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예비타당성 조사 당시 수요 증가 전망과 달리 2023년 이후 국내외 LNG 수요 급감
한국가스공사,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도 불구하고 수조 원 규모의 사업 강행
국제 LNG 시장 변화와 투자 리스크 무시…경제적 손실과 좌초자산 위험
충남 당진에서 정확한 수요 분석 없이 당진 액화가스(LNG) 터미널 확장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최신 전망대로라면 가스 설비의 좌초자산화가 명료해, 당진 LNG 터미널이 국가와 지역 경제에 큰 리스크로 부상할 것이 우려되면서 사업에 대한 공익감사가 청구됐다.
충남환경운동연합, 당진환경운동연합, 기후솔루션은 17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정문 앞에서 한국가스공사의 당진 LNG 터미널 2단계 및 3단계 확장 사업에 대한 경제적 타당성 재조사를 요구하는 공익감사를 청구하고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당진 LNG 터미널 확장 사업은 2018년 한국가스공사가 당진 석문국가산업단지 내에 총 270만kl 규모의 LNG 저장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2019년 완료된 예비타당성 조사는 LNG 수요 증가를 전제로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했고, 이후 2022년 한국가스공사 이사회에서 2단계 사업이 승인되면서 2025년 1분기 내 건설공사 용역 계약이 발주될 예정이다.
그러나 2023년 발표된 제15차 장기천연가스수급계획에 따르면 국내 LNG 수요는 2023년 4509만 톤에서 2036년 3766만 톤으로 약 1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국제에너지기구(IEA) 또한 모든 시나리오에서 전 세계 LNG수요가 2030년부터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변화한 시장 환경과 정책적 변화에도, 수요예측 재조사와 경제성 평가를 진행하지 않은 채 사업을 강행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단체들은 △한국가스공사는 당진 LNG 터미널 2단계 건설을 즉각 중단하고 △탄소중립에 부합하는 최신 LNG 수요 전망을 기초로 타당성 재조사를 수행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불필요한 가스 인프라 확대를 중단하고 △한국가스공사는 가스가 아닌 재생에너지 기반의 그린수소 밸류체인 구축에 집중하고 △감사원은 수요를 과대 추정해 기후위기 극복에 역행하고 있는 한국가스공사에 대해 엄중한 감사를 실시할 것도 요구했다.
단체들은 이번 공익감사 청구를 통해 한국가스공사의 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현재 사업이 전제하고 있는 가정들이 현실과 크게 괴리되어 있음을 강조했다.
첫째, 2019년 예비타당성 조사는 LNG 수요 증가를 가정하여 평가가 진행되었으나, 이후 국내외 LNG 수요 감소 전망이 뚜렷해진 상황에서도 한국가스공사는 이를 반영하지 않은 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LNG 소비 전망이 크게 변동된 상황에서 이를 반영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인프라 건설은 필연적으로 경제적 타당성을 잃게 되며, 대규모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사업 추진의 근거가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둘째, 한국 정부는 202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2021년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하는 등 LNG와 같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으나, 당진 LNG 터미널 확장 사업은 이러한 국가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LNG는 상대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연료로 간주되지만, 채굴과 운송, 저장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메탄이 배출되며, 국제적으로도 점차 감축 대상으로 다뤄지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2036년까지 발전용 LNG 비중을 27.5%에서 9.3%로 낮추는 계획을 세운 바 있으며, 이에 따라 발전용 LNG 수요가 급감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진 LNG 터미널은 기존 계획대로 확장을 추진하고 있어 탄소중립 정책과 배치된다.
셋째, 당진 LNG 터미널 확장이 진행될 경우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될 예정이나, 국제적인 LNG 수요 감소와 국내 에너지 전환 흐름을 고려할 때 향후 가동률 저하와 투자금 회수 실패로 인해 사업이 좌초자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은 한국의 LNG 터미널 가동률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낮은 수준이며, 기존 저장시설만으로도 겨울철 최대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현재도 터미널 가동률이 저조한 상황에서 새로운 저장시설을 추가로 건설할 경우, 시설 이용률이 더욱 낮아져 재정적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기후솔루션 신유정 변호사는 “'공기업·준정부기관 총사업비관리지침'에 따라, 공공기관 장은 현저한 수요 감소가 예측되는 경우에는 사업의 수요 예측 조사를 다시 할 의무가 있다. 또한 사업 강행 시에 예산낭비 소지가 있다면 사업의 타당성 조사도 다시 할 의무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 신 변호사는 “한국가스공사는 공기업으로,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뿐 아니라 공공성도 고려할 책임이 있다”라며 “그런데 화석연료인 가스 유통을 위한 대규모 인프라 건설을 강행한다는 것은, 지난해 헌법재판소 결정이 확인한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에도 반한다”라고 설명했다.
충남환경운동연합 유종준 기후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전국 석탄화력의 절반이 위치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있는 충남은 탈석탄 이슈가 대두되자 이번에는 곳곳에 LNG 설비가 들어서면서 커다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당진 제5LNG기지뿐만 아니라 인근인 아산산단 고대지구 당진탱크터미널과 현대제철 LNG발전소, 얼마 전 사업이 철회된 보령 LNG 터미널 등 각종 LNG 설비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석탄을 LNG로 대체해서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조치며, 감축량도 얼마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탄소중립 추진으로 조만간 사업성이 부족해 좌초자산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충남에 탈석탄에 이은 탈LNG로 인해 또 하나의 골칫거리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진환경운동연합 김정진 사무국장은 “가스 수요가 감소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당진 5LNG 2단계 건설사업은 온실가스 배출 1위 지역으로서 지역의 탄소중립 추진을 가로막는 애물단지로 전락될 수 밖에 없다”라고 발언했다.
기후솔루션 김서윤 연구원은 “LNG 터미널의 수익성 악화는 결국 국민 세금으로 충당될 가능성이 높다.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가 수요 예측이 빗나간 상태에서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공공재정 낭비이며, 이는 책임 있는 경영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미래 에너지 전환에 부합하는 한국가스공사의 합리적인 결정이다. 당진 LNG 터미널 사업이 불필요한 인프라로 남지 않도록 공기업의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위와 같은 우려에 LNG 사업의 경제성을 재검토한 끝에 사업이 철회된 사례도 있다. 2024년 한국중부발전은 보령 LNG 터미널 사업을 철회했으며, 한국남부발전 역시 하동 LNG 터미널 건설 계획을 백지화했다. 두 사례 모두 LNG 수요 감소와 경제적 타당성 저하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세 단체는 한국가스공사의 사업 추진이 국가 정책 및 에너지 시장 변화와 부합하지 않으며, 공공 예산 낭비와 환경적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철저한 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단체들은 이번 공익감사 청구를 통해 한국가스공사의 위법·부당한 사업 추진에 대한 감사를 요청하며, 정부와 공공기관이 탄소중립 목표와 일관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당진 LNG터미널 2, 3단계 사업에 관해 한국가스공사가 국내외 LNG 수요 감소 전망을 반영한 수요예측 및 타당성 재조사를 실시하도록 감사원에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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