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다수는 제철소에서 나고 자란 지역 청소년...”어른들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
청소년들 “포스코 다니는 어른들도 ‘기후위기 멈춰야 한다’며 응원”
“승소하면 ‘기업도 미래세대의 환경권과 생명권 보호 의무가 있다’고 법원이 명확히 밝히는 계기”

“여름이 점점 더 더워지고, 운동장을 뛸 땐 숨이 턱 막힙니다. 앞으로 이런 환경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불안하기도 해요. 지금의 결정이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준다면, 저희도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민준, 대구 거주 청소년)
고로 중심 생산 방식이 초래할 기후·경제적 위험을 가장 크게 떠안게 될 청소년들이 포스코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본격화했다.
27일 미래세대 청소년 원고 10인이 포스코를 상대로 제기한 ‘광양 제2고로 개수 중지’ 소송의 첫 변론기일이 열렸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2시, 포항·대구·경기 등 전국에서 모인 청소년 원고 3인은 기후솔루션과 함께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앞서 2월 만 11~18세 청소년 원고 10인은 광양 제2고로 개수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해 미래세대의 환경권과 생명권을 중대하게 침해한다며 포스코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중 다수는 포스코 제철소 지역에서 자랐으며, 2명은 쟁점이 되는 광양 제2고로 인근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후 3월 포스코가 기존 ‘전면 개수’ 계획을 ‘부분 개수’로 수정했으나, 고로의 수명을 십수 년 연장시킨다는 본질은 그대로라는 게 원고 측 주장이다. 광양 제2고로는 개수 후 최소 십 수 년 추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되며, 15년 사용을 기준으로 예상되는 누적 배출량은 약 1억 3702만 톤으로 추정된다(약 980만 명의 연간 배출량에 해당).
“이 결정을 막지 않으면 피해는 우리가 감당”
이날 변론기일에 참석한 원고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이주원(14, 포항 거주)군은 기자회견에서 “소송 이후 주변에서 ‘대단하다’는 응원도 있었고, ‘공부나 하라’는 부정적인 말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활동이 공부보다 훨씬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며 소송 제기 이후의 소회를 이야기했다. 이어 “포스코를 직장으로 둔 어른들조차 ‘기후위기는 멈춰야 한다’고 응원해줬다”며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미래의 문제라는 걸 꼭 전하고 싶다”고 소송을 제기한 이유를 강조했다.
대구의 고등학생 조민준(16)군은 “고로가 무엇인지 모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설명을 듣고는 ‘그거 계속 쓰면 안 좋겠다’는 반응이 많았다“며 주변의 반응을 전했다. 그러면서 “포스코가 이번 개수로 십수 년 이상 고로를 더 쓰겠다는 건 앞으로 수십 년간 탄소를 계속 배출하겠다는 뜻”이라며 “정부가 기업이 기후위기 대응을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정말 줄일 수 있는 부분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누군가 막지 않으면 그 피해는 결국 우리 세대가 떠안게 된다. 이번 소송이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주는 결정에 대해 우리도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되는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고로에 대한 또래의 생각을 묻고, 인식을 제고할 방법을 고민한 경험담도 돋보였다. 경기도에서 온 고등학교 3학년 최현준군은 “소송 이후 학교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설문과 캠페인을 했는데, 친구 대부분이 기후소송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며 “기후위기가 우리의 학교 생활과 건강, 나아가 생존권까지 위협하는 현실임을 알리고 싶었고, 청소년들이 기후 행동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소송에서 우리가 승소한다면 법원이 ‘기업도 미래세대의 환경권과 생명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판결로 명확히 밝혀주는 계기가 된다”며 “포스코뿐 아니라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모든 대기업에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미래세대 원고의 지지자로서 참여했다는 기후솔루션 철강팀 권영민 연구원은 “포스코는 (매해) 대한민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7%를 차지한다”며 “전 세계는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시장을 바꾸고 있다. 탄소 배출이 많은 철강 제품은 앞으로 세계 시장에서 팔리지 않을 거란 뜻”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글로벌 철강사들 다수는 석탄 기반의 고로 설비 운영을 축소하고, 전기로 및 수소환원제철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며 “현재 진행 중인 고로 개수를 중단하고, 저탄소 철강 생산 설비로의 전환을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후 고로 개수, 자체 탈탄소 로드맵과도 충돌

고로는 철광석을 녹이는 과정에서 석탄을 태우는 생산방식으로, 포스코를 ‘국내 탄소 배출 1위 기업’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그럼에도 포스코는 오래된 고로 생산 체제를 고수하고 있으며, 최근엔 노후화된 광양 제2고로 개수에 착수해 수명을 또다시 십수 년 늘렸다.
이렇게 장기 운영을 전제로 한 개수에는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는데, 이는 포스코가 스스로 제시한 ‘전기로 도입(2026)’ 및 ‘수소환원제철 전환(2035)’ 계획과 방향성이 어긋난다. 전환 기술 투자에 속도를 내야 하는 시점에, 오히려 향후 십 수 년간 사용 가능한 고로 체제에 자원을 추가 투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뿐 아니라,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 감축’이라는 전남 2050 탄소중립 기본계획마저 달성이 불가능해진다.
더불어 포스코는 다수 환경법 위반 전력이 있다. 2019년 고로 대기오염물질 무단 배출로 조업정지 사전통지를 받았으나 과징금으로 감경됐다. 환경부 조사에서는 ‘재송풍’ 공정 누락 의혹이 불거졌고, 2020~2023년 사이 대기환경보전법·화학물질관리법 위반 사례도 반복됐다. 환경오염 논란을 해소하지 않은 채, 더 오랜 기간 탄소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고로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사회적 책임 회피라는 지적이다.
전 세계 주요 철강사는 수소환원제철·전기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지만, 포스코의 이번 결정은 글로벌 경쟁력과 제철소 지역경제 모두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 주요 철강사들은 이미 고로 폐쇄와 전기로 전환을 실행하거나 계획했다. 영국 타타스틸, 폴란드 아르셀로미탈, 일본제철 등이 대표적 사례다. 원고 측은 “국제적 흐름과 국내 법규, 시장 요구 모두가 ‘고로 연장’이 아닌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앞서 한국리서치가 기후솔루션의 의뢰로 포항, 광양, 당진, 순천 등 철강벨트 지역 주민 25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 철강 산업 탈탄소 인식조사’ 결과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7명이 ‘탄소 다배출 산업이 장기적으로 규제나 무역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또 “철강산업의 탈탄소 전환이 지역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 “탈탄소는 지역경제의 핵심 문제”라고 평가한 응답자가 70% 이상이었다. 이는 CBAM 등 국제 탄소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기후 대응이 산업 경쟁력은 물론 지역경제의 생존과도 직결된다는 인식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이번 소송은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 의무를 인정한 결정 이후, 기업의 기후 책임을 직접 묻는 국내 첫 사례다. 특히 전기로·수소환원제철 등 대안 기술이 제시되는 상황에서 기존 고로 생산 체제의 문제를 법정에서 다투는 세계 최초의 기후소송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국내 탄소 배출 1위 기업’ 포스코의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도 함께 진행됐다. 퍼포먼스는 실제 소장의 표지를 확대한 대형 패널에 이번 소송을 지지하는 일반 시민들의 메시지를 붙이는 방식으로 연출됐다. 첫 변론기일을 앞두고 진행된 ‘고로 개수 반대 온라인 서명’에는 1000명 넘는 시민이 지지하는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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