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자 44%, 국민연금 석탄 발전 투자 “축소해야”
기금 운용 시, 수익성만큼이나 국민적 공감과 합의, ESG 책임 고려해야
“기후위기 유발 기업에 대한 투자, 결국 국민연금 수익성 저하 부메랑”
새 정부가 ‘재생에너지 중심 사회로의 조속한 전환’을 강조하는 가운데, 국민 절반은 국민연금이 석탄발전 투자를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기후행동 연대체에서 활동 중인 기후솔루션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25일 발표한 ‘기후변화·에너지 국민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4%가 국민연금이 석탄발전 투자를 ‘축소’(완전 중단+점진적 축소)해야 한다고 답했다. 투자를 ‘확대‘(필요시 확대+적극적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은 24.7%에 그쳤다.(그림1)
연령별로는 만40세~59세 응답자의 50%, 만18세~39세 청년층의 38%가 ‘투자 축소’에 공감했다. 전 연령대에서 ‘투자 확대‘ 의견은 20% 안팎으로, 국민 다수는 석탄 투자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에 가까웠다.
그림 1. 국민연금의 석탄발전 투자에 대한 의견
석탄발전 투자 ‘축소’에 찬성한 응답자들은 ‘기후 변화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23.2%)과 ‘미래 에너지 전환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 투자 리스크’(22.0%), ‘환경오염과 대기질 악화 우려’(20.9%)를 이유로 꼽았다. 환경적 요인뿐만 아니라 석탄투자로 인한 재무적 손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주요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반면 석탄발전 투자 확대에 찬성한 응답자들은 ‘에너지 수급 안정성 및 신뢰도 향상‘(22.9%), ‘국가 에너지 안보 강화‘(18.9%), ‘석탄의 비용 경쟁력’(17%) 등을 이유로 들었다.
국민연금은 지난 2024년 12월 탈석탄 선언 3년여 만에 석탄채굴·발전 기업에 대한 투자제한 전략을 도입했다. 그러나 석탄 기업의 기준을 '석탄 관련 매출 50% 이상'으로 설정해 글로벌 연기금 대비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국내 기업에 과도한 유예기한을 주는 등 실효성 없는 대책을 내놓아 ‘그린워싱’에 불과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기금 운용 시 ‘수익성’ 만큼이나 ‘국민 공감과 합의’도 중요
그림2. 국민연금이 투자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
표1. 국민연금이 투자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
국민연금이 투자 결정을 내릴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수익성’과 ‘국민적 공감과 합의’, ‘환경·사회적 책임(ESG)’이 고른 선택을 받았다.(그림2) 수익성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비율(40.5%)이 1순위였지만 ‘국민적 공감과 합의’와 ‘ESG’가 중요하다는 비율을 합한 것(52.9%) 보다는 낮게 나타났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30세대(만18~39세)는 47%가 ‘수익성’을 우선으로 꼽았지만, 50대는 36%로 ‘국민적 공감과 합의’를 우선시했다. 2030세대의 경우 연금 고갈 우려와 불신이 깊은 상황에서 수익성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표1)
청년세대의 불안감을 반영해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민연금 관련 공약으로 '청년 자동가입', '군 복무·출산 크레딧 확대' 등 국민연금 가입 대상을 늘리는 내용을 내놓았다. 그러나 가입 대상을 확대하는 만큼 확보하게 될 기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투자 기준에 대한 개혁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후위기를 유발하거나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일수록 장기적으로 재무 리스크가 커지며, 결국 수익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 공감·기후 책임 둘 다 잡는 투자 전략 필요
국민연금은 운용자산 1200조 원에 달하는 글로벌 3위 공적 연기금이자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만큼, 국민연금의 투자 활동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은 국가 전반의 기후위기 대응과 깊이 연결돼 있다. 국민연금 포트폴리오 내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기업으로 한국전력공사(한전), 포스코홀딩스, 현대제철 등이 있다. 이들 기업의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국민연금의 수익성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기후 리스크를 이유로 글로벌 금융기관들로부터 투자가 배제되거나 강화되는 기후 규제로 인한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경우, 주가 및 기업가치가 하락해 국민연금 수익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종오 사무총장은 “국민연금 금융배출량의 상당 부분이 화석연료 및 철강 등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에 대한 주식 및 채권투자를 통해 발생한다"며 "이 산업군에 속한 기업들은 이상기후 등 물리적 리스크와 정책 및 기술 진보 등에 따른 이행 리스크를 일으키고, 이는 국민연금에 주식·채권 가치 하락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좌초자산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민연금이 금융배출량 감축을 위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기후친화적으로 재조정하거나 적극적인 기후행동으로 화석연료 기업들의 에너지 전환을 촉구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2023년 영국 최대 자산운용사 리걸앤드제너럴투자운용(LGIM)은 ‘석탄사업 운영 계획이 2050 넷제로 목표와 맞지 않는다’며 5년 연속 한전에 대한 투자를 배제했고, 포스코홀딩스도 2024년 금융배제추적기(Financial Exclusion Tracker) 데이터 기준, 기후·환경 문제 등을 이유로 유럽 30개 투자기관의 투자 대상에서 배제됐다.
이 같은 흐름 속에 국민연금은 2023년 3월 국민연금은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개정, 중점관리사안에 ‘기후변화 관련 위험 관리가 필요한 사안’을 추가했으나 기후솔루션 분석 결과 2024년 10월 말 기준 중점관리기업을 선정하거나 적극적 주주활동을 이행한 경우는 ‘0’건이었다. 기후위기는 단지 환경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라, 국민의 노후 자산을 위협하는 재정 리스크로 작용하는 만큼 국민연금이 기업의 실질적 변화를 유도하는 책임 있는 투자자로서 스튜어드십을 강화해 금융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의 황보은영 연구원은 “국민연금은 기후변화를 중점관리사안으로 지정하고 지난해 말 석탄투자 제한전략을 발표하는 등 기후 리스크에 대응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도 "해외 주요 연기금과 비교하면 중점관리 활동의 규모나 실효성, 투명성 측면에서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후변화는 이미 경제와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현재진행형의 리스크”라며, “이제는 선언적 단계를 넘어 포트폴리오 내 기후 취약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식별하고, 주주권을 활용해 기업에 중장기 전략과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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