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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남아돌아도 석탄을 끄지 못하는 이유

발행일
2026-06-29

편집자
김원상

맑고 화창한 봄날 낮 시간. 태양광 패널이 전기를 쉴 새 없이 쏟아냅니다. 날씨가 좋으니 냉난방기도 안 켜서 전기도 별로 필요 없죠. 전기가 남아도는 이럴 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할 건가요?

상식적으로는 연료비가 '0원'인 공짜 햇빛 전기를 먼저 쓰고, 매일 돈 주고 석탄을 사 와서 태워야 하는 석탄 발전소부터 끄겠죠.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의 전력 시스템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심심찮게 벌어집니다. 공짜인 태양광 발전소의 스위치를 강제로 꺼버리고(출력제어), 돈 먹는 하마인 석탄 발전소는 계속 돌립니다.

도대체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할까요?

전기가 남는데도 태양광부터 줄이는 이유

가장 큰 이유는 석탄 발전소가 우리 집 가스레인지처럼 끄고 켜기 쉬운 기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석탄 발전소는 거대한 솥단지라 한 번 불을 붙이는 데 며칠이 걸리고, 불을 확 줄이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기가 남아도는 시간에도 "나 지금 불 끄면 이따 저녁에 다시 켜기 힘들어!"라며 꿋꿋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버팁니다. 낡고 둔한 석탄 발전소가 길을 막고 있으니, 빠르고 유연한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가 억지로 비켜서야 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거죠.

세상은 변했는데, 룰은 여전히 '고인물' 파티

설비가 낡고 불편하면 시스템을 고치면 될 텐데, 왜 그대로 둘까요? 한국전력(한전)이 오랫동안 이 석탄 중심 시스템의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무조건 전기를 많이, 빨리 찍어내는 석탄이 최고였습니다. 한국전력(한전)과 거대한 발전 자회사들은 이 석탄을 중심으로 전기를 사고파는 방식에 완벽하게 적응해 낡은 질서를 구축해 두었죠.

세상이 바뀌어 기후위기가 오고 태양광이 넘쳐나도, 이 룰은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기존의 익숙한 발전기들을 챙겨주는 게 이 시스템을 굴리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편하고 안락하니까요. 겉으로는 친환경을 외치며 문을 활짝 열어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좁디 좁은 틈새만 열어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친환경 에너지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전기가 지나가는 VIP 통로는 늘 석탄 차지입니다.

숨만 쉬어도 돈을 준다? 기막힌 '출석 수당'

이 이상한 룰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게 '용량요금'이라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전기를 안 만들고 가만히 서 있어도 "언제든 전기를 만들 준비가 돼 있으니 수고가 많다"며 따로 챙겨주는 일종의 기본급입니다.

일한 만큼 주는 성과급이 아니라, 출석만 해도 주는 '자리 보전비'인 셈이죠. 태양광은 전기가 남으면 강제로 스위치가 내려가 한 푼도 못 버는데, 석탄 발전소는 전기를 덜 만들어도 이 수당을 꼬박꼬박 챙겨갑니다. 낡고 퇴장해야 할 석탄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적폐 같은 돈입니다.

눈앞의 영수증만 보고 "재생에너지는 비싸다"고?

이쯤 되면 꼭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태양광 설치비가 얼마나 비싼데!"

맞습니다. 초기 설치비가 듭니다. 하지만 한 번 깔고 나면 평생 연료비 청구서가 날아오지 않죠. 반면 석탄은 매일 수입 석탄을 사 오느라 돈이 새고, 국제 석탄 가격이 출렁이면 비용이 폭등합니다.

거기에 매연이 뿜어내는 미세먼지와 기후위기가 남기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까지 계산서에 넣으면 석탄은 '싼 전기'가 아닙니다. 당장 설치비만 떼어 놓고 재생에너지가 비싸다고 깎아내리는 건, 뒤에서 계속 빠져나가는 연료비와 숨은 유지비를 싹 다 무시하는 착각입니다.

억지로 피운 연탄불, 청구서는 우리 집으로 온다

질문은 단순해집니다. 전기가 남는데도 공짜 태양광을 끄고 억지로 석탄을 태우는 낭비, 그리고 숨만 쉬어도 석탄에 챙겨주는 거액의 자리 보전비. 이 비용은 결국 누구 지갑에서 나갈까요?

맞습니다. 소비자인 우리가 냅니다. 한전은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 옵니다. 국제 석탄과 가스 가격이 뛰면 사 오는 비용도 급하게 뜁니다. 그런데 국민 눈치가 보이니 전기요금은 늘 뒤늦게 올리죠. 그사이 벌어진 비용의 틈은 고스란히 한전의 천문학적인 '적자'로 쌓여요.

적자는 빚이 되고, 빚은 이자 부담이 되고, 그 거대한 이자 덩어리는 결국 돌고 돌아 내일의 '전기요금 인상 고지서'로 우리 집 우편함에 꽂히게 됩니다. 안 써도 될 석탄 연료비를 계속 쓰게 만드는 이 비효율적 구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계산서'의 문제입니다. 낡은 규칙이 한전의 적자를 키우고, 그 부담이 고지서 숫자를 무겁게 만들고 있습니다.

판을 뒤엎지 않으면 고지서는 가벼워지지 않는다

국민연금, 철강 산업, 전기요금. 기솔피드가 파헤친 세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나비효과입니다. 석탄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닙니다. 기득권에 딱 붙어 우리의 노후 자금과 국가 수출을 가로막고, 내 지갑 속 생활비까지 털어가는 거대한 경제적 족쇄입니다.

이제 필요한 건 "재생에너지를 조금 늘리자"는 순진한 구호가 아닙니다. 석탄이 끝까지 VIP 대접을 받으며 자리를 지키도록 겹겹이 설계된 이 전력 시장의 '기울어진 운동장' 자체를 부수고 판을 엎어야 합니다.

낡은 규칙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우리 강산에 아무리 태양광 패널이 늘어나도 내 전기요금 고지서는 절대 가벼워지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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