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소 전략, 철강용 수요·공급 빠져 산업 전환 발목
현행 정부 계획대로 수소 80% 수입 시, 국내 100% 생산 때보다 비용↑, 안정성↓
“국내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지원정책과 실증사업, 가격보조 체계 등 패키지 제안”
2050년 탄소중립 달성과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해 철강 산업의 탈탄소화가 핵심 과제로 꼽히지만, 이를 가능케 할 국내 그린수소 조달 전략은 정부 정책에서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철강 공정을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할 경우, 수소를 국내에서 생산하느냐 아니면 해외에서 수입하느냐에 따라 철강 생산 원가가 최대 59만 원까지 차이 날 수 있어, 정부가 그린수소 조달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6일 기후솔루션은 ‘수소환원제철 국내 정착을 위한 핵심 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번 보고서는 현행 국가 수소 정책이 산업부문, 특히 철강 산업의 수소 수요와 공급에 대한 로드맵을 담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철강 산업의 탈탄소를 위해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활용하려면, 국내에서 그린수소를 생산해야 장기적으로 경제성과 공급 안정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철강 산업은 자동차, 조선 등 주력 제조업의 핵심 기초소재인 동시에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14~18%를 차지하는 산업 온실가스의 최대 배출원이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탈탄소 전환 흐름에 따라 앞으로 철강과 같은 기간산업의 경쟁력은 ‘저탄소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역량에 달렸다.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조기 상용화는 기후대응 전략을 넘어 산업 경쟁력 유지와 수출 리스크 회피를 위한 전략인 셈이다.
이에 정부도 수소환원제철을 도입해 2050년까지 2018년 대비 철강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을 85% 감축하겠단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다만 수소환원제철로 탄소 중립을 이루려면 공정에 ‘그린수소(재생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해 얻는 수소)’가 사용돼야 한다. 그러나 현행 국가 수소 정책은 그린수소 생산 지원 계획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
그림 1. 고로-전로 공정과 수소환원제철 공정의 비교 (출처: 포스코)
보고서는 ‘녹색 철강’을 생산하는 데 2050년까지 연간 약 405만 톤의 그린수소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현행 정부 계획에 따라 50~80% 이상 수입해 공급할 경우 공급 불안정성과 고비용 구조에 직면하게 돼, 결국 국내 산업계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표1. 수소 공급 방식에 따른 시나리오 비교
이에 보고서는 수소 조달 방식에 따라 철강 생산비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세 가지 시나리오로 분석했다. 그 결과 2050년 기준 철강 1톤당 생산 비용은 수소를 80% 이상 해외에서 조달할 경우(현행, 시나리오 1) 약 153만 원에 이른다. 하지만 그린수소 생산 인프라의 구축과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로 수소를 전량 국내에서 생산해 조달할 경우(시나리오 3) 약 95만 원 수준으로 38%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차이는 수소 1kg당 생산 원가 차이에서 생긴다. 보고서는 시나리오 1(정부의 현행 해외 중심 계획)에 따르면 2050년에도 수소 가격이 1kg당 2만 원 이상으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시나리오 3(국내 전량 생산 체계)에서는 1kg당 5700원 수준까지 낮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수요 연계에 따라 생산 단가가 지속적으로 낮아질 수 있지만, 해외 조달은 수소 운반을 위한 액화비용, 운송비용과 공급 불확실성 등 구조적 한계로 수소 단가가 높게 유지될 거란 설명이다.
표2. 수소 공급 시나리오에 따른 철강 생산 원가 변화 추이
보고서는 정부가 전망하는 해외 수소 도입 가격은 수소 액화·운송·기화 비용이 반영되지 않아 과소평가됐고, 이로 인해 국내에서 그린수소를 생산할 때의 편익이 제대로 측정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결국, 시나리오 3과 같이 국내 그린수소 생산 경제성 확보를 위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국내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지원정책과 실증사업, 가격보조 체계 등이 마련되지 않으면 기업으로선 그린수소를 자발적으로 도입할 유인이 적어진다. 정부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소환원제철 도입의 지연과 저탄소 공정의 해외 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보고서의 저자인 기후솔루션 철강팀의 김다슬 연구원은 “그린수소와 재생에너지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정부가 에너지 자립의 대안으로 주장하는 해외 재생에너지 및 그린수소 개발은 점점 심화되는 이상기후와 예측 불가한 국제정치 속에 오히려 에너지 안보를 저해하는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상용화돼도 설비를 가동할 연료가 없다면 정부가 약속한 철강 산업의 온실가스 감축과 국가 경쟁력 제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산업용 그린수소 조달을 위한 보조금, 세액공제, 차액계약(CfD) 등 정책적 수단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티센크루프(Thyssenkrupp)의 수소환원제철 실증 설비를 위한 그린수소 조달에 약 24조 원 규모의 공적 자금을 투입했고,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하에서 그린수소 1kg당 최대 3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있다. 영국과 일본도 수소 가격 안정화를 위한 CfD 제도를 도입하거나 확대하고 있다. 또한 잘츠기터(Salzgitter), 사브(SSAB), 진달스틸그룹(Jindal Steel Group) 등 해외 주요 철강사들은 이러한 수소 생산 지원 정책을 활용해 그린수소 실증 사업과 수소환원제철 개발 사업을 연계해 진행하고 있다.
보고서는 ‘제2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에 철강 산업 등 산업 부문의 수소 수요 예측과 공급 로드맵이 명확히 반영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앞서 수립된 제1차 기본계획은 발전과 수송 중심으로 짜였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를 철강 등 고정 수요 산업에 수소를 우선 배분케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환경성이 입증되지 않은 수소 종류를 제외해 ‘그린수소’ 위주의 정책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지역 재생에너지 발전과 연계한 그린수소 생산 실증 사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제주에서 진행 중인 풍력발전 기반 그린수소 생산 사례처럼, 포항 신광 풍력단지에도 실제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실증사업을 추진하고 이를 2026년부터 포항에서 진행 예정인 수소환원제철 기술 사업과 연계하자는 것이다. 이는 실증의 실효성을 높이고, 기업이 녹색철강 및 그린수소 시장에 조기 진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전략적 접근이 될 수 있다.
보고서의 공동 저자인 기후솔루션 권영민 연구원은 “그린수소 국산화를 통한 수소환원철의 국내 생산 확대는 한국 수소경제 실현을 촉진해 에너지안보를 강화할 뿐 아니라 신규 인프라건설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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