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15개국 중 기후·ESG 지침 없는 나라 한국·이탈리아뿐
기후변화 위험관리 국민연금 주주관여 대상 기업 2024년 29개→2025년 3분기 13개 급감
기후 대응 실패 시 국내 금융권 손실 최대 45.7조 원...기후 스튜어드십, 장기 수익률 제고에 필수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 10주년을 맞았지만, 정작 글로벌 자본 시장의 최대 화두인 기후 위기 대응에서는 철저히 소외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 역시 기후 주주권 행사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글로벌 흐름과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1일 남인순·김윤 국회의원과 국민연금기후행동, 경제개혁연대는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과 국민연금 기후 스튜어드십 강화 방안’ 토론회를 개최하고, 실효성을 잃은 국내 기준의 낙후성을 비판하며, 스튜어드십 코드의 전면 개정과 국민연금의 실질적인 기후 행동 강화를 촉구했다.
발제를 맡은 기후솔루션 장연주 투자정책팀장은 "주요 15개국 중 기후·ESG 지침이 아예 없는 나라는 한국과 이탈리아뿐이며, 특히 한국은 분석 영역 전체에서 관련 조항이 부재한 유일한 국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영국과 일본 등 주요국은 이미 기후 대응을 수탁자 책임의 필수 요소로 명시하고 투자 전략 전반에 통합하고 있다"며 한국의 조속한 코드 개정을 촉구했다. 또한 장 팀장은 “한국도 스튜어드십 정의에 기후 요소를 명시하고 투자 전략과 의결권 행사 전반에 기후 리스크를 구조적으로 통합해야 한다”며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기반의 공시 도입과 연계해 단계별 로드맵을 마련하고 실질적인 이행으로 이어지는 실행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의 기후 주주관여 활동이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경제개혁연대 노종화 정책위원은 "기후변화 위험관리를 사유로 한 주주관여 대상 기업 수가 2024년 29개에서 2025년 3분기 기준 13개로 1년 만에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고 밝혔다. 노 위원은 "국민연금의 책임투자가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는 소극적인 점수 매기기에 그치고 있다"며 관여 활동 주기를 6개월로 단축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이사회 경영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기후 전략 등 폭넓은 주제에 대해 주주 의사를 공식적으로 개진할 수 있는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를 도입해, 비공개 대화의 한계를 넘어 주주총회 차원의 실질적인 이행 압박 기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스튜어드십은 환경 보호를 넘어 연금 자산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을 증대하기 위한 필수적인 재무 전략이다. 기후 위험에 적시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기금 자산에 심각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수탁자 의무를 방기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로 일본 공적연금(GPIF)은 코드 개정 이후 기후 관련 주주관여를 3.4배 늘렸으며, 이를 통해 피관여 기업의 가치 제고와 탄소집약도 개선을 통계적으로 실증했다.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도 기후 대응이 연금 자산의 수익률을 좌우하는 핵심 재무 전략임을 강조했다. 조대현 AIGCC 한국팀장은 "기후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국내 금융권의 잠재적 손실 규모는 최대 45.7조 원에 달할 수 있다"며 "수탁자가 가용한 기후 정보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책임 방기"라고 지적했다. 김혜리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후의 중요성을 기금운용지침에 명시적으로 반영해 위험관리 수단으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은기환 한화그린히어로 펀드매니저는 "모든 기업에 투자하는 유니버설 투자자인 국민연금은 기후 피해를 피할 수 없다"며 성과 평가 기간을 30~50년의 장기적 관점으로 조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나예 한국투자증권 ESG 연구위원은 "자산운용사가 기후 대응을 필수적으로 반영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정비하고, 위탁운용사 평가 시 스튜어드십 활동 배점을 높여 수익과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제도 개선 의지를 밝혔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남인순 의원은 축사에서 “기후 위기는 더 이상 환경 정책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업의 생존과 투자 수익률을 좌우하는 핵심 재무 리스크”라며 “이번 논의가 국민연금의 책임 있는 투자를 이끌어내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주최한 김윤 의원은 “수탁자 책임 활동과 관련하여 금융당국과 국민연금 간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위탁운용사 평가 사각지대 해소와 실효성 있는 주주관여가 이루어지도록 법·정책 개선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토론회에 모인 전문가들은 결국 기후 리스크가 '증명'된 시점에는 이미 대응이 늦다는 점에 입을 모았다. 기후 위기가 금융 시스템 전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구조적 위험'으로 격상된 만큼,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역시 선언적 원칙을 넘어 기업의 실질적인 탄소 감축과 에너지 전환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이행 기제로 재설계돼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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