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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농사 망친 죄,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발행일
2026-06-29

편집자
임소연

사과값이 미쳐 날뛰는 진짜 이유

마트에서 사과 한 알 집어 들었다가 가격표를 보고 조용히 내려놓은 적, 다들 한 번쯤 있으시죠? '금사과'를 넘어 이제는 여름 수박 한 통 사 먹기도 겁이 날 정도로 매년 과일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어요.

도대체 과일값이 왜 이렇게 오르는 걸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진짜 범인은 '미쳐버린 날씨'에 있습니다. 봄꽃이 일찍 피었다가 갑작스러운 한파에 얼어 죽고, 여름에는 기습 폭우로 비닐하우스가 통째로 물에 잠겨버립니다. 1년 내내 땀 흘려 가꾼 과수원 농부들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겠죠.

그런데 이 지독한 날씨, 정말 그냥 운이 나빠서 겪는 자연재해일까요?

농부들이 한전에게 보낸 '2035원'짜리 청구서

지난 2025년 8월, 사과, 딸기, 벼, 복숭아, 감귤 농사를 짓는 농업인 6명이 법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갈라지고 터진 사과와 물에 잠긴 비닐하우스를 들고 이들이 고소한 대상은 다름 아닌 한국전력공사(한전)와 5개 발전 자회사였습니다.

왜 하필 한전일까요? 한전의 발전 자회사들이 전기를 생산할 때 쓰는 원료 중 50% 이상이 석탄입니다. 매일 태우는 막대한 석탄 때문에, 이들이 내뿜는 온실가스가 대한민국 전체 배출량의 15~17%를 차지하고요. 국내 온실가스 배출 기업 중 압도적 1위입니다.

농부들의 논리는 명확합니다. "오염을 일으켜 날씨를 망친 주체가 그 피해를 직접 책임져라"

이들은 기후 재난으로 망친 농작물 피해액과 함께, 아주 상징적인 위자료를 청구했습니다. 금액은 딱 '2035원'. 푼 돈을 달라는 게 아닙니다. 정부가 약속한 2050년 탄소중립이나 느긋한 탈석탄 계획은 너무 늦으니, '2035년'까지 당장 석탄 발전을 끝내라는 절박한 경고장을 숫자에 담아 보낸 겁니다. 기업이 수십 년간 하늘에 쌓아 올린 누적 배출 책임을 묻는 국내 최초의 기후 소송이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페루 농부가 1만 km 떨어진 독일 회사를 고소한 사연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다고요? 사실 이런 기후 소송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자, 이미 거대 기업을 무릎 꿇린 확실한 무기입니다.

지난 2015년, 남미 페루의 한 농부 사울 루시아노 리우야가 무려 1만 km나 떨어진 독일의 최대 전력회사 RWE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안데스 산맥의 빙하가 녹아 자기가 사는 마을이 홍수에 잠길 위기에 처했는데, 이 빙하를 녹인 책임이 온실가스를 펑펑 뿜어낸 RWE에게도 있다는 논리였죠. 농부는 RWE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인 '딱 0.47%'만큼만 마을 방파제 건설 비용을 내라고 요구했습니다.

황당한 소리 같았지만, 놀랍게도 독일 법원은 이 주장이 법적으로 타당하다고 인정하고 현장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이 전대미문의 재판은 전 세계 기업들에게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농부 사울은 소송에서 패소했습니다. 그러나 변화가 생겼습니다. RWE는 당초 2038년이었던 석탄 발전 종료 시점을 무려 8년이나 앞당겨, 2030년에 석탄과 완전히 결별하겠다고 스스로 선언했습니다.

포스코 상대로 고소장 내민 12살 초등학생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은 이제 한국의 기업들도 덮치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석탄 발전소에 책임을 묻는 동안, 미래 세대들은 대한민국 최대 철강사 포스코를 향해 소송장을 던졌습니다. 2025년 2월, 만 11세부터 18세 사이의 청소년 10명이 포스코의 광양제철소 '제2고로 개수' 공사를 막아달라며 민사 소송을 낸 겁니다.

수명이 다 돼가는 낡은 석탄 용광로를 뜯어고쳐 15년 이상 억지로 수명을 연장하려는 계획을 멈추라는 요구였죠. 이 석탄 고로가 15년 더 돌아갈 경우 뿜어내는 탄소량은 무려 1억 3702만 톤. 국민 980만 명이 1년 동안 내뿜는 양과 맞먹습니다. 소송에 참여한 12살 초등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봄과 가을이 사라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어요"

이는 기업이 막대한 석탄 배출 시설을 연장하는 행위가 미래 세대의 생명권과 환경권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임을 묻는 매서운 도전입니다.

장부에 기록되기 시작한 '161조 원'짜리 청구서

과거에는 "날씨 망친 책임을 어떻게 돈으로 증명할 거냐"며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지만, 이제는 과학이 그 책임을 무섭게 쫓아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후솔루션은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방법론을 빌려 뼈아픈 분석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2011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의 10대 다배출 기업이 뿜어낸 온실가스가 전 세계 폭염 피해에 기여한 금액을 환산해 보니, 무려 '161조 원'이라는 결과가 나온 겁니다.

농부들에게 고소당한 한전 발전 자회사들의 책임액만 93조 원에 달했고, 초등학생에게 고소당한 포스코 단일 기업의 책임액도 38조 원이나 됐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폭우, 홍수, 산불 피해는 뺀, 오직 '폭염 피해' 하나만 계산했는데도 이 정도입니다.

이제 룰이 바뀌고 있습니다. 화석연료가 만든 기후위기는 누군가의 농장을 망가뜨리는 명백한 재산 침해이자, 누군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권리 침해로 법의 심판대에 오를 수 있게 됐습니다. 공짜로 환경을 망치며 이윤을 남기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낡은 석탄을 고집하는 대한민국 기업들에게 지금, 161조 원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진짜 비용이 청구되고 있습니다.

기후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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