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첫 기후소송, 그 승리의 날을 기억하다
insights 2024-09-12
기후 소송

아시아 첫 기후소송, 그 승리의 날을 기억하다

2024.8.29. 기후 헌법소원 "현법불합치"선고

하지현 Director

“주문 헌법에 합치하지 아니....”
“헛”

우리는 어떻게 팀이 되는가. 기후 헌법소원이 선고되던 날, 법정 방청석에 우연히 함께 앉아 있던 방청인들은 같은 야구팀의 팬처럼, 동시에 숨소리를 ‘헛’하고 뱉었다. 법정에서 허용되는 최대치의 데시벨 환호가 대강 비슷했고, 법정에서 그 소리들은 동시에 공명했다. 청구인인 한 청년은 선고 직후 곧장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경위가 청구인에게 다가와서 소음 발생을 제지했고 영화의 클리셰 장면 같았다. 나를 포함한 방청인들은 숨죽여서 곧 펜과 노트북에 재판관들의 말을 받아적었다.


이겼어요’

그날의 사건은 선고순서가 서른 몇 번째여서, 결정을 듣기까지 5분 만에 각하되는 다른 사건들을 1시간도 넘게 듣다가, 졸다가 하면서 기다렸다. 이 사건의 선고가 나오자 곧바로 사무실에 있는 동료들과 채팅방에 결과를 타전했다. 잠깐만요’' 막상 결정을 현장에서 귀로만 듣고 보니 (법정에 PPT나, 스포츠 경기장처럼 스코어보드가 있을 리가 없으므로), 원래 듣고 싶은 대로 듣는 편이라 또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순간적으로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다행히, 곧 ‘헌법불합치’ 제목의 언론 기사 1보가 올라왔다.

[속보]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 승소..!

올봄, 기후소송 공개변론이 한국에서 있는 동안, 동료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얼결에 간 해외 출장 중이었다. 와중에 우리 기관의 파트너인 외국인 어른 L님을 뵈었고, 그분은 침을 튀기며 한국 기후소송이 가질 의미를 이야기하셨다.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 승소, 이기면 얼마나 짜릿할지, 한국인인 나보다 더 그 의미에 감정을 이입해서 설명하셨다. 그때 처음 이 소송의 큰 의미를 마주하고, ‘이기는 기후소송’이 될까, 생각을 시작했다. 곧 동료와 친구들에게 여름이 다 가기 전, 추석연휴 전에 이 사건은 좋은 결정이 나올 것이라고 떠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길-게 봐”

일본서 온, 본디 인권변호사인 C님은 국회 행사, 기후행진 등 모든 곳에 있는 분이기에 사무실에서 함께 헌법재판소(헌재)로 출발했다. C님은 지하철 환승 도보를 최소화하는 스마트 가이(smart guy)여서 무더운 날 덕을 크게 봤다. C님 덕에 역시 얼결에 참석했던 네팔 행사에서 아시아 변호사들을 많이 만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글로벌한 인기와, 한국의 역동성은 헌재와 국정감사가 잘 자리 잡은 덕분임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국 유학을 간다고 퇴사한 동료 J님과도 법정 방청석에서 반갑게 만났다. 퇴사 무렵에 했던 얘기인데, 선고 전후에도 한국사회의 변화가 빠르니까, 얼른 공부 마치고 한국에 오라고 또 얘기해서 J님이 아주 질려버렸을 것이다. 모든 것에 좌절하던 대학생일 때, 아버지가 ‘길게 봐’ 툭 던졌고, 수 년전 촛불집회를 볼 때에도, 일을 할 때에도 그 말이 떠오를 때가 많다. 헌재 정문에서 또랑또랑한 어린이 청구인과 눈물이 북받치는 청년들을 보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저 사람들의 세상이구나’, 미래세대를 비로소 실제로 보았다.


선고가 끝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업무에 휩쓸려 버렸지만, 기후 일을 하는 사람으로 역사적인 현장에 있었다는 데에 감상이 차올랐다. 마찬가지로 헌재와 국정감사를 잘 아는 동료 H님, D님과 그날 남은 감상 푸닥거리를 나누었다. 채팅으로, 마음으로 역사적인 선고일을 함께 보냈던 동료들과, 다시 한번 우리가 무엇을 하는 팀인지 요란하게 되새기고 싶다.


2024년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4년간 끌어온 기후 헌법소원을 헌법불합치로 판결했습니다. 이제 정부는 2030년까지 있던 탄소감축목표를 2039년까지 세워야 합니다. 이 결과는 아시아 기후소송의 첫 승리 사례로 남았고, 앞으로 있을 아시아의 많은 소송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이번 소송은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한국의 또 다른 시작입니다.

기후 헌법소원 결과를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아래의 글을 확인하세요.

[한국일보] 탄소중립법 '헌법불합치' 파장... 환경부 "후속 조치 충실히 이행"
[조선일보] 청소년들 기후 소송 결실… "어른들이 할 일 우리가 한 것"
[청소년 기후행동] 청소년기후행동의 기후 헌법소원
[입장문] 헌재 결정 환영, 허나 우리에겐 기뻐할 시간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