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아시아 최초 탄소중립법 헌법 불합치 결정은 기후 대응의 이정표
‘티핑포인트’를 앞둔 엄중한 시기, 국회‧정부는 미적대지 말고 후속조치 해야
4년 5개월 만이다. 청소년 19명이 2020년 3월 ‘대한민국 정부의 기후 대응이 미진하다’며 대응 법안의 위헌 확인을 구하는 청구를 헌법재판소에 낸지 결론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 사이 우리는 세계 평균 온도가 최고점을 경신했다는 뉴스를 숱하게 보았고, 올여름에는 심한 무더위를 몸으로 체감했다.
과학과 시민사회의 끊임없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세계 온실가스 연 배출량은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최근까지 쉼 없이 늘었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결과다. 이 지경이 된 바탕에 각 정부의 미약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자리잡고 있다. 2015년 파리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에서 한국을 포함한 세계 195개국은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아래 제한을 목표로 삼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온실가스 순배출량 0)을 달성하기로 하였다. 각국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자발적인 감축 계획을 내놓았는데, 우리나라 목표는 탄소중립법 8조 1항과 그 시행령을 기반으로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40%를 감축하겠다고 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을 통해 이런 우리 정부의 계획의 결함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전원일치 의견으로 2030년 이후부터 목표 연도인 2050년 사이 즉, 2031~2049년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없는 점을 들어 탄소중립법 8조 1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다만 현재 계획이 효력을 상실할 경우 “그나마 존재하는 정량적인 중간 목표마저 사라”져 “제도적 장치가 후퇴하는 더욱 위헌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점을 들어 효력을 유지하도록 했다. 그 시한은 법 개정에 필요한 시간을 가늠하여 2026년 2월 28일로 두었다. 그러나 2030년까지 현재 계획에 대해서도 전체 9명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5인은 “입법목적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수치 산정에 고려되어야 하는 과학적 사실과 국제적 행동 기준, …행정계획으로서의 제도적 실효성의 측면에서도 기후위기의 위험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며 위헌으로 판단했다.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은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요건이다.
결국 헌재는 정부의 현행 감축 계획이 종합적으로 국민과 미래 세대의 권리를 지키는 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다급한 상황에 견줘 2030년 감축 목표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린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배출 세계 13위인 한국의 감축 계획의 미진함은 국내외 시민사회가 꾸준히 지적해 온 바다. 세계 기후 정책을 감시하는 ‘기후행동추적’(Carbon Action Tracker)은 이를 두고 ‘부족하다’고 평가하며, 이런 계획과 그에 따른 정책의 수준은 세계 기온 3도 상승 경로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목표인 1.5도를 넘으면 폭염과 홍수 등 더 심각한 재난은 물론 더위가 생태계에서 더 많은 온실가스를 부르고 그 온실가스가 다시 기온을 올리는 ‘티핑포인트’의 위험이 심각하게 올라간다는 게 과학의 경고인데, 3도를 넘어가는 경로에 안주해 온 게 지금까지의 현실인 것이다.
이번 결정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 최초로 국가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판단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세계 각국의 사법부가 정부의 과오를 뒤늦게 바로잡는 ‘기후 판결’은 최근 심심치 않게 우리 눈과 귀에 들어오고 있다. 2019년 네덜란드 환경단체 ‘위르헨다’가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미흡한 기후위기 대응을 문제 삼아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으로부터 승소한 기념비적인 판결을 시작으로, 2023년 미국 몬태나주 법원의 청소년 기후 소송 승소 판결, 올해 유럽인권재판소의 스위스 ‘기후보호를 위한 여성 시니어 클럽’의 원고 승소 판결까지 이어졌다. 한국도 이 대열에 합류하며 아시아와 세계에서 주목할 만한 결정을 내놓은 것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은 기후 변화로 인한 최악의 상황을 막겠다는 파리협약의 정신에 입각해 한국 감축 계획의 미진함을 지적한 것이기 때문에, 이제야 비로소 옳은 경로의 기후 대응을 위한 단초를 놓은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후 대응은 특히 속도의 문제다. 극한의 위기로 빠져드느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2030년까지 ‘골든 타임’이 불과 6년도 남지 않았다. 현재의 기후위기 상황은 헌재가 정한 기한을 기다릴 만큼 여유를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입법부는 조속히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난 탄소중립법 8조 1항을 결정 취지에 맞게 새로 짜는 과정에 착수해야 마땅하다. 행정부는 현행 계획에 대해서도 헌재 결정을 빌미로 안주할 것이 아니라 재판관 과반이 위헌 판단을 내린 취지를 살펴 총배출량과 순배출량의 개념이 혼재한 심각한 오류를 바로잡는 등 적극적으로 호응에 나서는 것이 옳다.
더불어 이번 결정을 계기로 에너지 전환과 산업 탈탄소의 변혁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여전히 석탄 발전이 국가 발전 믹스의 30%를 차지하고, 대통령까지 나서 석유전 개발 계획을 홍보하는 등의 현재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일례로 한국은 세계 가스 운반선의 80%를 건조하며 화석연료 확장에 일조하는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예전 개발 경제 사고에 젖은 산업을 개편할 큰 그림을 갖고 나서야 옳다.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태양광과 풍력의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력 시스템을 전환하는 변화도 신속히 추진되어야 한다. 철강을 비롯해 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산업 부문의 전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기업은 ‘재생에너지가 미래’라는 각오로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난해 당사국총회에서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합심하여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3배 늘리고 감축 계획을 상향한 것이 빈말로 전락하게 둬선 안 된다.
이번 헌재의 결정이 큰 변화의 물꼬가 되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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