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시민사회 연대체 ‘국민연금기후행동’ 공식 출범
국민연금 금융배출량 최소 2710만 톤…21년 ‘탈석탄’ 선언했지만 실질적 조치·전략은 없어
“노후 보장해야 할 국민연금이 기후 외면하는 것은 존재 의의 부정”
국민연금이 ‘탈석탄’ 기조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낀 시민사회가 “우리의 노후는 미래의 기후에서 시작된다”며 국민연금의 책임 있는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연대체를 결성했다. 전국 각지와 다양한 세대가 한목소리를 낸 이번 연대는, 국민연금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기후위기 대응이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열 수 있음을 드러냈다는 의의를 지닌다.
‘지구의 날’인 22일 오전 11시, 경남환경운동연합·기후솔루션·빅웨이브·인천환경운동연합·충남환경운동연합·환경운동연합·60+기후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서울 충정로 국민연금공단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연금기후행동’의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발전은 파리협정에서 합의된 ‘지구기온 1.5도 상승 제한’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먼저 퇴출돼야 할 산업으로, 탈석탄은 이미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이 된 지 오래다. 자본시장 역시 ESG 원칙을 강화하며, 좌초자산이 될 석탄발전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국민연금도 2021년 ‘탈석탄’을 선언했지만, 이후 3년간 관련 정책 발표는 전무했으며 오히려 석탄 투자를 확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12월이 되어서야 뒤늦게 ‘석탄 관련 기업의 에너지 전환을 위한 투자전략’을 내놓았으나, 5년간의 비공개 대화 기간과 국내 기업에 대한 5년 유예 조항 등 여전히 실효성 있는 전략으로 보기는 어렵다. 석탄 산업 외에도, 국민연금은 고탄소 업종에 대한 투자를 줄이거나 명확한 전환 계획을 마련하지 않는 등 체계적인 기후 리스크 관리가 부족한 상황이다. 해외 주요 연기금과 비교해도 기후 관련 주주활동은 현저히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후즈굿의 공동 분석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민연금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 기업 312곳에서 발생한 금융배출량(투자·대출 등 금융활동을 통해 간접 기여한 배출량)은 약 2710만 톤(CO₂eq·이산화탄소 환산량)으로 우리나라 전체 배출량의 약 4%에 달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범한 ‘국민연금기후행동’은 국민연금이 ‘2040년 포트폴리오 넷제로 달성’을 포함한 책임 있는 투자 전략을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 노후보장을 위해 설립된 국민연금이 기후위기를 외면한 채 미래를 위협하는 투자에 나설 경우, 이는 기금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며 장기 수익성 확보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이날 기자회견의 첫 발언자로 나선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 황보은영 연구원은 “국민연금은 한국전력의 채권을 대규모로 매입해 석탄발전 유지를 지원하고, 포스코홀딩스·현대제철 등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최상위 기업들에도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환경단체 우르게발트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화석연료 투자액은 현재 약 51조 원에 달한다. 이어 그는 “국민연금은 2023년 ‘기후변화’를 중점관리사안으로 지정했지만, 단 한 곳도 중점관리 기업으로 지정하지 않는 등 껍데기뿐인 제도에 머물고 있다”며 “기후위기를 방치하는 관행이 지속될 경우 국민연금의 수익성은 갉아먹히고 국민의 노후는 불안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충남환경운동연합 조순형 탈석탄팀장은 “국민연금이 여전히 석탄발전에 대한 투자를 멈추고 있지 않아, 석탄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들의 생명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며 “충남도민들은 석탄발전소에서 나오는 이산화황·질소산화물·초미세먼지 등으로 인해 건강 피해를 겪고 있을 뿐 아니라, 본인도 모르게 ‘석탄발전 투자자’가 되는 현실에 놓여 있다”고 호소했다. 앞서 기후솔루션과 핀란드의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는 국민연금이 탈석탄 선언 이후 별다른 후속 정책을 내놓지 않은 2021~2022년 동안, 석탄발전소의 대기오염물질로 인해 약 1970명이 사망에 이르렀으며, 이 중 10% 이상인 220건은 국민연금의 석탄 투자에 의한 피해라는 분석을 발표한 바 있다.
미래를 위협하는 국민연금의 기후 리스크를 두고, 청년과 기성세대의 목소리가 함께 모이기도 했다. 청년 기후단체 ‘빅웨이브’의 도유라 활동가는 “태어났을 때부터 기후위기 속에서 살아온 첫 세대”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적 사회안전망으로, 그 ‘국민’에는 당연히 청년도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매달 성실히 납부하는 보험료가, 미래를 꿈꾸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데 쓰이고 있다”며 “청년세대의 불신과 불안을 해소하려면 국민연금은 미래 지향적인 투자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년 기후단체 ‘60+기후행동’의 강남식 운영위원 역시 “기후위기라는 암울한 미래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는 청년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 없어,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책임을 통감하며 행동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강 운영위원은 “폭염과 같은 이상기후로 취약계층 노인이 목숨을 잃는 등, 기후위기는 노년세대의 안전·복지·생명에도 치명적인 문제”라며 “기후 재앙을 증폭시키고 연금 고갈을 앞당기는 화석연료 투자는 청년과 노년 모두의 노후와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만큼, 국민연금은 즉각 이를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연금기후행동’은 국민연금이 국내 금융시장의 탈탄소 전환을 주도하게 만들기 위해선, 새롭게 출범할 정부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들은 국민연금 및 제21대 대선을 준비하는 각 후보를 상대로 △2030년까지 모든 석탄 투자를 철회하고 2035년까지 여타 화석연료 투자도 모두 중단할 것 △기후변화 관련 중점관리 기업의 선정 기준을 공개하고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것 △2040년까지 금융배출량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하고 단계적인 로드맵을 조속히 발표할 것 △주요 공약에 국민연금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목표와 전략을 반영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현장에서는 반기후 투자를 이어가는 국민연금이 역설적으로 기후위기로 인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퍼포먼스도 함께 진행됐다. 퍼포먼스에서는 국민연금을 상징하는 건물과 지폐 모형이 담긴 수조에 물을 붓고, 그 결과 건물은 잠기고 지폐는 물에 녹아 사라지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를 통해 국민이 납부한 보험료가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데 쓰이고 있으며, 결국 이를 운용하는 국민연금 또한 기후재앙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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