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발주 사이클 이후 공급 과잉 심화…재생에너지 경쟁력에 밀려 운임·수요 급감
조선업계, LNG선 중심 수주전략 재고 필요성 제기돼…”화석연료 수송선 수명도 끝나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이 일시적인 조정이 아닌 구조적 쇠퇴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기후솔루션은 23일 선박 금융업계의 재무적 영향에 대한 최신 방법론을 적용해 분석한 결과 현재 LNG선의 좌초자산 규모가 108억 달러(약 15조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2022년 장기계약 없이 수요 예측 기반보다는 시장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가 반영된 대규모 투기성 발주로 인해 공급 과잉이 심화되면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60척의 LNG선이 운항되지 못한 채 유휴 상태에 놓여 있다. 이는 전체 LNG 선대의 약 10%에 해당하는 규모로, 좌초자산으로 환산할 경우 약 108억 달러(약 15조 원)에 달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선박 가격 1척당 평균 1억 9460만 달러(약 2702억 원)로, 총 60척에선 116억 7600만 달러(16조 2110억 원) 손실이 발생한다. 선박에서 얻을 수 있는 스크랩 가치 약 3억 1800만 달러(4415억 원)를 제외하면 현재 LNG 운반선의 실현된 좌초자산 규모가 약 113억 5800만 달러(15조 7694억 원)로 추산된다.
이는 독일 컨테이너사 하팍로이드와 항공사 루프트한자 관련 물류 재단인 쿠네 기후 센터(Kühne Climate Center)와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에너지 연구소(UCL Energy Institute)에서 에너지 전환으로 해운 산업 및 선박 금융업계가 직면할 재무적 영향을 분석한 방법론을 적용한 결과다.
이처럼 유휴 선박의 증가와 자산 손실은 LNG선 시장이 수급 불균형 상태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LNG선은 에너지 수출입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으나, 최근 글로벌 LNG 물동량 증가율은 둔화되고 있다.
물동량과 수익성에 따라 요동치는 운임은 해운 시장의 체온계라 불린다. 특히 LNG 운반선의 경우, 운임 수준은 시장의 수요와 선박 공급 간의 불균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최근 들어 이러한 운임이 손익분기점을 밑도는 수준까지 하락하며 업계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다. 대표적인 최신형 선박인 TFDE(삼중연료 추진선)의 1년 정기용선료는 일 2만 달러 수준으로, 전년 대비 60% 이상 감소하며 201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연비가 높은 2스트로크 엔진 선박조차도 일 3만 달러 선에 그치고 있어, 운항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노후 선박의 조기 폐선이 잇따르고 있으며, 현대상선은 최근 2000년대 초반 건조된 LNG선 4척을 선박당 약 1920만 달러에 매각해 폐선했고, 현대 LNG 해운 역시 지난 17일 2000년 건조된 LNG선 “Hyundai Cosmopia”를 톤당 580달러의 고철 가격을 받고 폐선했다. 2025년 들어 해체된 LNG선은 이미 8척에 달해, 2024년 한 해 동안 해체된 선박 수(8척)와 맞먹는다.
LNG선 운임 시장의 붕괴 원인으로는 수요 정체와 공급 폭증이라는 구조적 불균형이 지목된다. LNG 물동량 증가율은 2024년 기준 0.3%에 불과했다. 과거 연간 6~8%씩 꾸준히 늘던 시기와 비교하면 급격한 둔화다. 물동량은 실질적으로 운반되는 LNG의 양을 뜻하며, 이 수치가 낮다는 것은 LNG선이 운송할 화물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공급 측면에서는 선박이 계속해서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국제적으로 재생에너지 사용이 늘고, 일부 국가에서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가속되면서, LNG 수요는 예상보다 빠르게 정체됐다. 그런데도 2019~2022년 사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위기 국면에서 수많은 선박이 장기계약 없이 투기적으로 발주됐다. 실수요보다는 미래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선박을 미리 주문한 것이다. 이런 선박이 2024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인도되며 공급 과잉이 심화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양상이 LNG 운반선 업계의 호황처럼 비쳐졌다.
그림 1 2025년 7월 22일 LNG 선박 수주 잔량 기준, 연간 시장에 새로 투입되는 LNG 운반선 수/데이터 출처=Clarkson
세계 최대 해운·조선 전문 리서치 기관인 클락슨리서치(Clarksons Research)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건조 중인 LNG선은 303척에 달한다. 이 중 2026년 한 해에만 98척, 2027년 역시 98척이 인도될 예정으로, 이는 LNG선 시장 역사상 가장 빠른 공급 증가 속도다. 공급이 이렇게 빠르게 늘면, 선박 운임은 더 떨어지고 선사들은 운영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LNG 운반선의 수요 마련을 기대할 수 있었던 구형 증기터빈 방식 선박도 209척에 불과하다. 보수적으로 접근해 이 선박이 모두 퇴출된다고 해도 시장에 새로 들어올 배를 충분히 상쇄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 구조에서는 신규 선박이 늘수록 경쟁이 심화되고, 상대적으로 낡은 선박은 운항 기회를 잃게 된다.
수요 감소는 LNG 수입 터미널의 가동률에서도 확인된다. 전 세계 평균 가동률은 2019년 44%에서 2023년에는 38%로 하락했다. 가동률은 설치된 시설 중 실제로 어느 정도가 운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수요 감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수입설비만 계속 지어졌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그림 2 LNG 수입 및 설비 지표/데이터 출처=Kpler
이러한 흐름은 국내 조선업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2021~2022년에 수주한 LNG 운반선 대부분은 2025~2027년 사이 인도될 예정이지만, 그 이후에는 신규 발주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주 절벽’이라는 말은 이처럼 일정 시점 이후 새 일감이 급감하는 현상을 말하며, 조선업체들의 경영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업계에서는 선종을 다변화하고, 친환경 선박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LNG 운반선 수주 편중을 다룬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수출입은행 양종서 수석연구원 역시 “국내 조선사들은 LNG선 중심의 수주 구조를 재점검하고, 대체 선종이나 친환경 선박 분야로의 전략적 전환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LNG선 시장 위기는 1980년대 오일쇼크 이후 유조선 시장 붕괴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에도 미래 수요를 과신한 선박 과잉 발주로 시장이 과포화됐고, 그 여파는 수년간 지속됐다. 이번 역시 단순한 순환적 침체라기보다는, 재생에너지 확산이라는 에너지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와 맞물린 구조적 위기로 보는 시각이 많다. 회복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아예 회복이 어려운 새로운 질서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공적 금융기관도 이러한 시장 변화를 고려한 선별적 지원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솔루션 신은비 에너지공급망 담당 연구원은 “노후 LNG 운반선의 조기 퇴출이 일정 부분 이뤄진다 하더라도, 이미 발주된 신규 선박의 시장 진입은 피할 수 없다”며 “LNG는 신재생에너지와의 경쟁에서 점차 후순위로 밀리고 있고, 화석연료 수송선으로서의 수명도 끝나가는 흐름이다”라고 말했다. 신 연구원은 “단기적 조정 국면이 나타나더라도 조선업계가 잘못 판단해 LNG 운반선의 과잉 공급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이라고 분석했다.
기후솔루션 오동재 공적금융 팀장은 "해상풍력설치선박 같은 신사업에서는 시장 선점 경쟁에 들어서면서 해외 기업들이 일찌감치 경쟁 중"이라며, "한국도 불황 속에서 모잠비크 LNG 선 발주 같은 경제성이 불확실한 사업에 금융지원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조속히 조선업의 다음 기회 선점을 위해 나아가야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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