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 발표 논문 방법론으로 ‘한국 기업 10곳’ 손실기여액 분석
2011~2023년 온실가스 41.2억 톤 배출, 이로 인한 손실 161조 원
배출량 1위는 포스코...한전 발전사 5곳은 포스코의 2.6배 달해
기업 단위로 책임 좁히고 ‘피해자의 목소리, 수치로 증명할 수 있는 시대’ 열려
최근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모든 나라는 기후위기 대응의 법적 책임이 있다는 역사적 권고를 내놓은 가운데, 한국 기업의 기후변화 책임을 최신의 과학적 방법론으로 산출한 보고서가 나왔다.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은 11일 “기후 위기, 누가 얼마나 책임져야 하는가: 한국 10대 배출 기업의 폭염 손실기여액 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에서 비롯된 폭염으로 발생한 세계 피해 가운데 한국 10대 배출 기업의 책임액이 161조원에 달하고, 대응에 나서지 않을 경우 그 책임액은 2050년까지 72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 다트머스대의 크리스토퍼 캘러한(Christopher Callahan) 박사와 저스틴 맨킨(Justin Mankin) 교수는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전 세계 111개 화석연료 기업이 지난 170년간 배출한 온실가스가 전 세계 폭염 피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기업별 온실가스 누적 기여도를 바탕으로, 1991년부터 2020년까지 폭염으로 인해 발생한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손실 중 어느 정도가 각 기업의 책임인지 환산했다. 이 논문은 엄밀한 방법론과 높은 권위의 저널에 발표된 점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초래한 폭염과 경제 손실에 대해, 개별 기업에게 그 책임을 정량적으로 묻는 일을 가능케 한 논문으로 평가받는다.
지금까지는 폭염, 해수면 상승, 가뭄 등 기후 재난으로 인한 피해가 누구의 책임인지 밝히는 데 방법론에 대한 이견 등으로, 피해자 보상이나 기업·국가의 책임을 묻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번 분석은 최신의 신뢰성 있는 방법론을 바탕으로 그 책임 구조에 수치를 부여함으로써, 기후위기를 둘러싼 법적·윤리적 논쟁을 정책으로 연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논문의 방법론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1990년부터 2020년까지의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의 1%당 폭염으로 인한 세계 GDP 손실액은 약 5천억 달러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온실가스 1톤당 약 29.07달러의 손실 책임이 발생한다는 뜻으로, 기후 재난이라는 ‘결과‘에 초점 맞춰 책임을 따지는 방식이다. 원인이 되는 주체가 책임을 부담하고, 이를 통해 피해자를 구제한다는 이 새로운 분석틀은 현재 진행 중인 각국의 기후 손실 논의와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후 소송의 과학적 근거로 주목받고 있다.
기후솔루션은 이 방법론을 한국에 적용해, 국내 주요 배출 기업 10곳이 폭염으로 인한 전 세계 경제 손실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정량화했다. 보고서는 2011~2023년 동안의 누적 배출량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업별 손실기여액을 산출했다. 또 나아가 널리 쓰이는 시뮬레이션 모형인 GCAM(Global Change Analysis Model)을 활용해 2050년까지의 배출 시나리오에 따른 미래 손실 전망도 함께 제시했다. 국내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과 과거, 미래의 기후 재난 간 인과관계를 구체적인 수치로 연결한 첫 시도로, ‘배출은 곧 책임’이라는 메시지를 데이터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표1] 대한민국 10대 다배출 기업(한전 산하 발전사 포함)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과 손실기여액
분석 결과, 10대 배출 기업은 2011년부터 2023년까지 총 41.2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이에 따라 이들 기업이 전 세계 폭염 손실에 기여한 경제적 책임은 약 1196억 달러(약 161조 원)에 달한다. 이 중 한국전력 산하 발전 자회사 5곳(남동·남부·동서·중부·서부)의 총 배출량은 25억 톤으로, 약 729억 달러(한화 약 93조 원) 규모의 손실 책임을 진 것으로 나타났다. 단일 기업 단위로 배출량 1위를 기록한 포스코(9.6억 톤, 약 281억 달러)보다 2.6배 많은 수준이다.
이는 석탄·LNG 등 화석연료 중심의 전력 생산 구조와, 공공 부문이 전력 수급을 담당하는 한국 특유의 에너지 체제를 반영한다. 발전 부문은 다른 산업의 전력 사용에 따른 간접배출(Scope 2)까지 연쇄적으로 유발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책임 범위는 더욱 넓다. 보고서는 “한국의 배출 구조에서 발전 부문은 ‘중간 공급자’가 아니라 ‘핵심 배출 책임자’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이 구조를 개혁하지 않고는 탄소중립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래프1] Net-zero 시나리오를 따랐을 때 감축 가능한 배출량과 10대 다배출 기업의 비중
보고서는 과거 배출에 대한 책임뿐 아니라 미래 배출이 야기할 사회경제적 피해 규모도 제시했다. 정부의 탄소중립계획(Net-zero)을 충실히 이행할 경우, 같은 10개 기업이 2025년부터 2050년까지 지게 될 손실기여액은 300조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반면 전환 없이 현행 정책을 유지할 경우 손실 규모는 720조 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즉, 지금부터 탄소중립 전환에 착수할 경우 최대 420조 원의 경제적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전력과 그 자회사들이 지금부터 화석연료 중심의 발전 체계로부터 재생에너지 중심의 발전 체계로 에너지 전환에 발빠르게 나선다면 400조 원대의 기후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하나 주의할 부분은 이번 보고서에서 산출한 피해액의 규모가 캘러한 박사 등의 논문을 바탕으로 ‘폭염 피해’만을 산정했단 점이다. 즉, 기후변화로 인해 보다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폭우와 홍수, 산불, 태풍 등의 피해는 포함되지 않은 액수다. 특정 기상 현상이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기여도를 분석하는 ‘기후 귀속 과학’(climate attribution science)이 보다 발전해 다른 재난 유형까지 분석할 수 있게 되면 피해액의 규모는 훨씬 커질 전망이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한 경고를 넘어, 법적·정책적 개입의 근거가 된다. 실제 해외에서는 셸(Shell), 엑손모빌(ExxonMobil) 등 다국적 에너지 기업을 상대로 ‘기후 피해 손실 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며, 일부는 법원이 기업의 배출 책임을 인정하거나 감축 명령을 내리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보고서는 “기후위기가 헌법상 환경권과 생존권을 침해하는 사안이라는 점을 수치로 입증한 사례”라고 평가하며, 향후 국내에서도 기후 손실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관련 법제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는 ‘과학이 기후 책임을 입증하는 도구가 되는 전환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배출 데이터를 활용해 손실기여액을 계산하고, 기업 단위로 책임 범위를 환산함으로써 ‘피해자의 목소리를 수치로 증명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보고서를 쓴 기후솔루션 임소연 연구원은 “이번 분석은 단순히 경각심을 주는 것을 넘어, 정책과 소송, 투자 판단의 기준으로서 손실기여 계산이 활용될 수 있는 출발점”이라며 “이제는 배출량뿐 아니라 배출로 인해 발생한 피해도 기업 책임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제껏 책임 소재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방치돼 왔던 기후 피해 구제 논의에 전환을 요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로 볼 수 있다.
함께 보고서를 쓴 기후솔루션 조정호 연구원은 “본 연구는 특정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이 폭염 등 기후 피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며 “이는 국가 차원을 넘어 기업에게도 배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가 처음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향후 폭염 외에 폭우와 홍수, 산불 등 다른 기후피해까지 포함되면 손실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며 “한국 기업과 정부도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선제적 대응과 실질적 감축 이행체계를 구축해, 기후위기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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