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실패: 친환경 팜유 인증으로 가릴 수 없는 산림파괴
research 2023-03-21
바이오에너지 바이오연료

미션실패: 친환경 팜유 인증으로 가릴 수 없는 산림파괴

소개

팜유 생산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 생태계 파괴, 인권침해의 실태가 심각함에도 팜유 생산량은 점점 늘고 있습니다. 현재 늘어나는 팜유 사용량이 최근 바이오디젤과 바이오중유 등 바이오연료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고서 ‘미션실패: 친환경 팜유 인증으로 가릴 수 없는 산림파괴’에선 팜유 생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정책을 알리고, 이를 막기 위한 정책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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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세계는 이미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전환기에 들어선 지 오래다. 화석연료 사용을 필두로 한 대기 중 온실가스 증가와 생태계 파괴로 인한 생물다양성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자연재해와 글로벌 공급망 혼란이 심화하는 가운데 세계의 토착민들은 생계를 잃어간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취약 사회 계층에 더욱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이 보고서는 수십 년간 동남아시아의 열대우림을 파괴해 온 팜유 산업의 환경적ᆞ사회적 문제를 재조명한다. 팜유는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쓰이며, 그 사용량도 가파르게 증가하는 식물성 기름이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팜유는 대부분 다국적기업의 산업형 플랜테이션에서 생산된다. 이러한 플랜테이션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토착민과 지역공동체(IPLC)의 터전을 앗아가고 있다.

 

문제는 팜유가 ‘친환경 기름’으로 포장되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대체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는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자발적 인증(voluntary certification) 제도인 지속가능한 팜유 협의회(RSPO)를 중심으로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열대우림과 숲의 수호자를 몰아내는 팜유 플랜테이션

세계의 팜유 생산량은 지난 40년간 50배 증가하였다. 2001년과 2015년 사이에만 대한민국 면적에 달하는 약 1천만 ha의 산림이 팜유 플랜테이션 개발로 파괴되었다. 팜유 플랜테이션으로 인한 산림파괴의 67%가 인도네시아, 26%가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규모 팜유 생산은 숲을 모두 베고 플랜테이션을 조성하기에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권ᆞ환경 문제를 야기한다. 열대우림이 팜유 플랜테이션으로 전환되면 1ha당 174톤의 탄소(174tC/ha)가 배출된다. 습지대인 이탄지(peatland)는 일반 산림에 비해 18~28배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전 세계적으로 405개 생물종이 팜유 생산으로 인해 피해받고 있으며, 이중 최소 193개 종이 멸종위험에 놓여있다.

 

토지강탈 및 개간은 주민들의 의사 및 동의와 무관하게 이루어져 지역공동체의 관습적 권리를 침해한다. 이러한 팜유 기업의 토지분쟁이 전 세계로 확산되며, 문제를 제기하는 토지ᆞ환경옹호자(land and environmental defender)는 회사와 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다. 플랜테이션의 화학물질과 오폐수는 토양과 하천을 오염시켜 지역주민의 식량권과 물에 대한 권리를 침해한다. 팜유 플랜테이션에서의 노동은 고위험ᆞ장시간ᆞ저임금으로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이 일반적이다.

 

 

지속가능성보다 양적 성장이 우선인 한국의 팜유 공급망

국내에서는 수입한 팜유를 주로 식품과 생활용품 제조에 사용해왔다. 그러나 2012년 산업통상자원부에 의해 신ᆞ재생에너지 지원 정책인 공급의무화제도(RPS)와 연료 혼합의무화제도(RFS)가 도입되면서 바이오연료를 위한 팜유 사용이 급격하게 확대되었다. 현재 수송용 바이오디젤과 발전용 바이오중유에 투입되는 원료의 44%가 팜유 및 팜 부산물이다.
 
 
 
더 나아가 환경부는 2021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에 팜유를 포함한 바이오연료 생산ᆞ제조를 녹색 경제 활동으로 분류하였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산림청은 해외 농업ᆞ산림 자원 개발을 명분으로 포스코인터내셔널, LX인터내셔널, 대상주식회사, 제이씨케미칼의 팜유 사업에 2020년까지 총 800억 원 이상의 융자를 제공해왔다. 이들의 사업장이 산림파괴ᆞ인권침해에 연루된 것으로 비판 받자 산림청은 팜유 플랜테이션을 융자 대상에서 제외하고, RSPO 인증 획득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렇듯, 인권ᆞ환경 기준이 없는 채 영위되고 있는 정부의 팜유 지원 정책은 국내 팜유 기업 공급망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는 유인이 되지 못한다. 식품 업계에서는 RSPO 회원인 기업조차 RSPO 인증 팜유를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량이 3분의 1에 미치지 않는다. 생활용품 업계의 경우,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은 질량균형(mass balance) 모델과 크레딧 거래(book and claim) 모델의 RSPO 팜유 사용에 머물고 있다. 바이오연료 업계는 산림파괴ᆞ인권침해 고위험 업체로부터 팜유를 공급받지만, 어떠한 지속가능성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팜유 플랜테이션을 운영하는 5개 기업 중 포스코인터내셔널과 삼성물산은 RSPO와 산림파괴ᆞ이탄지파괴ᆞ착취 금지(NDPE) 정책을 채택했지만, 지역사회와의 갈등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결국, 국내에서 사용되는 팜유 중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팜유는 전무하다.
 
 

RSPO, 산림파괴 면죄부의 등장

세계적으로 팜유 생산지에서의 인권ᆞ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대두되고, 특히 대중의 관심이 커지자 팜유 업계는 자발적 인증제인 RSPO를 도입하였다. RSPO는 팜유 생산 업체의 경우 원칙 및 기준(P&C)에 따른 생산자 인증을, 중류ᆞ하류 업체의 경우 공급망 인증 표준(SCCS)에 따른 공급망 인증을 발급한다.
 
그러나 RSPO 인증 기준은 산림파괴가 없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RSPO는 중단기준일(cut-off date)인 2005년 이전에 발생한 일차림(primary forest) 및 고보전가치(HCV) 지역 파괴나 2018년 이전에 발생한 고탄소저장(HCS) 산림, 이탄지(peatland) 및 기타 보전 지역의 파괴 여부와는 상관 없이 인증을 발급한다.
 
만약 RSPO 인증을 받고자 하는 기업이 중단기준일 이후에 보전 대상 지역을 파괴하였어도 ‘선(先)산림파괴 후(後)인증’ 제도인 개선 및 보상 절차(RaCP)를 통해 인증을 획득할 수 있다. 한국 기업 중에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축구장 37,000개 면적의 산림을 파괴한 후 RaCP를 조건으로 RSPO 인증을 획득하였다.
 
한편, 공급망에서 팜유를 사용하는 기업이 채택하는 질량균형과 크레딧 거래 모델 역시 팜유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질량균형은 RSPO 기준을 준수하는 팜유를 공급망 내에서 계속 분리하여 관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급망 어디에서든 미인증 팜유와의 혼합을 허용한다. 크레딧 거래는 RSPO 팜유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비용만 지불하면 RSPO 팜유 생산에 금전적 기여를 한다는 명목으로 RSPO 라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RSPO: 자체 기준을 지키지 못하는 이행 수준

RSPO 인증 과정의 심사와 각종 감사는 인증을 받고자 하는 기업이 RSPO가 지정한 제3자 감사기관 중 하나를 직접 고용해 이루어진다. 감사기관이 피감사 기업에 재정적으로 의존하는 이해충돌적 구조는 감사기관이 적극적으로 RSPO 기준 위반 사항을 적발하고 인증 취득을 제한하기 어렵게 만든다.
 
RSPO 사무국도 위반 사항을 발견해도 회원자격을 정지하는 경우가 드물고, 자격이 정지된 후에도 신속하게 인증을 회복해주는 것으로 비판 받는다. 인도네시아에서만 축구장 33만 개 면적에 달하는 RSPO 인증 플랜테이션이 산림법을 위반하며 운영 중이다.
 
또한, RSPO 사무국은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접수된 141개의 진정 중 49%를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제도적 한계와 이행 실태를 볼 때, 팜유 플랜테이션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RSPO의 ‘지속가능한 팜유’ 주장은 소비자를 기만한다.
 
 

팜유 공급망의 산림파괴ᆞ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노력

이렇듯, 산림파괴ᆞ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기업의 자발적 행동에 의존하는 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이에 세계 각국은 기업 공급망 실사를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했거나 입법 중이다. 유럽연합(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CSDD는 역내 기업으로 하여금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인권 및 환경에 대한 잠재적ᆞ실제적ᆞ부정적 영향을 확인하고, 방지ᆞ완화ᆞ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인권환경실사 정책 수립 및 이행을 요구한다.
 
심각한 산림벌채를 유발하는 소비재에 대해서는 보다 높은 수준의 인권환경실사를 요구하기도 한다. 2022년 12월 유럽의회를 통과한 「산림벌채 관련 상품에 대한 규정」(EUDR)은 팜유를 비롯해 소고기, 대두, 커피, 코코아, 목재, 고무 및 이들의 파생 상품을 산림벌채 품목으로 지정하여 규제한다. 이들 상품을 수입ᆞ수출ᆞ판매하고자 하는 업체는 취급 상품이 산림벌채가 발생한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한다.
 
EU는 바이오연료에 대해서도 「재생에너지지침」(RED) 내 선별적인 지속가능성 인정기준을 통해 산림파괴ᆞ탄소배출ᆞ인권침해에 대응해왔다. 이에 따라 EU에서는 온실가스 최소 저감 기준을 충족하고, 탄소저장량과 생물다양성이 우수한 지역에서 수급되지 않은 원료로 만든 바이오연료만 재생에너지로 인정받는다. 나아가, EU는 팜유와 대두를 심각한 간접토지이용변화(ILUC)를 일으키는 고위험 원료로 지정하여 수송용 바이오연료에서 퇴출 중이다.
 
 

국내의 규제 공백과 나아가야 할 방향

한국은 공급망 실사법, 산림벌채 상품 규제, 바이오연료 지속가능성 기준 모두 부재한 상황이다. 더불어 정부는 지속가능항공유(SAF), 바이오선박유 등 도입을 통한 신규 바이오연료 확대를 꾀하고 있다. 아무런 지속가능성 기준 없는 SAF 확대는 수송용 팜유를 퇴출하는 선진 경제권의 동향을 역행하며, 국내 바이오연료의 팜유 의존도를 더욱 심화할 것이다. 정부는 팜유의 사회적ᆞ환경적 영향을 인식하고, 기업 공급망 실사 의무화와 연계한 산림ᆞ에너지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기업의 ESG 경영도 인권침해ᆞ산림파괴 리스크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내재화하지 못하고, 피상적인 지표와 실사의 외주화에 머물고 있다. 기업은 실사 의무의 주체로서 공급망 인권환경실사를 외부 인증제에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 과정에 통합하여 실효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포괄적인 NDPE 정책을 시행하고, 같은 수준의 정책을 채택한 공급자ᆞ구매자와 거래함으로써 공급망 전반에서 인권침해ᆞ산림파괴 없는 팜유 사용을 보장해야 한다.
 
기업은 모든 사업과 평가 과정에서 국제인권규범이 보장하는 토착민과 지역공동체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팜유 플랜테이션 개발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업의 모든 과정에서 자유의사에 의한 사전인지동의(FPIC)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특히 토지ᆞ환경옹호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인권 존중 원칙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이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책 권고

 

1. 기업 공급망 실사법 도입

정부는 기업이 공급망을 통해 관계를 맺은 모든 사업체를 대상으로 인권환경실사를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한다. 금융기관ᆞ투자기관도 금융 서비스를 통해 인권침해ᆞ환경파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지 않도록 실사를 의무화한다. 행정기관은 실사 의무 불이행 단위에 대해 시정조치를 취하고 피해자 구제 절차의 근거를 마련한다.

 

 

2.산림벌채 고위험 상품 규제

 

정부는 산림파괴(deforestation)와 산림황폐화(forest degradation)를 야기하는 고위험 상품을 지정한다. 행정기관은 이들 공급망에 산림벌채가 연루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권환경실사를 통해 증명하지 못하는 사업자의 상품의 수입ᆞ판매와 금융지원을 금지하고 시정조치를 취한다. 이때, 공급망 실사는 합법성 요건이나 자발적 인증으로 대체할 수 없다.

 

 

3. 바이오연료 지속가능성 기준 도입

 

정부는 바이오연료의 신ᆞ재생에너지 지원 및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산입 의무 조건으로 선별적 지속가능성 인정기준을 도입한다. 지속가능성 기준은 온실가스 배출, 생물다양성 손실, 환경오염 등을 포함하며, 산림벌채가 발생한 곳에서 수급되거나 인권침해에 연루된 원료는 사용을 금지한다. 기준 준수 여부는 자발적 인증이 아닌 공급망 실사를 통해 증명한다.

 

 

4. 산림벌채 상품 공적금융 지원 중단

 

농림축산식품부, 산림청 등 정부 부처와 한국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공적금융기관은 금융 서비스 및 투자의 기준이 되는 인권환경지침을 마련한다. 이에 따라 지원 대상이 산림벌채 고위험 상품 공급망에 연루된 경우, 사업자가 우선 인권환경실사를 시행하고,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경우에만 지원을 승인한다.

 

 

5. 기업 인권환경실사 시행

 

기업은 사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잠재적ᆞ실제적ᆞ부정적 영향을 확인하고, 방지ᆞ완화ᆞ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인권환경실사를 정책을 수립 및 이행한다. 팜유 생산 기업은 생태계를 보호하고, 토착민과 지역공동체(IPLC)의 인권을 존중하며 플랜테이션을 운영한다. 팜유 사용 기업은 NDPE 이행으로 공급망에서 사회적ᆞ환경적 문제가 없는 팜유만 취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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