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100GW 시대, 필요한 것은 발전설비 확대만이 아니라 낡은 전력시장 규칙의 개편
실시간 가격신호 부재, 화력발전 기준 보상체계, 반쪽짜리 입찰시장이 신기술 진입 가로막아
기후솔루션 “2001년에 도입된 틀을 기반으로 유지 중인 전력시장도 업데이트해야…제주 시범사업 데이터를 전국 시장 개편으로 연결해야”
기후솔루션은 27일 이슈브리프 ‘변화하는 전력산업, VPP·ESS는 왜 제자리인가‘를 발간하고, 한국 전력시장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필요한 배터리와 가상발전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100GW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이 늘어날수록 전력망은 새로운 과제에 직면한다. 낮에는 전기가 남아 태양광 출력을 줄여야 하고, 저녁에는 다시 전력이 부족해 발전기를 급히 가동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재생에너지 확대의 관건은 전기를 더 많이 생산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남는 전기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빠르게 꺼내 쓰며, 전력망의 흔들림을 줄이는 능력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표적 자원이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 저장 장치)와 VPP(Virtual Power Plant, 가상발전소)다. ESS는 전기를 저장하는 대형 배터리이고, VPP는 흩어진 태양광·배터리·전기차·수요조절 자원을 하나로 묶어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가상발전소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시장이다. 현행 전력시장은 여전히 석탄·가스발전처럼 연료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에 맞춰 설계돼 있다. 배터리와 가상발전소가 전력망에 기여해도 그 가치를 제대로 보상받기 어렵다.
보고서는 특히 세 가지 제도 문제가 ESS와 VPP의 시장 진입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한국 전력시장은 여전히 하루 전 세운 발전계획에 크게 의존한다. 하지만 태양광과 풍력 발전량은 당일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 실시간 가격신호가 없으면 전기가 부족한지 남는지 시장이 즉각 반응하기 어렵고, 전력거래소의 관제와 행정 지시에 의존하게 된다. 이 구조에서는 배터리가 전기가 쌀 때 충전하고 비쌀 때 방전하는 식의 자율적 운영이 어렵다.
둘째, 전력망 안정에 기여한 자원에 보상하는 보조서비스 시장도 화력발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배터리는 몇 초 안에 반응할 수 있어 주파수 조정과 예비력 제공에 유리하지만, 현재 보상 구조는 연료비와 화력발전의 비용 구조를 기준으로 한다. 연료비가 없는 배터리와 가상발전소의 빠른 응동 능력이 시장에서 제대로 가격화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VPP와 ESS 운영 사업자가 보조서비스 시장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충분하지 않다.
셋째, 재생에너지 입찰시장 역시 공정한 경쟁이 되기 어렵다. 재생에너지는 가격을 내고 경쟁하도록 하면서, 기존 석탄·가스발전은 변동비 반영시장과 최소가동 구조 안에서 보호받는다면 같은 조건의 경쟁이라고 보기 어렵다. 재생에너지가 낮은 가격으로 입찰해도 화력발전이 계통상 우선 가동되는 구조가 유지되면, 출력제어 부담은 계속 재생에너지에 집중될 수 있다.
보고서는 독일과 호주 사례를 통해 대안을 제시했다. 독일은 당일에도 전력을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을 운영해 재생에너지 예측 오차를 시장 안에서 조정한다. 호주는 배터리와 VPP가 보조서비스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열고, 자원들이 가격을 직접 입찰하도록 했다. 그 결과 기존에 가스발전이 맡던 전력망 안정화 역할을 배터리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보고서 저자인 기후솔루션 김선규 연구원은 “재생에너지 100GW는 태양광과 풍력 설비를 늘리는 것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그 전기를 실제로 받아낼 전력망과 시장이 함께 준비돼야 한다”며 “ESS와 VPP는 재생에너지 시대의 필수 인프라이지만, 지금의 전력시장에서는 빠르고 정확한 자원이 오히려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시장은 설계대로 움직인다. 화력발전의 연료비 구조를 기준으로 보상하면 화력발전이 남고, 빠른 응동과 정밀 제어를 보상하면 배터리와 가상발전소가 들어온다”며 “제주 시범사업으로 확인한 데이터를 더 이상 시범에만 묶어둘 것이 아니라, 전국 전력시장 개편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솔루션은 보고서를 통해 △실시간 시장과 보조서비스 시장의 육지 도입 일정 확정 △ESS와 VPP의 보조서비스 시장 참여 자격 마련 △재생에너지만 불리한 가격 경쟁에 노출되지 않도록 발전원 간 공정한 입찰 규칙 마련을 제안했다.
쉽게 보는 Q&A
Q1. 이 보고서가 말하는 핵심은 무엇인가요?
전력망은 재생에너지 시대로 가고 있는데, 전력시장 규칙은 아직 화력발전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태양광과 풍력이 늘어나면 전기가 남는 시간과 부족한 시간이 더 자주 생깁니다. 이때 배터리와 가상발전소가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 시장은 이런 자원이 움직여도 제대로 보상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새로운 전력기술을 낡은 시장규칙이 막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Q2. 왜 ‘낡은 시장규칙’이라고 하나요?
지금 전력시장은 석탄·가스발전처럼 연료를 태워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에 맞춰 설계돼 있습니다. 이런 시장에서는 연료비가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하지만 배터리와 가상발전소는 연료비보다 속도와 조정 능력이 중요한 자원입니다. 전력망이 흔들릴 때 몇 초 안에 반응할 수 있는데도, 시장은 그 가치를 충분히 보상하지 않습니다. 기술은 바뀌었는데 보상 방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Q3. ESS와 VPP는 쉽게 말해 무엇인가요?
ESS는 전기를 저장하는 대형 배터리입니다. 낮에 태양광 전기가 많이 남으면 충전하고, 저녁에 전기가 부족하면 방전합니다.
VPP는 가상발전소입니다. 실제 발전소를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태양광, 배터리, 전기차, 수요조절 자원을 디지털 기술로 묶어 하나의 발전소처럼 움직이게 하는 방식입니다. 작은 자원들을 모아 전력망에 도움이 되게 쓰는 것입니다.
Q4. 왜 배터리와 가상발전소가 중요해졌나요?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집니다. 해가 강한 낮에는 전기가 많이 생기고, 해가 지는 저녁에는 발전량이 줄어듭니다. 이 차이를 메워주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배터리는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부족할 때 내보낼 수 있고, 가상발전소는 여러 자원을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습니다. 재생에너지가 많아질수록 배터리와 가상발전소는 전력망의 완충장치가 됩니다.
Q5. 실시간 전력시장은 왜 필요한가요?
전기는 하루 전 계획대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날씨가 바뀌면 태양광·풍력 발전량도 달라지고, 전력 수요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한국 전력시장은 여전히 하루 전 계획에 크게 의존합니다.
실시간 전력시장이 있으면 전기가 부족할 때는 가격이 올라가고, 전기가 남을 때는 가격이 내려갑니다. 그러면 배터리는 전기가 쌀 때 충전하고, 비쌀 때 방전할 수 있습니다. 실시간 가격은 배터리와 가상발전소가 언제 움직여야 하는지 알려주는 신호등입니다.
Q6. 보조서비스 시장은 무엇인가요?
보조서비스 시장은 전력망이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준 자원에 보상하는 시장입니다. 전기는 수요와 공급이 거의 동시에 맞아야 합니다. 갑자기 발전량이 줄거나 전기 사용이 늘면 전력망이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이때 빠르게 전기를 내보내거나 줄여주는 자원에 돈을 주는 시장이 보조서비스 시장입니다.
쉽게 말하면, 전력망의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는 자원에게 지급하는 안정화 보상입니다.
Q7. 보조서비스 시장에서 배터리가 왜 유리한가요?
속도 때문입니다. 가스발전기는 출력을 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배터리는 몇 초 안에 반응할 수 있습니다. 전력망이 순간적으로 흔들릴 때는 빠른 대응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보조서비스 보상 구조는 아직 화력발전의 연료비 구조를 기준으로 짜여 있습니다. 그래서 배터리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대응해도 충분한 보상을 받기 어렵습니다.
Q8.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은 왜 문제가 되나요?
재생에너지 입찰시장은 그동안 전력시장 밖에서 우선 구매되던 태양광·풍력을 전력시장 내에서 가격 경쟁 시키겠다는 제도입니다. 방향 자체는 필요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경쟁 조건입니다. 재생에너지만 가격 경쟁을 하게 하고, 기존 석탄·가스발전은 예전 방식대로 보호받는다면 공정한 경쟁이 아닙니다.
운동장에 비유하면, 태양광과 풍력만 새 규칙으로 뛰게 하고, 화력발전은 기존 규칙을 유지한 채 같은 경기에 참여하는 셈입니다.
Q9. 이 문제가 시민에게도 영향을 주나요?
영향이 있습니다. 전기가 남는데도 저장하지 못하고 버리거나, 전력망을 맞추기 위해 비싼 발전기를 계속 대기시키면 비용이 늘어납니다. 그 비용은 결국 전력시장 비용이나 전기요금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배터리와 가상발전소가 시장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면 남는 재생에너지를 더 잘 활용하고, 불필요한 계통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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