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자동차용 강판 60~70% 공급하는 현대제철, 비전력 기업 중 국내 2위 탄소배출 기업…화석연료 기반 제철에 묶여 현대차 탄소중립에 먹구름
기후위기 시대 수출 산업경쟁력 지키려면 진정성 있는 탈탄소 계획 마련해야
현대제철, 고로 종풍 계획·재생에너지 비중 확대·그린워싱 방지 대책 필요해
국내 완성차 생산량 중 약 84%를 생산 중인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은 2045년 탄소중립 목표에서 자동차 생산, 운행, 폐기까지 전 수명주기에서 탄소발자국을 0으로 줄이겠다는 의지를 밝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자동차 무게의 30~50%가량을 차지하는 주요 소재이자, 탄소발자국 기준으로는 15~35%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소재인 강재는 자동차 제조에서 중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대차가 사용하는 자동차용 강판의 약 60~70% 상당을 공급하는 현대제철이 석탄을 막대하게 사용해 탄소배출의 핵심인 고로를 유지하고, 2030년 12% 감축 이후의 탄소중립 마일스톤은 전혀 제시하지 않는 불완전한 로드맵을 고수하고 있어, 현대차의 탄소중립 열망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볼보 등 글로벌 경쟁사들이 기민하게 친환경 강재 도입과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반면 현대제철의 부실한 탈탄소 계획으로 인해 현대차가 탄소중립 달성에 차질을 빚을 우려와 이를 해소할 제안을 담아 31일 기후솔루션이 보고서 ‘현대제철의 미흡한 탈탄소 로드맵, 현대자동차 탄소중립 제동 거나’를 발간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4월 탄소중립 로드맵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로드맵은 고로와 전기로 혼합하는 합탕 방식을 통해 탄소저감 강재를 생산해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12% 줄이는 데 그칠 뿐, 2050년까지 실질적인 탈탄소 전략이 제시되지 않았다. 반대로 현대차는 2030년 10% 이상 감축, 2035년 40% 감축, 2040년 60% 감축, 2045년 탄소중립이라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 현대제철의 탄소중립 로드맵은 2030년 이후 현대차 공급망 탄소저감 목표 달성을 위한 탄소저감 기술 도입 일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2050년까지의 장기 목표를 'Hy-Cube'라는 새로운 기술 체계로 설정했다. 수소환원제철 기술로 직접환원철(Direct Reduced Iron, 이하 DRI)을 생산하고 이를 초대형·고효율 전기로에서 녹이는 방식으로 톤당 탄소배출량을 0.2tCO2e 수준으로 감축한 후, 감축하지 못한 탄소는 탄소포집·저장 및 이용(CCUS)하고 블루카본, 조림 등을 통해 탄소를 상쇄해 처리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방법론 이외에 구체적인 기술 개발 일정이나 검증 계획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반대로 해외에서는 탈탄소 경쟁에서 빠르게 앞서 나가려는 경쟁사들이 등장했다. 메르세데스 벤츠와 볼보 트럭과 같은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미 자국 내에서 탈탄소 강재를 도입하고 있으며, 수소 전환 및 재생에너지 기반 전기로를 통한 탄소 저감 강재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차체 강재의 1/3 이상을 재생에너지 기반 전기로 강재로 대체했으며, 볼보 트럭은 바이오가스와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저탄소 강재 SSAB Zero를 트럭 프레임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술 도입은 유럽과 미국의 탄소 국경세와 같은 규제를 대비하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으로, 저탄소 강재 사용이 늘어나면 각국의 친환경 규제를 적극적으로 준수할 수 있는 자산이 된다.
반면 현대제철은 합탕을 통해 단기적으로 탄소배출량을 일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합탕 방식은 전기로 고급강 제작이 어려운 한국에서는 거쳐야만 하는 중간 기술이며 고로 생산량을 절감한다는 점에서 필요성은 있지만, 본질적으로 고로에 대한 의존도는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국제 무역 규제와 시장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고로 설비는 현대차 공급망에서 탄소발자국을 크게 늘리는 주범이다.
현 계획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2050년 이후에도 고로 설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고로를 유지하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다. 또한 현대제철이 보유한 400만 톤급 고로 3기 모두의 개수 시기가 임박한 가운데, 현대제철이 어떤 결정과 계획을 내놓느냐에 따라 현대차의 탄소중립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현대제철의 탄소중립 로드맵의 부실은 투자자들에게 좋지 않은 신호로 작용할 것이다.
보고서는 현대제철의 소재 공급망의 역할이 커지는 가운데, 현대제철이 보다 진보한 구체적인 탄소중립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고로 개수(보수 및 개선) 및 종풍(폐쇄)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전기로와 수소환원제철에 대한 계획과 이에 요구되는 그린수소 조달 방법 등 탈탄소 로드맵을 보다 더 명료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저탄소 브랜드 신뢰성 확보 및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방지 역시 현대제철이 풀어야 할 숙제다. 현대제철 저탄소 브랜드 HyECOsteel은 조개껍데기 및 HBI(철광석에서 산소성분을 뺀 DRI를 가공처리한 고철 대체재) 투입을 통해 확보한 탄소감축량을 근거로 ‘북앤클레임(Book and claim) 방식으로 저탄소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포스코의 탄소중립 브랜드 ‘그리닛(Greenate)’ 광고가 그린워싱으로 행정지도 처분을 받았던 것처럼 실제 탄소 저감 효과가 미비한 기술을 기후대응에 큰 역할을 하는 것처럼 포장할 경우 그린워싱으로 강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HyECOsteel의 탄소 저감 효과도 아직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기후솔루션 철강팀 조상훈 연구원은 “포스코의 그린워싱 논란을 반면교사 삼아 기술에 관한 신뢰도를 높이려면 현대제철은 탄소저감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비판 우려가 큰 ‘매스밸런스’ 방식에서 탈피해 그린워싱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특히, 고로+전기로 합탕 방식에 매스밸런스 방식을 적용할지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전환도 요구된다. 전기로를 늘리고 저탄소 강재 생산을 확대함으로써, 국제 친환경 기준을 충족하려면 쓰는 전기도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조달이 꼭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수급 측면에서는 용량 확대와 국가 단위 전력망 확충에서 정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제언했다. 안정적인 재생에너지 생산과 공급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하는 만큼 현대제철 역시 한국의 재생에너지 부족 상황에 대해 시급히 개선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탄소 국경세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탈탄소 경쟁이 심화함에 따라, 한국의 대표적 수출 산업인 자동차와 그 공급망의 탄소배출량 저감은 더욱 중요한 경쟁력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주요 수출품 중 40%가 철강 관련 제품이며 이는 반도체 및 관련 산업보다 큰 규모인 것을 고려했을 때 기후위기 시대 국가 산업의 미래는 국내 철강사들이 얼마나 기후대응에 적극적이냐에 달렸다. 현대제철은 탄소저감 강재 도입과 혁신적인 생산 기술을 통해 현대차의 친환경 경쟁력을 뒷받침해야 하며, 그린워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실질적인 저감 노력을 강화하여 한국 수출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기후솔루션 철강팀 박정은 팀장은 “한국과 비슷한 철강 구조를 가진 일본은 이번 달 철강업계와 자동차업계, 건설업계, 정부, 투자자와 소비자단체 등을 모두 모아 녹색철강 시장 조성을 위한 논의에 착수했다”라며 “한국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철강사와 정부, 수요산업 등이 녹색철강 시장 형성을 위한 논의에 한시바삐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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