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선종·국가에 기술·도크 집중이 부메랑으로... 중동 충격에 드러난 구조적 취약성
2030년 LNG선 선복량 수요 대비 62% 초과 전망... 투기적 발주 및 공적금융 리스크 심각
물류 인프라 넘어 무탄소 에너지 거점으로 체질 개선 시급... 해상풍력 전용선, 무탄소 연료 추진 시스템 전환 제언
국내 조선 3사의 1분기 호실적 주역으로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이 꼽히는 가운데, 이러한 ‘LNG선 집중 전략’이 오히려 한국 조선업에 ‘성장의 독’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최근 중동의 지정학적 충격으로 카타르 가스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도크(배 만드는 작업장)와 기술력을 LNG선에 집중해 온 국내 조선사들이 대외 변수에 노출되는 구조적 리스크가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7일 기후솔루션은 <"LNG 슈퍼사이클 환상에서 깨어날 때" 지정학 리스크가 드러낸 화석연료 의존의 민낯, 그리고 한국 조선업의 선택>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번 보고서는 HD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에서 ESG 기획 및 기후변화 전략팀 수석매니저를 지낸 김준호 기후솔루션 수석자문위원이 집필했다.
현재 국내 조선업의 LNG선 전 세계 점유율은 74%에 달하며, 다른 선종에 비해 수익성이 높은 LNG선은 대표적인 ‘효자 품목’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올해 1분기 HD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 3사의 합산 매출과 영업이익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증권가에서는 '슈퍼사이클’ 진입이라는 낙관론이 쏟아졌다. 그러나 김 위원은 이러한 낙관론의 핵심 전제가 흔들릴 경우 산업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림 1] 국내 조선소의 선종별 비중 추이 (2013~2029)
‘슈퍼사이클' 낙관론, 시장이 간과한 것은
톤마일 증가? 단순한 거리 증가에 불과
김 위원은 먼저 증권가가 제시하는 톤마일 증가 기대감이 실상 착시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카타르 공급 차질 이후 우회항로 확대로 배가 멀리 돌아가느라 바빠 보일 뿐, 정작 실어 나를 화물(LNG) 자체가 급감한 상황에서는 실질적인 거래량이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체 공급지로 꼽히는 미국 역시 증산이 아닌 기존 물량의 수출 전환 비중 확대(2021년 11.1% → 2025년 14.7%)에 의존하고 있으며, 최대 수출 업체조차 가동률 한계로 인해 추가 수출 여력이 제한적임을 인정한 상태다.
역대급 수주 잔고? 지정학 리스크 한 번에 흔들
증권가는 낙관론의 근거로 내세우는 ‘3.5년 치의 수주잔고’는 구조적 리스크에 가깝다. 이 잔고의 상당 부분 (약 70척)이 카타르 LNG 수출 설비 확장 프로젝트 한 곳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카타르는 최근 가스 생산 시설 피격으로 현지 생산 능력의 약 17%가 마비됐고, 완전 복구까지 약 3~5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 공급 차질은 조선업계에 아래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영향을 미친다.
카타르용 선박들이 예정대로 인도된다면, 실어 나를 LNG 물량이 부족한 시장에 선박들이 진입하게 된다. 이는 LNG선 운임을 끌어내리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운임 약세는 다음 신규 발주를 위축시킨다.
카타르가 LNG 생산 복구 일정에 맞춰 선박 인도 시점을 늦출 경우, 인도가 단 한 달만 지연돼도 조선사별 매출 차질은 월 1000~1500억 원에 달한다. 특히 대금의 60%를 인도 시점에 받는 ‘헤비테일’ 구조 탓에, 배 한 척당 약 2000억 원의 현금이 일시에 묶여 기업의 재무 구조를 위협한다. 이미 올해 인도 예정이었던 카타르용 LNG선박 7척의 인도가 내년으로 조정됐다.
운임 급등, 호황 아닌 취약성 노출
김 위원은 운임 급등을 호황의 신호로 해석하는 시각도 경계했다. 최근의 운임의 급등은 물동량 증가가 아닌 전쟁 보험료 증가와 항로 폐쇄 등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에 기인한 변동성일 뿐이란 지적이다. 실제 용선료가 12개월 내에 55배나 널뛰는 비정상적인 시장에서는 안정적인 투자 수익 예측이 불가능하며, 2025년 초에는 운임이 운항비용의 3분의 1 수준까지 폭락해 적자가 쌓이는 구조가 가시화되기도 했다.
LNG는 가교? 2010년대 유조선 공급 과잉과 비슷
LNG의 '가교 에너지' 역할에 기반한 장기 낙관론 역시 좌초자산 리스크를 간과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넷제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한 LNG 선박 수급 분석에 따르면 2030년 LNG 선대 공급량은 수요를 62% 초과할 전망이다. 이는 2010년대 초 고유가에 기대 해양플랜트에 과도하게 집중했다가 수조 원의 손실을 본 사례와 흡사하다. 증권가는 노후선 폐선 가속화에 따른 신조 수요를 기대하지만, 2025년 폐선된 17척에 비해 신규 인도가 79척으로 압도적이며, 향후 인도 예정 물량인 289척이 남아있는 노후선 188척을 전량 대체하고도 남는 규모라 구조적 공급 과잉을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LNG선 집중 구조는 지난 4월 OECD 보고서에서도 한국 조선업의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된 바 있다. 생산 설비부터 전문 인력, 프로젝트 파이낸싱까지 단일 선종(LNG)에만 정렬된 구조에서는 시장 충격 시 산업 전체의 복원력이 마비될 수 있 때문이다. 특히 지난 10년간 LNG 운반선에 투입된 공적금융은 5개 기관 합산 총 58.8조 원에 달하며, 지원 건수 중 ‘투기성 발주’의 비중이 19%에 달한단 점은 현재의 호황이 도박적 기대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 2] 분쟁 장기화에 따른 LNG 공급 손실 누적 시나리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역량, ‘무탄소 해양 신산업’으로 확장해야
김 위원은 한국 조선업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설계 및 건조 역량을 단순한 운송 수단 제조를 넘어 무탄소 해양 신산업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NG 분야의 기술 경쟁력을 발판 삼아 암모니아·수소 추진 시스템과 해상풍력 설비는 물론, 해양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저장하고 운반하는 전 과정의 인프라로 도크의 경쟁력을 확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공적금융의 투기성 발주 지원을 제한하고, 무탄소 선종과 재생에너지 인프라에 특화된 정책 금융을 신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공적금융 신청 시 생산·운송·소비 전 과정(Well-to-Wake)의 배출량 및 Scope 3 공시를 의무화해 친환경 전환의 실질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신기술의 현장 실증과 숙련 인력들의 직무 전환 교육을 통해, 한국 조선업의 생태계를 미래 산업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은 "한국 조선업의 기술력과 숙련 인력, 중소 협력사 생태계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자산”이라면서도 “지금 그 역량이 LNG선이라는 단일 선종에 묶여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극저온 기술, 대형 구조물 제작 능력은 암모니아·수소 추진선과 해상풍력 인프라에 그대로 적용될 뿐 아니라, 해양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저장하고 운반하는 전 과정의 인프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전환의 트리거만 제대로 작동하면, LNG선에 집중된 역량은 무탄소 해양 에너지 산업 전반을 이끄는 동력이 될 수 있다“며 “이러한 동력을 갖고 있단 사실 자체가 위기를 기회로 바꿀 근거”라고 강조했다.
Q1. 2030년에 배가 60%나 남아돈다는 수치는 과장 아닌가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탄소중립 경로에 따른 과학적 예측이며, 가장 보수적인 시나리오에서도 공급 과잉은 불가피합니다. (출처: 독일 클라이밋 애널리틱스). 실제 2023년 10월 글로벌 해운 데이터(클락슨)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당시 LNG선 수주 잔고의 39%는 장기 용선계약 없이 발주된 ‘투기적 물량’으로 확인됐습니다. 즉, 실제 운송 수요가 아니라 "나중에 비싸게 팔 수 있겠지"라는 기대로 주문한 ‘투기적 발주’ 물량입니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 속도를 높여 가스 사용을 줄이면, 이 배들은 짐을 실을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제15차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에 따르면, 가스 수요는 한국에서만 2023년 4509만 톤에서 2036년 3766만 톤으로 약 16.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실제로 선박의 폐선 연령은 기존 38년에서 25년으로 대폭 짧아지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대(UCL)는 2035년경 LNG선 2척 중 1척(51%)이 일감 없이 멈춰 서는 ‘좌초자산’이 될 거란 경고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Q2. 공적 금융의 ‘투기적 지원’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수출입은행이나 무역보험공사 같은 국가 기관이, 실제 LNG 운송 계약(용선계약)도 확정되지 않은 ‘불확실한 발주’에까지 수조 원의 보증과 대출을 제공한 것을 말합니다. 수출입은행이 지난 10년간 지원한 LNG선 금융 120건 중 약 20%(23건)는 배를 빌려 갈 곳(용선처)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승인됐습니다. 수익이 날지 안 날지도 모르는 ‘도박성’ 발주에 수조 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한 겁니다. 특히 최근 5년간 발생한 재무 약정 위반 사례 4건이 모두 LNG선에서 발생했습니다. 배를 인도한 지 겨우 3년 만에 배 가격이 뚝 떨어져 대출 약정기준을 못 맞추게 된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 금융의 LNG 쏠림은 여전합니다. 지난 10년간 5개 공적 금융기관이 LNG선에 투입한 자금은 총 58.8조 원에 달합니다. 이 중 수출입은행의 지원액만 41.3조 원(대출 13조 원, 보증 28.3조 원)에 이릅니다. 이런 우려 속에서도 수은은 이르면 이달 승인을 목표로 약 7100억 원(5.21억 달러) 규모의 LNG 운반선 금융 10건에 대해 추가 상담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Q3. 조선소의 정체성을 바꾼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요?
배를 단순히 '화물 운송 수단'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바다를 '에너지 생산과 저장이 일어나는 거대한 거점'으로 정의하는 산업 대전환을 의미합니다. 바다 위에서 풍력으로 전기를 만들고(해상풍력), 그 전기로 수소를 생산하며(수전해), 이를 다시 저장·운송하는 모든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조선소의 새로운 역할입니다.
이미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덴마크는 조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바다 위 ‘인공 에너지 섬’을 건설 중이며, 이곳에서 해상풍력 전기를 모아 수소로 전환하는 설비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 세계 최대 조선그룹인 CSSC(중국선박공업그룹)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 터빈과 이를 설치하는 특수 선박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메탄올 및 암모니아 추진선 등 차세대 친환경 선박 수주에서도 한국을 맹추격하며 무탄소 해운의 주도권을 노리고 있습니다.
중동 정세에 따라 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지금의 LNG선 중심 포트폴리오는 너무 위험합니다. 이제는 도크에서 LNG선 대신 해상풍력 부유체, 수소 생산 설비, 암모니아 추진선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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