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조 투자에 6000조 탄소비용…한국이 감당해야 할 진짜 숫자들
근시일 안에 수요처 잃는 가스와 탄소부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는 명백한 역행
25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미국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주 주지사와 만나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등 에너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이 사업의 계획은 북극권 북쪽 가스전에서 남부까지 1300km 길이의 가스관 건설을 통해 가스를 이송하고, 선박을 통해 일본, 한국 및 기타 아시아 국가로 수출하려는 구상이다. 이 사업 논의에서 한국은 기후리스크를 포함한 경제적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64조 원이라는 막대한 사업비, 30년에 걸친 가스 생산 계획, 그리고 천문학적인 탄소 비용과 좌초자산 위험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해당 사업은 한국에 탄소부담만 떠안게 하는 위험한 투자에 불과하다.
알래스카 북부에서 가스를 상업화하려는 시도는 1970년대 파이프라인 구상에서 시작되어 수십 년간 이어졌지만, 높은 난이도와 낮은 경제성으로 번번이 무산되어왔다. 2010년 알래스카 주정부 산하의 알래스카 가스라인 개발공사(AGDC)가 설립된 이후, 2011년 BP-코노코필립스, 2014년 엑손모빌-트랜스캐나다 등이 참여했으나 모두 중단되었다. BP, 코노코필립스, 엑손모빌 3사는 알래스카 AGDC와 함께 LNG 수출형 프로젝트(AKLNG)를 재추진했지만 2016년경 모두 철수했고 결국 AGDC만이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후 2017년 중국과 62조 원 규모 공동개발 계약이 체결되었지만, 2019년 또다시 무산됐다.
이처럼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지난 수십 년간 민간 기업들이 참여했다가 하나같이 철수하며 번번이 좌초됐다. 장기계약으로 수요처 확보가 필수적인 사업임에도, 시장에 경제성과 안정성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높은 개발비용, 낮은 가격 경쟁력, 에너지 전환 흐름, 정치적 불확실성 등 구조적 리스크가 고스란히 중첩되며, 이 사업이 지속가능성을 갖추기 어렵다는 점은 수차례 입증되어왔다. 특히,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청정에너지 전환이 시급한 이 시점에 한국이 핵심 투자자로 참여하게 된다면, 그동안 시장에서 모두가 외면해온 막대한 리스크를 떠안을 것이 분명하다.
2023년 공개된 미국 에너지부(DOE)의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최종 환경영향평가서 (Final SEIS)에 따르면, 알래스카 북부 슬로프에는 가스 자원이 총 41.1 Tcf(약 9억 3480만 톤) 존재하며, 빠르면 2029년부터 약 30년에 걸쳐 약 27.8 Tcf(6억 3230만 톤)를 각국에 수출할 계획이다. 이는 2023년 기준 한국의 연간 가스 도입량(4411만 톤)의 약 14배에 달하는 규모다.
해당 환경영향평가서는 한국을 주요 수출국 중 하나로 설정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LNG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산했다. 이 추정치를 바탕으로 중앙은행 및 금융감독기구 협의체(NGFS)가 제시한 연도별 탄소비용 데이터를 적용해 계산하면, CCS(탄소 포집 저장 기술) 적용 여부에 따라 총 탄소비용은 약 3300조 원에서 최대 6300조 원에 이를 수 있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 총 부채 수준에 맞먹는 규모로, 향후 30년간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탄소 비용이 그만큼 막대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문제는, 이렇게 막대한 사업비와 탄소비용을 감수하며 LNG를 확보하더라도, 사용할 곳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해당 환경영향평가서는 LNG 수요가 향후 30년간 현재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배출량과 사회적 비용을 추산했지만, 이는 현실과 괴리가 크다. IPCC를 비롯한 주요 국제기구들 역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석유·가스 수요가 빠르게 줄어들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와 공급 다변화라는 이유로 이처럼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에 투자하게 된다면 에너지 공급 안정은커녕, 오히려 동시에 경제와 기후대응 리스크라는 위험에 한국을 깊이 빠뜨릴 수 있다.
세계는 이미 청정에너지 전환이라는 경쟁에 돌입했고, 한국은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청정에너지 투자는 2015년 이후 화석연료 투자를 꾸준히 앞질러 왔으며, 2024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연간 2조 달러를 돌파했다. 이 같은 흐름은 단기 정권 변화와 무관하게 지속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전환은 선언이 아닌 세계시장의 명확한 투자 우선순위로 자리 잡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택이 아닌 전환으로 곧장 가는 일이다. 공적 금융이 여전히 화석연료 인프라와 해외 자원개발에 쏠려 있는 지금, 정부는 보다 앞으로 비용이 커질 화석연료 중심의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 청정에너지에 대한 명확한 정책 시그널을 제시해야 한다. 청정에너지, ESS(에너지 저장 시스템), 그리드 강화와 같은 미래 산업에 과감히 투자하고, 산업계가 전환을 준비할 수 있도록 정책적 전환점을 제시해야 한다.
보도자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