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씨레터는 기후 뉴스를 전하는 기후솔루션의 뉴스레터입니다. 이번 포스트는 12월 포도씨레터에 실린 기후솔루션 팀원 인터뷰입니다.
지난 11월,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는 한국 정부가 ‘탈석탄 동맹(PPCA, Powering Past Coal Alliance)’ 가입을 공식 선언하며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습니다. 이 성과 뒤에는 수년간 정부를 설득하고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 온 기후솔루션 팀원들과 시민사회 단체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답니다.
이번 포도씨레터에서는 COP30 현장에서 이 순간을 함께한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 아일린 리퍼트 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독일 출신으로 한국에 정착해 에너지 금융 담당 연구원으로 활약 중인 아일린 님과의 대화를 통해 COP30의 생생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한국과 독일의 기후위기 대응 차이, 그리고 한국 금융 부문이 나아가야 할 길까지 알아볼 수 있었어요.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에서 시작된 기후 활동가로의 여정
포도씨: 안녕하세요, 아일린 님! 먼저 포도씨레터 구독자분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아일린씨: 안녕하세요! 저는 독일에서 온 아일린 리퍼트 (Ayleen Lippert) 라고 합니다. 한국에 온 지는 약 3년 정도 되었고요, 석사 학위 과정을 위해 오게 되었어요. 그전에는 독일 개발은행인 KfW에서 4년간 일했고, 지금은 기후솔루션의 기후금융팀에서 함께하고 있어요.
포도씨: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은 어떤 일을 하는 팀인가요? 그리고 아일린 님은 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요?
아일린씨: 저희 기후금융팀의 전체 목표는 화석 연료로부터의 자금 이탈을 유도하고, 특히 핵심 금융 기관의 참여를 통해 재생에너지 전환을 지원하는 쪽으로 흐름을 바꾸는 것이에요. 저희 팀은 크게 투자자 참여(Investor Engagement)와 에너지 금융(Energy Finance) 두 분야로 나뉘어요. 저는 에너지 금융을 담당하고 있고, 에너지 금융 내에서도 전환 금융(transition finance)를 주로 다루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석탄 화력 발전소의 단계적 폐지를 가속화하고, 석탄에 대한 자금을 재생에너지로 재배치하는 일을 다룹니다.
포도씨: 그렇다면 주로 한국 시장에 초점에 맞춰 업무를 진행하고 계신가요?
아일린씨: 네, 주로 한국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국제적인 관점도 포함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채권을 분석할 때는 한국 시장에 투자하는 국제 투자자나 외국인 투자자까지 고려해야 하거든요. 결국 한국 금융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목표이지만 여기에는 국제적인 참여(international engagement)도 포함돼요.
포도씨: 무척이나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아일린 님이 처음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아일린씨: 아주 오래전 일인데요. 아마 중학교 1학년이나 2학년 때 생물학 시간이었을 거예요.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라는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깊이 인식했거든요. 영화를 보고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영화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나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기후변화에 대해 더 많이 알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던 것 같아요.
포도씨: 기후에 대한 관심이 영화 한 편에서 시작되었네요. 아일린 님은 전 세계 수많은 단체 중 왜 한국의 기후솔루션에 합류하게 되었나요?
아일린씨: 저는 독일 개발은행에서 일할 때부터 현장에서 일하며 실질적인 영향력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컸어요. 한국에서 국제 개발학을 공부한 후,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시민사회단체를 찾다가 기후솔루션을 알게 되어 합류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게 된 것이 정말 행운인 것 같아요. (웃음)
독일에서 온 시선: 한국과 독일의 기후위기 대응 온도 차
포도씨: 아일린 님은 독일과 한국에서 거주하면서 두 나라의 기후 정책 현장을 모두 경험하고 계신데요.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나 정책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두 나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아일린씨: 가장 큰 차이는 법적 구속력의 유무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독일은 석탄 퇴출법(Coal Exit Law)처럼 강력한 법적 구속력을 가진 기후 목표와 관련된 법률이 있어요. 반면, 한국에서는 제가 느끼기에 일부 측면에서 법적 구속력이 약하거나 기후변화에 대한 접근 자체가 아직은 비교적 새로운 영역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포도씨: 의사 결정 과정에서도 차이가 있을까요?
아일린씨: 네, 독일은 지역 사회나 지방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강력한 법적·제도적 틀 안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그것이 정부 논의로 이어지는 상향식 구조 구조가 매우 탄탄해요. 반면 한국은 의사 결정이 종종 하향식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져요. 또한, 한국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소 경제나 스마트 시티 같은 기술적 해결책에 집중한다는 점이 독일과의 차이점인 것 같아요.
포도씨: 재생에너지 보급률 같은 수치적인 측면에서도 차이가 클까요?
아일린씨: 네, 재생에너지 보급률을 보면 독일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60%인 반면, 한국은 10%에요.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화석 연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요.
포도씨: 기후이슈와 관한 일반 시민들의 태도나 일상생활에서의 인식 차이도 있을까요?
아일린씨: 비슷한 면도 많지만, 제가 느낀 가장 큰 차이점은 일상적인 대화의 빈도예요. 독일에서는 기후변화가 식탁이나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자주 등장하는 주제인데,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는 일상적인 대화에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저의 경우 기후솔루션에 들어와서 매일매일 이 주제로 대화하고 있지만요. (웃음)
COP30 벨렘의 감격, 한국의 탈석탄 선언
포도씨: 아일린 님, 얼마 전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COP30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행사에 참석하신 주된 목적이 궁금해요.
아일린씨: 네, 기후금융팀에서 COP30에는 제가 혼자 참석했어요. 기본적으로는 저희 팀의 활동을 국제 사회에 대표하는 자리였어요. 특히 저희 팀의 핵심 의제 중 하나인 석탄의 단계적 폐지와 연결된 세 개의 이벤트를 주관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포도씨: COP30 현장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아일린씨: 매우 활기차고 다양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정말 많은 배경, 문화,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일하고 있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다소 압도되는 느낌도 있었지만, 기후변화 해결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을 실제로 보는 것은 정말 멋진 경험이었어요.
포도씨: 와, 정말 벅찬 순간이었겠어요. COP 현장에서 아일린 님께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나눠주시겠어요?
아일린씨: 크게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데요. 첫 번째는 원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노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점이고요. 두 번째는 바로 한국 정부의 PPCA 가입 발표 소식이었어요. COP 기간 중에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감격스러웠어요.
포도씨: 맞아요. 한국 정부의 PPCA 가입 발표는 한국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이 가입 선언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요?
아일린씨: 한국은 여전히 석탄 의존도가 높은 국가예요. 그런 의미에서 PPCA 가입은 실제적인 탈석탄 약속에 대한 압력을 더할 수 있어요. 이는 정부가 석탄에서 더 빠르고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이기도 합니다. 또한, PPCA에는 이미 탈석탄에 성공한 다른 회원국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은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가입한 나라로서, 아시아 지역 전체에 엄청난 파급효과와 의미를 가집니다.
포도씨: 이 역사적인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아일린님을 포함해 기후솔루션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였나요?
아일린씨: 저와 기후솔루션의 많은 팀, 그리고 다른 시민사회 파트너들이 정말 오랫동안 한국 정부의 PPCA 가입을 위해 노력해 왔어요. 저희가 중점적으로 했던 일은 PPCA 측과 한국 정부 간의 지속적인 소통 채널을 유지하는 것이었어요. 한국 정부에 PPCA 가입이 가져올 실질적인 이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동시에 한국 언론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높이는 역할도 했습니다.
포도씨: 이 과정에서 ‘아, 이거 안 되면 어떡하지?’하고 걱정했던 순간이나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을까요?
아일린씨: 솔직히 마지막까지 한국 정부의 PPCA 가입이 확정될지 확신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저희는 결과에 대한 걱정보다는 과정에 집중했어요. ‘만약 이번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다음번에 가입할 수 있도록 우리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라는 긍정적인 자세로 끊임없이 준비했습니다.
포도씨: 마침내 현장에서 PPCA 가입 발표가 이루어졌을 때, 정말 감격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아일린씨: 감사함과 동시에 약간의 자랑스러운 마음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이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죠. 한국은 이제 PPCA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더 많은 조치, 더 신뢰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 그리고 실제로 석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 위한 다음 단계를 밟아야 하니까요.
포도씨: 한국의 PPCA 가입에 대한 국제 사회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일린씨: PPCA 회원국인 유럽 국가들은 당연히 한국의 가입을 환영했어요. 특히 싱가포르처럼 한국의 행보를 매우 기대하고 있던 나라들도 많았어요. 그리고 PPCA 가입을 의제로 삼지 않았던 일본과 같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한국의 가입을 계기로 관심이 촉발되었다고 생각해요.
"모두의 작은 조치가 세상을 바꾼다" 아일린 님이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포도씨: 기후솔루션에서 일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일린씨: 하나의 특정한 순간을 꼽기는 정말 어려운데요. 가장 최근의 일로는 COP30에 참석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에요. 일반적으로는 저의 연구나 정책 권고가 실제로 정부의 논의 대상이 되거나, 파트너들에게 “당신들이 한 일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라는 피드백을 들을 때 보람을 느껴요. 그리고 훌륭하고 열정적인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 자체도 큰 보람이고요.
포도씨: 그럼 반대로, 연구원 또는 기후 활동가로서 지치거나 혹시 번아웃을 느꼈던 순간은 없으셨나요?
아일린씨: 다행히 저는 그런 순간이 정말 없는 편이에요. 저는 일할 때와 일하지 않을 때를 엄격하게 구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열정적인 일일수록 사생활 영역으로 가져가기 쉬운데, 의식적으로 일과 삶의 분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일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포도씨: 일과 삶의 분리를 철저하게 하시는 아일린 님, 정말 멋지네요! 포도씨도 배워야겠어요. 기후솔루션에서 아일린 님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아일린씨: 한국의 금융 부문을 변화시키는 것이에요. 현재 한국에는 화석 연료에 대한 투자가 여전히 너무 많아요. 이 금융 부문의 변화는 공공과 민간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공공 금융 부문이 여전히 화석 연료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민간 금융 부문도 계속해서 투자하는 상황이에요. 이처럼 금융 부문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저희가 이루고 싶은 핵심 목표입니다.
포도씨: 마지막으로 기후변화에 대해 걱정하거나 일상생활에서 행동을 취하고 있는 포도씨레터 구독자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시겠어요?
아일린씨: 많은 분들에게 기후변화 이슈가 다소 압도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분이 이미 많은 것을 하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단지 기후변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생각하고, 저희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것만으로도 시작인 거죠. 작은 조치라도 꾸준히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작은 조치를 취할 때, 그것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발걸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포도씨: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일린 님! 기후솔루션의 기후금융팀의 업무부터 COP30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는데요. PPCA 가입이라는 역사적 성과가 끝이 아니라, 한국 금융 부문의 완전한 탈석탄 전환이라는 다음 단계로 이어져야 한다는 아일린 님의 말씀이 강하게 와닿았어요.
'많은 사람들의 작은 조치가 모여 세상을 바꾸는 큰 발걸음이 된다'라는 희망의 메시지처럼, 저희 포도씨레터 구독자들도 일상에서 기후변화에 관심을 더하고, 아일린 님과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의 중요한 활동에 함께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