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41명, 재생에너지 구매 못 하게 하는 전력구매규정에 헌법소원 청구
전체 전력소비 중 15%가량 차지하는 주택용전력, 기후위기 대응과 불가분
해외에선 재생에너지 구매 방법 있어…소비자 자기결정권 위해 제도 마련 필요해
한껏 극심해진 여름철, 기후위기를 늦추고자 하는 취지에서 가정에서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선택해 구매할 방법이 있을까. 한국에서는 그럴 방법이 전혀 없다. 이처럼 온실가스 배출 없이 가정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원을 선택해 구매할 수 없는 전력거래계약 규정을 두고 기본권 침해 여부를 다투게 됐다.
22일 전기소비자 41명은 개인과 기업에 차별적 에너지 선택권을 규정한 전력거래계약에 관한 지침이 소비자의 자기결정권, 생명권, 건강권, 환경권, 평등권을 해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같은 날 소비자기후행동, 기후솔루션이 주택용전력 소비자가 재생에너지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헌법소원 청구와 관련해 한국전력 서울 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두 단체는 공동 기자회견문으로 △산업자원통상부는 소비자가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한국전력공사는 소비자가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설비와 시스템을 제공하고 △헌법재판소는 소비자에게 재생에너지 구매를 허용하지 않는 산업자원통상부 고시 조항이 위헌임을 확인할 것을 요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단체 구성원은 퍼포먼스를 통해 전기 소비자의 재생에너지 선택권을 강조했다.
국내 발전 구조에서 화석연료는 61%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재생에너지는 8%라는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 게다가 매년 전력소비량은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를 미뤄보면 현재 약 15%를 차지하는 주택용전력 소비가 대부분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고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할 수 없다. 국내에서 전력 1kWh를 생산할 때 온실가스가 478g 발생한다는 수치를 주택용전력 사용량에 반영하여 계산하면, 2022년 한 해 동안 주택용전력 소비자의 전기 소비로 인해 발생한 온실가스는 3928만 톤에 육박한다. 이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이 초래할 기후변화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오며 생명권, 건강권,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있다.
주택용전력 소비자의 에너지 선택권은 기업, 즉 일반용∙산업용전력 소비자와 대조해 매우 제한적이다. 헌법소원 대상인 조항은 일반용전력 또는 산업용전력 고압 고객만 재생에너지를 선택해 전력구매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 이하 PPA)을 체결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기업이 자사 온실가스 배출 감축, RE100 및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서 재생에너지를 선택해 소비하듯, 주택용전력 소비자도 기후 친화적인 전력 소비를 하고 싶어도 그럴 방법이 전무하다.
소비자가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고,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육식 대신 채식 위주 식단을 차리듯 화석연료로 생산된 전기 대신 온실가스 배출 없는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게 규정한 현 전력거래계약에 관한 규정은 결국 소비자의 자기결정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있다.
해외에는 개인이 재생에너지를 선택해 구매하는 제도가 마련된 경우가 많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전기 및 가스 판매사업기업인 리히트블릭(LichtBlick)이 풍력과 태양광 발전사업자들과 대규모 PPA를 체결한다. 주택용전력 소비자는 리히트블릭이 제공하는 녹색 전기요금제를 선택해 계약을 체결하면 100% 녹색 전력을 공급받는다. 영국의 E.ON이라는 전력기업은 Next 요금제를 선택한 주택용전력 소비자에게 100% 재생에너지 전기를 공급한다. 일본에서도 ASTMAX ENERGY라는 전기 및 가스 판매사업기업이 운영하는 플러스·그린 플랜에 가입하면 kWh당 0.8엔을 추가 지불하여 실질적으로 100%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소비자기후행동 이차경 사무총장은 “소비자가 에너지 생태계의 변화를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다”라며 “정부가 친환경 전기를 선택할 권리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효과적인 방법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기후솔루션 김건영 변호사는 “소비자에게는 어떤 상품을 누구로부터 어떤 조건으로 구입할 것인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라며 “청구인들은 재생에너지 소비를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다. 화석연료 기반의 전기를 소비하는 선택지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기본권을 위협하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시급히 해소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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