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책자금 94조 중 17조가 LNG 운반선으로… ‘녹색 금융’ 이름 달고 화석연료 지원
LNG 운반선, 기후금융 둔갑은 국제 기준 역행… 좌초자산 위험만 키워
해외는 이미 LNG 금융 지원 중단… 한국만 시대착오적 분류 고수, 녹색기준 재정립 시급
정부가 '기후금융'이라 홍보한 정책자금의 상당 부분이 실제로는 화석연료 인프라, 특히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에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신장식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5대 공적금융기관이 승인한 기후정책자금 94조 1715억 원 중 17조 6846억 원, 즉 20%가 수출입은행을 통해 LNG 운반선 금융에 쓰였다. 이는 대규모 해외 인프라 금융을 전담하는 한국수출입은행 기후정책자금의 36%에 해당한다. 결국 정부가 강조한 '녹색 금융'이 사실상 화석연료 지원으로 둔갑해온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LNG가 '친환경 선박'으로 분류되어 기후금융의 지원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LNG는 석탄보다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전환연료'로 불려왔지만, 이는 연소 시점만 고려한 평가였다. LNG의 생산·운송·소비 전 과정을 고려한 전생애주기(well-to-wake) 배출량은 오히려 석탄보다 더 많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미국 코넬대 분석에 따르면 미국산 LNG의 전생애주기 배출량은 석탄 대비 33%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3년부터 선박 연료의 온실가스 평가 방식을 ‘연소 시(tank-to-wake)’에서 ‘전생애주기’로 전환했다. 이런 기준에선 LNG가 더 이상 친환경 연료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LNG 운반선은 한국 조선업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대표적인 수출 품목이자, 산업 경쟁력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2024년 말부터 글로벌 LNG 수송 수요 둔화와 선박의 공급 과잉이 맞물리면서 LNG 운반선 운임은 손익분기점 아래로 떨어져 적자 운항이 불가피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이에 따라 신규 선박 발주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미 발주된 선박만 해도 향후 3년간 300척 이상이 시장에 추가될 예정으로, 공급 과잉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발주는 좌초자산 위험만 키운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국내 조선업의 과도한 LNG 운반선 의존에 경고등이 켜졌다. 실제로 전 세계 LNG 운반선 주문량은 2024년 77척에서 올해 15척으로 80% 가까이 급감했으며, 이 중에서도 조선소 자체 계열사 발주를 제외하면 13척에 불과하다.
또한 LNG 운반선은 막대한 탄소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기후솔루션 보고서에 따르면 17만5000㎥급 LNG 운반선 1척은 연간 약 1233만 톤의 온실가스 배출에 기여하며, 현재 건조 중인 LNG 운반선 350척의 연간 배출 기여량은 43억 톤으로 인도 전체 연간 배출량을 상회한다. 게다가 선박 운항 과정에서 최대 15%의 메탄이 미연소 상태로 대기 중에 방출되는 '메탄 슬립'까지 발생하는데,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80배 강력한 온실가스로, LNG의 기후위기 기여도는 매우 무겁다. 예컨대 미국산 LNG 수출선박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난 6년간 4.5배 급증해 현재 연간 1840만톤에 달한다. 이는 미국 내 모든 전기차가 연간 감축하는 온실가스량인 1200만 톤을 넘는 수치다.
이 같은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인 LNG 운반선 지원이 ‘기후금융’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는 것은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해온 기후금융 정책의 허상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금융권이 올해 기후금융에 51조 7000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지만, 실상은 화석연료 인프라가 '녹색'으로 둔갑해 공적 자금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기후리스크 평가 의무화, 지속가능성 공시 확대 등 제도 개선을 논하기 전에, 무엇을 '녹색'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기본 기준부터 잘못됐다는 뜻이다. 국제적으로는 이미 LNG를 화석연료로 분류해 금융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유럽투자은행(EIB), 영국 수출입은행(UKEF), 덴마크 수출신용기금(EIFO) 등은 2021~22년부터 LNG 운반선 지원을 전면 중단했으며, BNP파리바 등 민간 금융기관들 역시 포트폴리오에서 LNG 인프라를 배제하고 있다. 이 같은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 지원이 ‘기후금융’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화석연료 기반 선박에 대한 금융이 녹색 금융으로 포장되는 순간, 한국의 기후 리더십이 오히려 훼손될 수 있다.
신장식 의원은 "이번 금융감독 체계 개편과 함께 기후금융 정책을 재정비한다면, 국제 기준에 맞는 진정한 의미의 녹색분류체계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며 "피상적인 제도 개선이 아니라 화석연료는 화석연료로 분류하는 상식적 기준을 도입해야 그린워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솔루션 가스팀 신은비 연구원은 "기후리스크를 평가하고 기후금융을 늘린다고 하지만, 정작 화석연료 인프라를 녹색으로 분류하는 후진적 기준을 그대로 두고서는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해외에서는 이미 LNG를 화석연료로 분류해 금융 지원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한국만 시대착오적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보낸 금융기관 기후리스크 평가 의무화 등 ESG 정책 7개 항목 질의에 대해 전면 찬성 입장을 밝혔으나, 현재와 같은 분류기준 하에서는 정책이 도입되더라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새로 신설되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이러한 기준 개선에 나설지 주목된다.
보도자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