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옥토퍼스 에너지 등 해외에선 적극 VPP 가동해 전력 피크·탄소배출 동시 해결
국내는 중앙집중형 가스발전 확대 위주…재생에너지·전기차·배터리 분산형 자원은 진입도 어려워
경제성·속도·탄소감축 효과 모두 뛰어난 VPP, 정부의 정책·보상체계 전환 없이 탄소중립 불가능
최근 국내 언론은 가상발전소(Virtual Power Plant, 이하 VPP)를 주목하고 있다. 가상발전소란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배터리, 가정의 전기기기 등을 하나로 묶어 마치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이달 초 정부도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 거버넌스를 출범하고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 전략’에 VPP를 포함해 분산형 전력자원 관리 방향을 제시했다. 제주도에서는 그나마 약 200MW 규모로 VPP 확산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고 있지만 초기 단계다. 미국, 유럽, 호주에서 이미 수십 GW 규모의 VPP를 가동하며 전력 피크와 탄소배출 감축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림 1 전 세계 전력시스템의 변화 추세
기후솔루션이 28일 발표한 보고서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시스템으로의 전환: 가스발전소에서 가상발전소(VPP)로’는 바로 이러한 격차의 배경을 짚고 있다. 보고서는 탄소중립을 이루려면 화력발전 중심의 중앙집중형 전력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신 태양광·풍력,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를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쓰는 대형 배터리), V2G 기술을 활용해 전기를 넣고 빼는 전기차, 필요할 때 소비자가 전기 사용을 줄여 계통을 안정화하는 수요반응자원(DR: 전력 피크 시기에 공장이 작업 시간을 조정하여 전기사용량을 줄이는 것과 같이 전기 사용자가 수요에 맞춰서 사용량을 변화시키는 행위)을 통합해 운영하는 분산형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능력, 즉 전체 전력 유연성의 절반 이상을 ESS와 DR이 담당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이를 연결·운영하는 VPP가 전력시스템의 핵심 축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은 현재 30GW 규모의 VPP를 운영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160GW까지 늘려 전력 피크의 20%를 담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VPP의 장점은 분명하다. 같은 400MW 전력을 확보하는 데 VPP는 43달러/kW로 신규 가스발전소(99달러/kW)보다 절반 이하 비용으로 가능하며, 수개월 만에 구축할 수 있어 수년이 걸리는 가스발전소보다 훨씬 신속하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시스템의 유연성 필요를 고려한 ‘자원 적정성 프로그램’을 도입해 필요한 전력자원을 시장 경쟁으로 조달하고 있으며, 호주는 ‘초속응성 주파수 조정 시장’을 신설해 VPP 자원에 별도 보상을 준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연료비에 연동되는 시장이 형성돼 연료비가 없는 VPP의 가치가 공정하게 평가되지 못한다.
가스발전소와 가상발전소는 기본적으로 같은 전력시장에서 ‘누가 전기를 더 많이, 더 싸게, 더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가’를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다. 가스발전소는 중앙에 큰 설비를 세워 언제든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연료비가 계속 들어가고, 온실가스가 배출되며, 최소한으로 돌려야 하는 용량이 정해져 있어 태양광·풍력처럼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반대로 가상발전소는 이미 설치된 태양광, 전기차, 가전제품 등을 연결해 필요할 때 전기를 모아 쓰는 방식이라 수요와 공급에 지능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새 발전소를 짓지 않고도 전력 시스템을 유지한다는 의미다. 이는 발전소 짓는 비용, 연료비를 아끼는 동시에, 온실가스 배출도 최소화한다는 강점이 있다. 과거에는 어려웠던 방식이지만, 재생에너지 기술과 ICT의 발달로 상용화가 가능해졌다.
제도의 장벽은 여러 갈래로 존재한다. DR은 기존 전력거래소의 별도 시장을 통해 운영되어 VPP와 통합되어 도매시장에 입찰될 수 없으며 한국전력이 최근 도입한 아날로그식 고객참여 부하차단 제도로 인해 제도가 더 파편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 고시에는 전기차가 소규모 전력자원으로 포함되지 않아, 전기차 배터리를 전력시장에 참여시키는 것도 불확실하다. 전국에 40만기 넘는 전기차 충전기가 있지만 대부분 단방향(충전만 가능)이고, 다시 빼내어 전력망에 공급하는 양방향 충전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전이 설치한 지능형 계량기(AMI, 스마트 전력계량기)도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하기 어려운 구형 설비가 많아, 가상발전소 운영에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독립적인 배전망운영자(DSO, Distribution System Operator)가 없어 가상발전소 확산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다.

그림 2 국내 VPP 확대의 난점 정리 모식도
기후솔루션은 이번 보고서를 통해 ▲대규모 가스발전 전환 정책 중단 ▲VPP 자원의 가치를 반영하는 시장 보상체계 개편 ▲양방향 충전기와 고도화된 계량기 보급 ▲독립적 DSO 설립을 제안했다.
보고서 저자인 기후솔루션 임장혁 연구원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더 이상 중앙 집중형 화력발전소를 확대할 수 없다”며 “뛰어난 AI 및 배터리 기술 기반을 갖춘 한국이야말로 가상발전소 확대를 통해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췄지만 규제로 인해 막혀 있어 시장이 조성되고 규제가 바뀌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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