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자금으로 노후를 망치고 있다?
- 발행일
- 2026-06-29
- 편집자
- 박윤경
국민연금이 탈석탄을 선언한 지 5년. 하지만 여전히 우리 돈 수조 원이 석탄 기업에 묶여 있습니다. 내 노후 자금이 ‘지나간 산업’에 배팅되고 있는 현주소를 짚어봅니다.
매달 꼬박꼬박 떼이는 내 연금, 어디로 갈까
지난해 3월 국민연금 개편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있었습니다. 요지는, 보험료율(내는 돈)은 매년 0.5%p씩 인상하고 소득대체율(받을 돈) 역시 43%로 상향하는 것이었는데요. 지급액이 늘어나긴 했지만 납입 부담 역시 함께 커진 데 대해 일각에선 비판과 반발도 제기됐습니다. 매달 내 월급통장에서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돈이니, 수익률이 어떤지 기금은 안전한지 온 국민의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게 당연합니다.
국민연금은 우리의 안정적인 노후를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를 내고 얼마를 받을지' 싸우는 동안, 정작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고 있습니다.
바로 내 노후를 위해 모아둔 피 같은 돈 수조 원이, 지금 이 순간에도 시대가 저물어가는 '석탄 기업'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익성만 좋으면 된다고?
“국민연금은 수익만 잘 내면 되는 것 아냐?”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수익성’ 때문에 석탄 투자가 위험합니다.
국민연금은 한국전력공사, 포스코홀딩스, 현대제철 등 석탄 관련 기업들의 최대주주 혹은 주요주주로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한전 및 발전 자회사들에만 약 17조 원을 투자하고 있죠. (2023년 말 기준). 그런데 앞선 시리즈에서 봤듯,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석탄’은 치명적인 무역 장벽이자 세금 폭탄입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잇따라 석탄 투자를 철회하고 있습니다.
영국 최대 자산운용사 리걸앤드제너럴투자운용(LGIM)은 “석탄사업 운영 계획이 2050 넷제로 목표와 맞지 않는다”며 5년 연속 한전에 대한 투자를 배제했습니다.
포스코홀딩스 역시 2024년 금융배제추적기(Financial Exclusion Tracker) 데이터 기준, 기후 및 환경 문제 등을 이유로 유럽 30개 금융기관들로부터 투자 배제됐습니다.
전 세계 중견 및 대기업 리더의 97%가 석탄을 비롯한 화석연료 탈피를 지지하고, 78%가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전환을 지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민간 기관뿐만이 아닙니다. 네덜란드 공적연기금(ABP)는 2022년 ‘에너지 전환 계획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한전 채권을 매각하고 현대제철·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 10곳에 탄소 배출 감축을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연금보다 오히려 해외 연기금이 선제적으로 나선 셈이죠.
전 세계가 석탄을 '좌초자산'으로 취급하며 손절하고 있는데, 우리의 국민연금만 그 폭탄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있는 셈입니다. 이 기업들이 글로벌 규제에 부딪혀 주가가 폭락하면, 그 손실은 결국 누구의 몫이 될까요? 바로 다달이 보험료를 납부한 우리들입니다.
당신이 모르는 사이 벌어지는 ‘금융배출’
2024년 독일 환경단체 우르게발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약 50조 원을 화석연료 기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도 추산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후즈굿이 2021년 기준 국민연금이 투자한 국내 기업 중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한 312곳을 분석한 결과, 국민연금의 금융배출량*은 약 2710만 톤으로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4%가량을 차지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금융배출량 = 투자 대상 기업의 배출량 X (국민연금 투자금액 / 투자대상 기업 가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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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우리는 국민연금에 돈을 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에 함께 기여하고 있는 셈입니다.
조기사망 220건…보험료로 건강을 해친다
국민연금은 노후에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붓는 돈입니다. 그런데 2024년 분석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투자한 화석연료 기업들이 내뿜는 온실가스는 우리나라 전체 배출량의 약 4%를 차지합니다. 내가 연금을 붓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죠. 기막힌 모순입니다.
기후솔루션과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의 앞선 분석 결과는 더 충격적입니다. 2021~2022년 동안 석탄발전소에서 발생한 대기오염물질에 노출돼 조기 사망한 사람은 1970명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국민연금을 고려한다면?
220명, 즉 전체 조기 사망의 11.2%는 국민연금의 투자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사망까지 이르진 않았지만, 같은 기간 석탄발전으로 인해 발생한 어린이 천식 67건, 미숙아 출산 33건, 천식 관련 응급실 지료 63건, 병가 9만 690일…이 역시 국민연금의 석탄 투자에서 기인했습니다.
우리가 낸 보험료가,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석탄발전에 쓰이고 있는 구조. 괜찮을까요?
더욱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장은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입니다.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자리이자,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국민영웅’으로 불렸던 대표적인 보건 전문가죠.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좌시해도 되는 걸까요?
‘탈석탄’ 약속은 했는데…
사실 국민연금은 이미 석탄 투자의 위험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2021년 5월 28일, 국민연금은 석탄채굴·발전산업에 대한 투자제한전략을 도입하는 이른바 ‘탈석탄 선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선언만 화려했을 뿐, 무려 3년 넘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미뤘습니다.
2024년 12월이 돼서야 마지못해 내놓은 기준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석탄 산업’의 기준으로 ‘매출 50% 이상’을 택했습니다. 국제 기준 ‘매출 30% 이상’보다 훨씬 완화됐죠.
이마저도 국내 기업을 대상으론 ‘적용 5년 유예’ ‘5년간 비공개 대화’와 같은 각종 느슨한 예외조항을 추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석탄 사업으로 매출의 30~50%를 내는 기업들은, 적어도 국민연금의 기준에 따르면 ‘석탄 기업’이 아니게 됐어요. 국민연금 석탄 투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는 앞으로 5년간 아무런 제한을 가하지 않게 됐습니다.
빠져나갈 구멍을 다 만들어준, 무늬만 탈석탄인 셈입니다.
석탄 투자, 국민 생각은 다르다
요약해 보면,
국민연금은 우리의 노후자금을 관리·운용하는 수탁자입니다. 일관성과 지속성, 내실 있는 운용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석탄발전은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대기오염을 유발합니다. 국민연금의 석탄 투자는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전체 배출량의 4%에 달하는 금융 배출과 조기 사망 등 수많은 건강 피해를 낳습니다.
더욱이 석탄 발전은 전 세계적으로 좌초자산이 돼가고 있어, 장기적인 수익성 측면에서 리스크가 큰 투자입니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은 탈석탄 선언 이후 3년여간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았고, 이후 마련된 투자 제한 전략 역시 국제 기준은 물론 자체 용역연구 결과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국민연금의 실제 주인,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지난해 6월 발표한 ‘기후변화-에너지 국민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44%가 ‘국민연금이 석탄발전 투자를 줄여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이들은 ‘기후 변화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23.2%)과 ‘미래 에너지 전환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 투자 리스크’(22.0%), ‘환경오염과 대기질 악화 우려’(20.9%)를 이유로 꼽았는데요. 환경적 요인뿐 아니라 석탄투자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이 투자 결정을 내릴 때 먼저 고려해야 할 것으로 ‘수익성’과 더불어 ‘국민적 공감과 합의’, ‘환경·사회적 책임(ESG)’ 역시 고른 선택을 받았습니다. 수익성(40.5%)이 1순위였지만, ‘국민적 공감과 합의’와 ‘ESG’가 중요하다는 비율을 합한 것(52.9%) 보다는 낮았죠.

국민연금은 1,200조 원의 자산을 굴리는 세계 3대 연기금이자, 대한민국 투자계의 '큰손'입니다. 국민연금이 "더 이상 석탄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룰을 정하면, 국내 기업들은 살기 위해서라도 뼈를 깎는 친환경 전환을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과연 국민연금은 지금 시장에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을까요?”
국민연금은 자본시장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신호등입니다. 기후적으로도, 재무적으로도 지속 불가능한 석탄에 내 피 같은 노후 자금을 베팅하는 일. 이제는 그만 멈춰 세워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