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1~18세 청소년 10명, 광양 제2고로 개수 중단 민사소송 제기
원고 대다수는 제철소 지역 청소년…광양 제2고로 인근 지역 2명 포함
청소년들 ”미래세대 살아갈 지구 생각해달라” ”지역경제에도 도움 안 돼…‘철강도시’ 자부심 느낄 수 없다” 목소리 높여
광양 제2고로 개수 시 누적 탄소배출량 1억 3702만톤…“미래세대의 환경권•생명권 중대하게 침해하는 행위”
사진 1. 청소년 원고들이 광양 제2고로 개수 중지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매일 아침 학교로 향하는 길에서 하늘을 채우는 굴뚝 연기를 보며 자랐습니다. 미세먼지 때문에 온종일 목이 아파도, 잠깐 창문을 열어둔 사이 창틀에 철가루가 쌓이더라도 ‘포스코 덕분에 우리 지역이 먹고 산다’는 어른들의 말을 당연하게 여겨야만 했습니다.” (김정원, 포항 거주 청소년)
고로 생산 체제로 인한 기후위기와 경제적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될 청소년들이 포스코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27일 만 11~18세 청소년 10명은 포스코의 광양 제2고로 개수(설비 교체) 중지를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고로 개수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해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외면할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의 환경권과 생명권을 중대하게 침해한다는 취지다. 청소년 원고 10명 중 대다수는 제철소 지역에서 자라왔으며, 2명은 쟁점이 되는 광양 제2고로 인근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번 소송은 지난해 8월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 의무를 인정한 헌법소원 결정 이후, 이에 근거하여 기업의 책임을 요구하는 첫 소송이다. 또한, 전기로•수소환원제철 등 여러 대안이 제시되는 상황에서 기존의 고로 생산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세계 최초의 기후소송이기도 하다.
이날 오전 11시 기후솔루션, 광양환경운동연합, 포항환경운동연합은 서울 삼성동 포스코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소송 제기 사실을 알렸다. 이 자리엔 포항, 대구, 경기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청소년 원고 6명도 참석해 직접 목소리를 냈다.
“봄과 가을을 지켜주세요”
이번 소송의 최연소 원고인 김유현(12)군은 “초등학생으로서 마지막이 될 소중한 겨울방학 기간에 이 자리까지 온 이유는 사계절을 지키기 위해서다. 내가 좋아하는 봄과 가을이 사라지는 것을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었다”고 소송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이어 “진정한 해결을 위해선 기업 단위에서 보다 근본적이고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한다”며 “좀더 미래지향적이고 과감한 결단을 통해 사라져가는 봄과 가을을 지켜달라”고 포스코에 고로 개수 중지를 촉구했다.
대구의 중학생 조민준(16)군은 “기후위기가 계속된다면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생태계와 제 삶의 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고로의 폐쇄는 탄소 배출을 줄여 미래세대를 위한 건강한 지구를 만드는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경기의 고등학생 최현준(18)군 역시 “기후위기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님에도 포스코가 고로를 폐쇄하기는커녕 오히려 개수를 하겠다고 한 소식은 충격적이었으며, 기후위기 당사자인 청소년의 목소리를 어른과 동등하게 듣지 않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또 최 군은 “이번 소송의 판결이 청소년의 권리와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결정된다면, 앞으로 청소년이 살아갈 세상은 기후위기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들로 인해 위험에 빠질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 2. 제철소 인근에서 성장한 청소년 원고가 자신의 경험에 대해 발언하는 모습
“포스코 교육은 ‘탄소중립’, 행동은 정반대”
제철소 지역에서 자라온 청소년들의 생생한 경험담도 돋보였다. 포항에서 온 중학생 이주원(14)군은 “포스코가 지원하는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포스코는 탄소중립에 관심을 갖고 신경을 쓰는 기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포스코가 고로의 수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수명이 다한 고로를 계속 고쳐서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소송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어 “학생들에게는 탄소중립을 가르치면서 정작 포스코는 그 목표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며 “미래세대가 살아갈 지구를 생각한다면 포스코는 환경 교육보다는 고로 개수를 중지함으로써 의지를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포항에서 직접 청소년 환경단체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는 김정원(19)씨도 원고에 이름을 올렸다. 김 씨는 “매일 아침 학교에 가고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뛰놀 때마다 포스코의 굴뚝 연기를 봐왔다.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철강도시 포항에서 ‘배은망덕하다’는 이야기를 들어가며 포스코의 공해에 ‘감히’ 목소리를 내왔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 포스코가 발표한 고로 개수는 나에게 또 다른 좌절을 안겨줬다”며 “포스코는 ‘2050 탄소중립’을 선도하겠다는 약속과 달리, 고로 개수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환경 파괴에 가담해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선 더 이상 ‘철강도시’라는 타이틀에 자부심을 느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고로 개수는 지역경제에도 위기 불러올 것”
고로 개수가 경제적 이익을 준다는 인식과 달리, 오히려 포스코의 경쟁력과 함께 제철소 지역경제를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정원 씨는 “재생에너지 100%를 목표로 하는 ‘RE100’이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금, 고로 개수를 강행한다는 것은 기후위기 대응뿐 아니라 지역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는 선택이다. 높은 탄소 배출로 인해 글로벌 금융기관으로부터 투자가 배제되고 관세 폭탄까지 맞닥뜨리게 된다면, 포스코가 기반을 두고 있는 지역경제도 큰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며 제철소 지역 청소년으로서 지역 경제를 약화시키는 고로 개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 3. 실제 소장의 표지를 확대한 패널에 청소년 원고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고 있다.
광양 제2고로, 향후 15년간 1억 3702만 톤 탄소 배출…
“국가뿐 아니라 기업도 환경권 책임 있다”
고로는 철광석을 녹이는 과정에서 석탄을 태우는 생산방식으로, 포스코를 ‘국내 탄소 배출 1위 기업’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그럼에도 포스코는 오래된 고로 생산 체제를 고수하고 있으며, 최근엔 노후화된 광양 제2고로 개수에 착수해 수명을 또다시 15년 이상 늘렸다. 광양제2고로에서 향후 15년간 나올 누적 탄소 배출량은 최소 1억 3702만톤(137.02MtCO₂)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 약 980만 명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과 맞먹는 수치다.
환경법 전문가인 진앤리 법률사무소의 김홍균 변호사는 “국가와 더불어 기업 또한 환경권을 존중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포스코는 여러 대안이 제시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고로를 유지하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달성을 위협하고 있다”며 “고로를 유지하는 채로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근본적인 감축을 위해선 고로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이번 소송의 목적을 밝혔다. 원고 대리인으로 소송에 참여하는 기후솔루션 리걸팀의 김예니 변호사 역시 “고로 개수는 미래세대의 환경권과 생명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고, 15년 이상 고로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국제적 규범 및 국가와 시민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요구를 외면하는 행위이므로 민사상 공사 중지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소송의 법적 근거를 설명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선 ‘국내 탄소 배출 1위 기업’ 포스코의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도 함께 진행됐다. 퍼포먼스는 실제 소장의 표지를 확대한 대형 패널에 청소년 원고 6명이 직접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는 방식으로 연출돼 상징성을 더했다. 소장은 이날 오전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에 접수됐다.
<기자회견문>
미래 세대의 내일을 위해, 오늘의 고로 개수를 중단하라
현재의 기후위기는 현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생존과 번영을 위협하고 있다. 2024년 8월의 기후 헌법소원 판결에서는 온실가스가 배출된 이후 회복할 수 없는 불가역적인 기후변화의 특성과, 감축 노력이 지연될수록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과 적응조치의 부담이 커진다는 점, 그리고 현재의 불충분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미래 세대에 더 큰 부담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기후위기 대응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그러나 국내 최대 탄소 배출 기업인 포스코는 광양제철소 제2고로 개수를 통해 석탄 기반 생산 방식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이는 향후 15년간 막대한 탄소를 추가로 배출하게 만드는 결정으로, 2050 탄소중립 목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저탄소 기술로의 전환이 글로벌 경제의 주류가 되는 상황에서 포스코는 이러한 흐름을 외면한 채 기존 고로의 수명 연장을 선택했다. 이는 기업이 감당해야 할 기후위기 대응 책임을 방기하는 행위다.
이러한 결정은 대한민국의 국제적·국내적 감축 의무뿐만 아니라, 기업 스스로 세운 감축 로드맵 달성도 위태롭게 한다. 글로벌 탄소예산을 고려할 때, 2030년까지 최소 4기의 고로를 폐쇄해야 1.5도 목표와 국가 감축 목표 달성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포스코는 석탄 기반 생산설비의 퇴출을 선언하지 않은 채 향후 15년간 막대한 배출량을 유지할 고로 개수를 감행하고 있다.
이에 만 18세 이하의 미래세대 10명으로 구성된 원고단은 기후변화가 자신의 삶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가 되고자 법적 행동에 나섰다. 이번 소송은 이들의 환경권과 생명권을 보호하고, 석탄 기반 설비 수명 연장의 위법성을 명확히 하여 탄소중립의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정당한 행동이다. 이를 지지하는 시민사회는 하나의 목소리로, ‘미래세대의 내일을 위한 오늘의 고로 개수 중단’을 요구한다.
포스코는 미래세대의 권리와 생존을 담보로 한 광양제철소 제2고로 개수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나아가, 현재 가동 중인 모든 고로의 단계적 폐쇄 계획을 발표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더욱 전향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철강산업의 탈탄소 전환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며, 수명을 다한 고로의 폐쇄를 통해서만 이를 온전히 달성할 수 있다.
정부는 미래세대의 환경권과 생명권을 보호할 의무를 가진 주체로서, 미래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석탄 기반 철강 생산을 종식하고, 친환경 철강 기술 전환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이 그 방향을 결정할 최적의 시점이다. 현재의 선택이 미래세대의 삶을 좌우한다. 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탄소중립의 미래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2025. 2. 27
기후솔루션, 광양환경운동연합, 포항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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