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 폐쇄-수소환원제철 전환 빠를수록 생산유발·부가가치유발·고용유발효과 2배 이상 커
독일 상용화 프로젝트에 3조 원 지원할 때 한국은 ‘0원’
설비 보조금 및 리스크 분담 등 정부 로드맵 마련 시급
철강 산업의 탈탄소 전환을 늦출 시, 향후 25년간 국가 경제가 약 1909조 원의 생산·부가가치 효과와 72만 개의 일자리를 스스로 포기하게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조기 전환의 성패를 가를 상용화 단계에 대한 정부 지원 계획은 현재까지 ‘전무’한 수준으로, 적극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기후솔루션이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고로 중심 생산 체제를 유지하며 전환을 늦춘 시나리오와 비교해 고로를 조기에 폐쇄하고 수소환원제철 전환을 빠르게 추진할 경우, 2026년부터 2050년까지 누적 생산 및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약 3287조 원으로 저속 전환 시(약 1378조 원)보다 2.4배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효과 역시 조기 전환 시 약 114만 명의 취업유발효과가 발생해, 전환을 늦췄을 때(약 42만 명)보다 2.7배에 달하는 일자리가 창출됐다. 전환을 늦출 경우 25년간 국가 차원에서 누적 약 1909조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72만 명의 고용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두 시나리오는 고로 중심의 생산 체제를 탈피하는 속도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산업계의 현행 전환 계획을 반영한 ‘느린 전환 시나리오'에서는 2030년에도 수소환원제철 공정이 도입되지 않은 채 약 80%의 생산 공정이 석탄 기반 설비에 머무르며, 2040년에도 수소환원제철 공정 비중은 30%대 수준에 그친다. 반면 감축 잠재량과 단위 감축비용을 고려해 가장 비용효과적인 경로로 도출한 ‘조기 전환 시나리오’에선 석탄 설비의 조속한 폐쇄와 함께 수소환원제철 공정 비중이 2040년 65%, 2050 87%까지 확대되는 것으로 설정됐다.

그림 1. 철강 탈탄소 전환 시나리오별 생산·부가가치 및 고용유발효과 비교
전환 초기에는 고로 공정 축소에 따른 기존 산업의 위축으로 사회경제적 효과가 일시적으로 정체되는 구간이 나타날 수 있다. 화석연료 기반의 생산·고용은 즉각 감소하는 반면, 수소환원제철의 핵심인 재생에너지 및 그린수소 산업의 부가가치는 기술 상용화 시점인 2030년 이후부터 본격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수소 연관 산업의 성장이 기존 산업의 감소분을 압도하며 조기 전환의 편익이 보수적 시나리오를 크게 상회하게 된다.

그림 2. 철강 탈탄소 전환 시나리오별 누적 생산유발효과 비교
문제는 이처럼 조기 전환의 경제적 이점이 명확함에도, 국내 철강사들이 수조 원대에 달하는 상용 설비 투자 결정을 내리기에는 정부의 리스크 분담 체계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이다. 최근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실증 플랜트 사업 역시 국비 지원액은 3088억 원 수준으로, 2050년까지 고로 11기를 전환하는 데 필요한 총 설비 전환 비용(약 47.3조 원)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정부가 2030년까지의 실증 단계에만 소액의 예산을 투입할 뿐, 2031년 이후 실질적인 탄소 감축이 일어나는 상용화 단계의 재정·금융 지원 로드맵은 내놓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해외 주요국 행보와 비교된다. 독일 정부는 수소환원제철을 국가 전략 과제로 규정하고, 티센크루프 상용 설비 프로젝트에만 약 3.2조 원(약 20억 유로)에 달하는 직접 보조금을 승인했다. 스웨덴도 유럽연합 혁신기금과 국가보증을 결합한 금융 지원을 통해 민간의 투자 리스크를 분담하고 있으며, 스테그라(Stegra)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이르면 올해부터 상업 생산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반면 한국은 상용화 단계의 정부 재정 지원 구조가 전무해, 글로벌 녹색 철강 시장의 출발선에서부터 뒤처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

그림 3. 국가별 수소환원제철 상용 프로젝트 지원 현황

그림 4. 국가별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진입 일정
철강벨트 지역 주민들 또한 이러한 위기감에 공감하고 있다. 지난해 기후솔루션이 한국리서치를 통해 조강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0% 이상이 ‘철강산업의 탈탄소 전환이 지역경제에 중요하다’고 답했다. 전환 동의 비율이 높았으나, 반대 이유 1순위는 ‘기술 전환에 따른 비용 부담(50.5%)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민의 77.1%가 ‘기술 전환은 필요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부족하다‘고 답했으며, 책임 주체로 대형 철강기업(75.4%)과 함께 중앙정부(72.5%)를 지목했다. 이는 상용화 단계에서 정부의 과감한 리스크 분담이 민간의 수용성을 높이는 핵심 열쇠임을 보여준다.
정부 역시 지난해 말 'K-스틸법(철강산업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국가 전략인 'K-GX(K-녹색전환 추진전략)'를 통해 고탄소 산업의 공정 전환을 돕는 '전환 금융' 지원 계획을 예고하는 등 제도적 기반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법안의 실질적인 화력이 향후 제정될 시행령과 세부 설계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의 계획만으로는 수소환원제철 상용화에 필요한 막대한 초기 투자비와 리스크를 정부가 어떤 규모로 분담할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031년 기술 실증 이후 상용화가 지체 없이 이어지려면 민간의 위험을 실질적으로 경감해 줄 정교한 금융 설계안이 시행령에 반드시 명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혜성 철강팀 연구원은 “K-스틸법과 K-GX는 철강산업 전환의 제도적 기반이지만, 상용 설비 전환의 재정 지원 설계가 없으면 실행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며 “정부는 직접보조금, 세제지원 및 장기 대출 등 전환금융을 활용한 위험 분담 구조를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하고, 이것이 장기적인 철강산업 전환 속도와 더불어 국내 제조업 전반의 수출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영민 철강팀 연구원은 “국가 탄소중립 달성 목표에 따라 철강산업의 저탄소 전환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추진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며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전제로 할 경우 장기적인 경제 성과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은 석탄 기반 공정을 얼마나 신속히 축소하고, 재생에너지와 수소 활용을 얼마나 빠르게 확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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