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토론회서 주택용 전기소비자의 재생에너지 선택권 보장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 모색해
기업들만 가능한 재생에너지 소비, 주요 선진국선 일반 소비자도 선택할 제도 있어
기후위기가 심화되고 시민 차원에서도 기후 대응의 공감대가 높아지고 주택용 전력 소비자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재생에너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국회에서 이를 위한 제도를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2일 국회의원 박지혜 의원실, 소비자기후행동, 기후솔루션이 공동 주최한 ‘주택용 소비자의 재생에너지 선택권 보장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개최됐다.
현재 국내 전력시장에서 기업은 K-RE100과 같은 제도를 활용해 재생에너지 기반의 전기를 선택할 수 있는 반면, 가정에서는 이러한 선택권이 사실상 제한되어 있다. 주택용 소비자들이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재생에너지를 선택해 개인의 차원에서도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해외 주요 국가의 재생에너지 선택 방안 사례를 살펴보고 한국에서의 실현 가능한 정책적·제도적 대안을 모색했다.
박지혜 의원은 개회 인사말을 통해, 이번 토론회가 한국의 에너지 전환과 소비자의 권리를 논의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최근 헌법재판소가 청소년들이 제기한 기후헌법소원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언급하며, 주택용 소비자들이 재생에너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또한 필수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전력공사가 공급하는 전력의 60% 이상이 화석연료 기반이며, 일반 가정이 독립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는 방안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짚으며, 소비자들이 실질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첫번째 발제에서는 기후솔루션 최서윤 연구원이 일본과 호주의 사례를 중심으로 소비자의 재생에너지 선택권 보장 방안을 소개했다. 일본에서는 신규 전력판매업체를 통한 전력 선택권이 확대되면서, 소비자들이 소비패턴, 사용량, 타상품 결합 여부 등에 따라 다양한 요금제를 바탕으로 친환경 전기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었다. 일본의 한 업체는 소비자들이 재생에너지 전기로 구매한 것과 동일한 물량의 비화석증서(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라는 증명서)를 조달하는 방식으로 고객에게 실질적으로 100% 재생에너지 전기를 공급한다. 소비자가 전기 사용량을 시뮬레이션하고 적합한 요금제를 찾을 수 있는 가격 비교 사이트가 등장하는 등, 일본에서는 신규 전력회사와의 계약이 증가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정부가 직접 관리·감독하는 그린파워(GreenPower) 프로그램을 통해 소비자가 전력회사와 계약을 맺고 일정 비율의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호주 정부는 고객이 재생에너지 전기로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전기량을 1:1로 재생에너지 인증서(LGC, large generation certificate)와 매칭하는 메커니즘을 채택했다. 전기소비자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10~100%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 kWh당 4~8센트를 더 지불하는데, 하루 1호주달러(약 900원)를 더 내는 정도다. 이러한 해외 사례는 주택용 소비자의 재생에너지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적·제도적 대안이 될 수 있으며,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구조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석광훈 박사는 영국 옥토퍼스 에너지(Octopus Energy)의 재생에너지 전기요금제 운영 사례를 소개했다. 옥토퍼스 에너지는 재생에너지 100%로 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신생 전력회사로 IT 역량을 살려 플랫폼으로서의 장점을 살려 전기소비자에게 다양한 요금제를 제공한다. 또한 공급이 과잉되는 시간대에 전기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사전 신청자에게 무료 전기를 제공하거나, 피크 수요 시간대에는 소비자들에게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옥토퍼스 에너지는 요금 조건, 가격, 고객 리뷰, 앱 서비스 측면에서 기존 전력회사인 EDF와 비교해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전력시장에서 수동적이었던 소비자를 주체적인 참여자로 전환하며, 전기요금 절약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확대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만들었다. 특히, 변동성이 높은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는 에너지 전환 시대에 소비자의 능동적 대응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소비자 주도의 전력 사업 모델을 창출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전력시장이 개방되어 있어, 소비자들이 다양한 전력공급자를 선택할 수 있으며, PPA(전력구매계약), 녹색 요금제, 재생에너지 인증서(Guarantees of Origin, GO) 시스템 등을 활용하여 재생에너지 전력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영국과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전력공급사들이 다양한 요금제를 제공하면서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석 박사는 한국도 전력시장 개방과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를 통해 재생에너지 보급을 촉진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한 정책적 변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어지는 지정토론에서는 이투뉴스 이상복 부국장의 사회로 경기도 에너지산업과, 한국전기연구원, 브이피피랩, 한겨레,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산업정책과, 소비자기후행동 등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주택용 재생에너지 선택권 도입의 필요성과 현실적 대안을 논의했다.
경기도 에너지산업과 김연지 과장은 경기도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중심으로 의견을 나눴다. 경기도는 재생에너지가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흐름에 맞춰, 중앙집중형 에너지에서 분산형 에너지로의 전환을 추진하며 산업적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 유휴부지를 활용한 도민 참여형 발전소, 민간 기업의 자발적 참여 유도, 도민 대상 지붕 태양광 설치 지원 확대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 보급을 가속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도시가스 배관 설치 요청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에너지 자립 마을 조성을 요구하는 민원이 늘어나고 있어, 일반 주민들도 재생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강조했다. 또한, IT 기반 모니터링 플랫폼 도입으로 효율성과 수익성을 높이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선택권 관련 제도가 정비될 경우 더욱 빠른 확산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전기연구원 이진영 선임연구원은 현재 재생에너지 직접 전력구매계약(PPA)의 적용 대상이 산업용·일반용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최소 1MW 규모 이상의 설비가 필요해 일반 소비자가 참여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국가 전력 시스템의 신뢰도와 경제성을 고려하면서도 적용 대상을 확대할 방안으로 가상 PPA를 제안했다.
브이피피랩 차병학 대표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기술, 제도, 소비자 의식 중에서 특히 제도적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제주에서 재생에너지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경험한 시장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한국 전력 시장은 일본처럼 다양한 사업자가 전력 소매 시장에서 경쟁하는 구조가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적이며, 특히 제주에서는 재생에너지가 남아도는 상황에서도 소비자가 이를 직접 사용할 수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분산에너지 특별법을 통해 재생에너지 중심의 지역 단위 전력 시스템 구축이 추진되고 있지만, 현재 군산 경제 특화 지역 선정 과정에서 대규모 집단 에너지와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제주에서의 실증 경험을 바탕으로 VPP(가상발전소), ESS(에너지저장장치), V2G(전기차 양방향 충전) 등을 활용한 유연성 자원 시장 활성화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중앙집중형 전력 시스템을 분산화하고 재생에너지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도매 전력 시장에서 마이너스 SMP(계통한계가격) 등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전력 소비자에게 재생에너지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국회와 산업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옥기원 기자는 전기차 이용과 취재 경험을 통해 의견을 내놨다. 옥 기자는 재생에너지 소비자 선택권 확대에 대한 취재 경험을 공유하며, 특히 전기차 충전과 관련된 문제를 지적했다. 전기차를 친환경적으로 운영하려 해도 충전 전력의 80% 이상이 원전이나 석탄 발전으로 공급되는 현실에서, 재생에너지 기반 충전 인프라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설문조사를 통해 전기차 구매자의 약 20%가 환경 보호를 이유로 차량을 구매했으며, 비용이 더 들더라도 재생에너지 기반 충전을 원하는 가치 소비자층이 존재함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전기차 충전 사업자가 PPA 시장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며, 공공 공간에서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충전 사업자를 우선 배치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결국,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이 형식적인 제도 마련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의 실질적 선택권을 확대하고 니즈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함을 강조하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산업자원통상부 전력산업정책과 문양택 과장은 현행 전력시장과 구조라는 현실론을 중심으로 발언했다. 발표자는 재생에너지 소비자 선택권 확대에 대한 제도적 고려 사항을 설명하며, 현재 전기요금에 포함된 기후환경 비용과 RPS·REC 제도를 통해 이미 소비자가 재생에너지 확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전력 시장은 한전의 독과점 구조로 인해 해외 시장과 차이가 있으며, 단순히 외국 사례를 도입하기보다 국내 전력 시스템의 특성을 반영한 제도 설계가 필요함을 지적했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면 발전 사업자의 의무(RPS)에서 소비자 선택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새로운 제도 도입이 전기요금 부담 증가, 취약계층 지원 문제 등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과 유럽처럼 시장 중심의 전력 거래가 활성화된 국가에서는 재생에너지 과잉 발전으로 인해 마이너스 가격이 발생하고 ESS(에너지저장장치) 시장 조정이 필수적인데, 한국은 정부와 전력거래소가 조정 역할을 담당하는 구조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단순한 해외 사례 도입이 아니라 한국의 전력 시스템과 사회적 가치에 맞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명확한 목표 설정과 논의가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소비자기후행동 이차경 사무총장은 기후 위기 시대에 소비자의 재생에너지 선택권이 왜 중요한지를 강조하며,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기후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기후행동은 지난 5개월간 1만 3000명의 서명 운동과 헌법소원 청구를 통해 주택용 전력 사용자의 재생에너지 선택권 보장을 요구해왔으며, 이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 문제라고 지적했다.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는 환경 피해와 복구 비용을 고려할 때 결코 저렴하지 않으며, 원전 역시 폐기물 처리와 안전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마치 최선의 에너지원처럼 인식되는 현상을 비판했다. 해외 사례에서 보듯이, 다양한 도전과 정책적 의지를 통해 재생에너지 선택권이 보장된 만큼, 한국도 소비자가 녹색 전기를 선택해 기후 위기 대응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입법과 정책적 실행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입법·정책 기관이 단순한 논의가 아닌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답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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