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가 들려주는, 우리나라 철강산업 이야기
insights 2025-03-28
철강 석탄

고로가 들려주는, 우리나라 철강산업 이야기

철강과 기후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차근차근 설명해볼게요.

강혜빈 연구원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고로예요. 저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소개 드리자면, 저는 여러분의 생활에 꼭 필요한 철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어요.

철강은 건설, 자동차, 선박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가전제품이나 금속제품을 만드는데도 쓰여요. 철이 없다면? 아마 상상하기 어려울 거예요. 인류는 선사 시대부터 철기를 사용하며 문명을 발전시켜 왔으니까요.

석탄 기반 제철 설비인 고로의 특성

고로는 철광석을 아주 높은 온도로 녹여 철을 만드는 설비예요. 광석을 녹인다고 해서 ‘용광로’라고도 불리지만, 40층 아파트보다 클 정도로 거대한 구조물이기 때문에, 한자로 ‘높을 고(高)’를 써서 ‘고로’라고 해요.

철을 만들려면 철광석에 포함된 산소를 제거하는 환원 과정이 필요한데요, 이때 코크스라는 원료가 중요한 역할을 해요. 코크스는 석탄을 가공해 만든 연료로,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데 꼭 필요하죠. 결국, 석탄은 철을 만드는 또 다른 필수 원료인 셈이에요. 혹시 철을 만드는 데 석탄이 쓰인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산소가 석탄의 탄소와 결합하면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 게 문제래요. 기후위기의 원인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줄여야 하는 그 온실가스 말이에요. 철을 1톤 만들 때마다 이산화탄소가 2톤 이상 배출되기 때문에,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철을 만들 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이는 것이 필수적이에요.  

석탄이 들어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고로(왼쪽)과 이산화탄소가 없는 수소환원제출(오른쪽), 출처: 포스코

탄소배출이 많은 고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철강산업

우리나라 철강산업은 세계6위의 생산량을 자랑할 만큼 규모가 커서 탄소 배출량도  많아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철강산업의 배출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 정도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23년 기준으로 철강 산업의 배출량이 국가 전체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 이상이에요. 왜 이런걸까요?

탄소를 많이 내뿜는 설비인 고로에서 총 생산량의 70% 정도를 생산하기 때문이에요. 제철소 지역인 당진, 포항, 광양에서 가동되고 있는 고로는 총 11대이고, 이 중 고로 5대를 보유한 광양 제철소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제철소예요.  

더 큰 문제는 국가 전체 탄소 배출량은 줄어들고 있는데, 철강산업의 배출량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에요. 2023년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전 해 보다 4.4% 감소했다고 하고, 산업 부문 배출량도 3% 줄었는데, 철강 부문의 배출량만 2.4% 늘었대요. 대형 철강사들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한 상황인데, 어떻게 약속을 지키겠다는 건지 저도 정말 걱정이 돼요.

다 쓴 고로의 수명을 늘리는 개수공사  

그런데 이 와중에 포스코는 원래 15~20년 정도인 고로의 수명을 연장하는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하네요. 이 공사를 개수(改修)라고 하는데요, 단순한 보수가 아니라 사실상 새로운 고로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개수에는 5,000억 원 이상의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데, 이렇게 많은 자원을 투입해서 공사를 한다는 건 2040년 이후까지 고로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어요.

탄소중립을 위해 저와 같은 고로를 빠르게 줄여나가야 할텐데, 고로 가동을 중단하기는커녕 헌 고로를 새 고로로 탈바꿈 한다니요. 현재 고로를 대체하기 위한 기술들은 빠르게 개발되고 있어요. 하지만 철강사들은 고로를 언제까지 몇 대 폐쇄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조차 내놓지 않고, 이후 상황을 봐 가면서 고로를 새로운 기술로 대체하겠다는 식의 모호한 입장만 밝히고 있어요.

시민사회의 요구, 석탄기반 철강 생산을 멈추세요!

시민사회는 수명이 끝난 고로부터 순차적으로 폐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철강사들은 이런 논의에 관심조차 없어 보여요. 저도 사실 빨리 은퇴하고 싶은데,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한다니 힘들기도 하고, 내가 기후위기를 가속한다니 속상하기도 하고, 탄소중립 시대에 걸림돌이 되는 게 큰 걱정이에요.

그래서 지난 2월 11일, 기후솔루션, 충남환경운동연합, 광양환경운동연합, 빅웨이브, 플랜 1.5가 포스코 본사 앞에서 진행했던 기자회견에 저도 참석해서 함께 목소리를 냈어요. 우리나라와 해외에 있는 17개 시민사회가 포스코에 편지를 보냈대요. 현재 진행 중인 광양 제2고로의 개수를 즉시 중단하고 폐쇄하는 것과, 더 이상 석탄 기반의 고로 생산을 지속하지 말고, 지금 있는 고로를 언제까지 어떻게 끌 것인지 계획을 발표하라는 등의 내용을 담아서요.

이제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할 때

2월 11일 시민사회가 연대해 삼성동 포스코 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로 개수 중단을 촉구했습니다.

기자회견에 광양지역 시민사회 대표로 참석하신 한 분은, “고로 개수가 지역 경제에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광양 지역민들의 건강과 장기적인 미래를 생각한다면 제2고로 개수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제철소에서 태어나서 계속 살아왔으니까 무슨 말씀인지 잘 알 것 같아요. 기존에 해왔던 방식을 바꾸는 건 두려운 일이지만, 결정을 늦출수록 미래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것, 세상은 탄소중립의 목표를 향해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철강 산업만 그 변화를 거부하고 뒤쳐지기를 저도 바라지 않아요. 오히려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앞서나가길 바라죠. 그래서 이 소망을 담아 미래세대와 탄소중립이 저를 묶어 견인해가는 퍼포먼스도 진행했어요.

이제 정말 고로를 끄고,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할 때라고 생각해요. 저의 간절한 이야기를 철강사도 들어주면 좋겠어요. 여러분도 제 생각에 동의하신다면, 목소리를 보태주시겠어요? 결정을 미루고 있는 철강사, 탄소중립의 미래를 못본 체하는 철강사에게 여러분은 어떤 말을 하고싶으신가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 저는 이제는 제 일을 내려놓고 제철소를 떠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