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사기구, 중기조치 최종 합의 불발…채택 연기되며 온실가스 감축에 타격
산유국·미국 반대 속 협상 난항, 한국 기후 리더십도 아쉬움 남겨
차기 회의서 시급한 중기조치 채택 나서야
국제해운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세계 첫 탄소세 시장 도입이 최종 문턱에서 불발됐다. 무탄소 연료 전환이 생존의 조건이 되는 역사적 전환점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국제사회의 합의는 끝내 1년이 미뤄졌다.
국제해운은 전 세계 교역의 90%, 우리나라의 경우 무려 99%를 차지만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서 제외돼 오랫동안 감축 사각지대에 머물러 왔다. 그러다 지난 4월,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중기조치 초안이 극적으로 승인됐고, 이번 14~17일 열린 국제해사기구(IMO) 특별회기에서 최종 채택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었다.
중기조치의 요지는 간단하다. 선박의 온실가스 집약도(GFI)에 따라 감축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면 인센티브를 받고 달성하지 못하면 탄소세를 내는 식이다. 이 탄소세로 조성되는 펀드는 무탄소 연료 전환뿐 아니라, 기후위기 취약국의 환경보호 및 적응을 위한 지원에도 사용되는 등 공정하고 정의로운 책임 분담(CBDR)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하지만 협상은 초기부터 난항이 이어졌다. 특별회기 시작 전부터 미국은 중기조치 찬성국을 상대로 관세와 비자 제한 등 보복 조치를 경고했고, 회기가 개막한 이후에도 산유국을 비롯한 반대국들은 안건 상정 자체를 거부하며 본 회의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오랜 시간 협상을 교착 상태에 빠뜨렸다. 이들은 수년간의 협의를 거친 안건임에도 “졸속 추진”이라고 비판하거나, “해운은 전 세계 배출의 고작 3%”라며 감축 필요성을 경시하는 주장까지 이어갔다. 일부 산유국에서 “개발도상국과 도서국이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불합리한 조치”라고 주장하자 오히려 도서국 측에서 “발효 시점까지 정의롭고 공정한 방향으로 지침을 개선해나가면 된다”고 반박하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결국 중기조치의 최종 채택 여부를 두고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교착이 이어지자, 회기 종료 몇 시간을 앞두고 중기조치 논의를 1년 연기할지 여부를 두고 표결이 진행됐다. 그 결과, ‘1년 연기’에 투표국들 과반의 표가 몰리면서 수년간의 지난한 논의 끝에 마련될 것으로 기대됐던 합의는 끝내 1년 후의 회의로 넘어가게 됐다.
이번 연기는 단순한 일정 조정이 아니며, IMO가 세운 ‘국제해운 2050 탄소중립’과 ‘2030년까지 10% 무탄소 연료 전환’을 향한 제도적 엔진이 한순간에 불투명해졌다게 . 이미 합의된 목표들을 향해 나아가고자 마련돼 온 이행 기반이 위축된 것이다.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제 남은 것은, 더 짧아진 시간 안에 훨씬 가파른 전환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라는 무거운 질문뿐이다. 만약 차기 회의에서 중기조치가 재논의 끝에 채택되더라도, 예상 발효 시점인 2028년부터 2030년까지 불과 2년 만에 20~30%의 감축을 달성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선사들에게도 한층 더 급격하고 과중한 감축 압박을 가할 것이다.
이는 세계 1~2위 조선업과 7위권 해운업을 모두 보유한 한국의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도 아쉬운 결과다. 국제해운의 탈탄소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된 상황에서, HMM, 현대글로비스, 팬오션 등 국내 주요 선사들은 이미 자체적인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립하고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때 기업들에게 절실한 것은 규제의 연기가 아니라, 명확하고 일관된 정책 신호다. 이 신호가 있어야 국내 조선·해운업계는 확신을 갖고 친환경 선박 발주와 무탄소 연료 전환에 속도를 내고, 결과적으로 현재의 선도적 위치를 강화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난항 끝에 중기조치 채택이 끝내 미뤄지면서, 오히려 투자 불확실성만 커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다만, 이번 연기는 더욱 큰 책임의 시작이 돼야 한다. 국제사회는 시급히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중기조치 채택을 재논의해야 한다. 이번 특별회기에서 발언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던 한국 정부 역시 다음 회의에선 더욱 적극적인 기후 리더십으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2030년은 전 세계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가를 결정적 분기점인 만큼, 1년의 지연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며 국제사회의 기후시계를 늦추는 심각한 후퇴다. IMO의 이번 좌초는 국제사회의 위중한 손실이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되풀이하지 않을 선택권을 여전히 갖고 있다. 이번 연기를 반면교사 삼아 ‘국제해운 2050 탄소중립 시대’의 항로를 더욱 굳건히 개척해 나가길 촉구한다.
보도자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