
현대차는 올해부터 일부 차종에 탄소 배출을 20% 줄인 철강을 적용하겠다고 밝혔을 뿐, 전체 철강의 몇 퍼센트를 언제까지 저탄소 철강으로 조달하겠다는 정량적·구체적 목표가 전무하다. 데이터 공시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글로벌 이니셔티브 가입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반면 중국 지리차는 최근 ‘Zeeker MIX’ 모델의 재생가능 철강 사용 비중을 공개하고, ESG 보고서를 통해 ‘재활용 철강 비중 15% 달성’ 현황을 명시하는 등 선제적으로 대응해 순위를 끌어올렸다. 이는 볼보, 테슬라, 메르세데스-벤츠 등 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전과정평가(LCA)를 통해 철강 배출 비중을 투명하게 공시하고, 퍼스트무버연합(FMC) 등 이니셔티브에 가입해 ‘2030년 무탄소 철강 10% 이상 사용’ 등의 구체적 목표를 실행하는 흐름과도 일치한다.
기후솔루션은 현대차와 현대제철의 수직계열화 구조가 ‘공급망 혁신’의 무기가 되기는커녕 ‘탈탄소 지연’의 핑계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현대제철 자동차용 강재의 약 80%가 현대차와 기아로 공급된다. 덕분에 현대제철은 외부 경쟁 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누리고 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현대차 그룹 전체를 ‘탄소 운명 공동체’로 묶어 기후 리스크를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수직계열화의 한계는 당장 2028년 CBAM 규제 앞에서 ‘공멸의 딜레마’로 이어진다. 유럽 수출을 위해 해외 저탄소 철강을 수입하자니 핵심 계열사인 현대제철이 타격을 입고, 기존 고탄소 철강을 고집하자니 현대차의 가격 경쟁력이 추락하는 진퇴양난에 빠지기 때문이다.
최근 현대제철이 전기로-고로 복합공정을 통해 기존 대비 탄소 배출을 약 20% 줄인 강판 양산을 본격화했지만, 이 역시 다가올 관세 장벽을 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두 회사가 CBAM 리스크를 극복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궁극적으로 '수소환원제철'로의 전환을 강력히 가속화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현대차가 2045년 탄소중립을 선언했음에도 핵심 공급망인 현대제철은 2050년을 목표로 하고 있어, 그룹 내 목표 시점조차 심각한 엇박자를 내며 전략적 대응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엇박자와 공급망 리스크를 조율해야 할 현대차 이사회의 ‘기후 거버넌스’가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기후솔루션 분석 결과, 2021년 이후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역임한 독립이사 11명 가운데 기후환경 전문 인력은 전무했다. 또한, 2021년 RE100 선언 이후 2024년까지 4년 동안 연평균 30~40건의 위원회 안건 중 탄소중립 관련 안건은 연 1건 수준에 그쳤다. 글로벌 투자자 주도 이니셔티브인 CA100+(Climate Action 100+)가 제시한 기후 거버넌스 기준을 바탕으로 기후솔루션이 자체 분석한 결과, 전체 6개 평가항목 중 단 2개만 충족하는 데 그쳤다.
기후솔루션은 보고서를 통해 명확한 녹색철강 기준 아래 녹색 철강 사용 현황과 중장기 조달 목표를 구체적으로 공시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철강을 포함한 전사적 기후 대응을 점검할 수 있도록 기후 전문 독립이사 선임 및 교육을 강화하고, 관련 안건 비중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준아 철강팀 연구원은 "한·중·일 자동차사의 탈탄소 전략은 여전히 선언적 수준"이라며 "특히 현대차그룹은 현대제철이라는 수직계열화 구조로 철강 전환에 유리한 고지에 있음에도 지표 성적이 부진한 점은 뼈아픈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CBAM 등 급변하는 통상 환경에서 녹색 철강은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유일한 돌파구"라며 "명확하고 신뢰할 만한 녹색 철강 기준이 없다면 향후 심각한 그린워싱 논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현정 기후금융팀 연구원은 “지금 현대차 거버넌스에 필요한 건 형식적 개선이 아닌 질적 전환”이라며 “이미 갖춰진 체계를 넘어 이사회의 기후 전문성을 실질적으로 보강하고, 그룹 차원의 감축전략을 하나로 정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주주총회가 기후 거버넌스를 실질화하는 분기점이 된다면 기업가치 제고의 결정적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상법 개정 국면에서 시장이 기대하는 건 결국 선언이 아닌 실행의 일관성”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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