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시장정책 3

송배전 - 끝이 안 보이는 선착순 대기열

발행일
2026-07-27

편집자
박윤경

발전소에서 어렵게 태어난 전기는, 이제 '길'을 타고 우리에게 와야 합니다. 그 길의 이름은 송전망과 배전망, 흔히 '계통'이라고 부르죠.

문제는 이 길에 들어서는 순서가 사실상 선착순이라는 점이에요. 새 발전소가 한전이 깐 전선에 연결되려면 줄을 서야 하는데, 이미 앞자리는 화력발전소들이 꽉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줄 끝에서 차례를 기다려 연결된다 해도, 끝이 아닙니다. 전선이 넘치면 한전은 "잠시 꺼달라"고 명령하거든요.

햇볕은 쨍쨍한데 태양광 패널이 강제로 멈춰 서는 모순. 만들어 놓고도 버려지는 전기. 3편에서는 그 끝없는 대기열을 들여다봅니다.

다 만들었는데, 꽂을 데가 없다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짓는다고 끝이 아닙니다. 만든 전기를 쓰려면 반드시 '계통'에 연결돼야 해요. 한전이 깐 전력망 말이죠.

문제는 그 연결이 사실상 선착순이라는 점입니다. 말 그대로 먼저 온 사람이 임자.

재생에너지가 줄을 서려고 보면, 앞자리는 이미 꽉 차 있어요. 그것도 아직 착공조차 하지 않은 가스발전소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태양광·풍력 사업자들은 인허가도 받고 부지 확보까지 다 마쳤는데, 앞에 선 화석연료 발전소들 때문에 수년째 줄만 서고 있는 거예요.

이게 막연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충청남도 한 곳만 봐도 그림이 선명해져요.

  • 보령·당진·태안 등 충남에서는 2030년까지 약 5GW 규모의 석탄발전소가 문을 닫습니다.

  • 그 빈자리를 채울 일부 태양광·해상풍력 사업들이 이미 준비돼 있는데요.

  • 그런데 정작 한국전력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2032년 이후에나 연결 가능.” 석탄발전소가 문을 닫는 것보다 더 늦은 시점입니다.

  • 이유는? 석탄발전 폐쇄로 생겨나는 여유분을 재생에너지가 아닌 가스발전으로 먼저 채우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 충남에서 재생에너지를 신속히 확대할 경우 가스발전으로 대체할 때보다 최대 27만 개의 일자리가 더 생겨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지금 이 구조는 충청남도의 소중한 일자리 전환 기회까지 막고 있는 셈이에요.

어렵게 줄을 서도 끝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전력망에 연결된다고 안심할 수도 없어요.

전선의 용량은 정해져 있는데 흐르는 전기가 넘치면, 누군가는 멈춰야 합니다. 이때 한전이 "잠시 꺼달라"는 명령을 내려요. 이걸 '출력제어'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이 출력제어의 부담을 오롯이 재생에너지가 짊어진다는 점이에요. 석탄·가스·원전은 한번 끄면 다시 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그대로 두고, 빠르게 껐다 켤 수 있는 재생에너지부터 먼저 끕니다. 그게 가장 '편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햇볕이 쨍쨍한 날, 태양광 패널이 강제로 꺼지는 풍경이 벌어집니다. 제주에서는 재생에너지를 상대로 한 출력제어가 매년 약 100회 이상 이어지고 있어요. 그 손실은 고스란히 재생에너지 사업자 몫입니다.

최근 법원 판결은 의미심장합니다. 이 출력제어의 책임이 '한전'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거든요. 발전소를 짓는 사업자도, 정부도 아닌, 전력망을 깔고 운영하는 한전. 그동안 누가 책임지는지조차 불분명했던 문제에 처음으로 이름표가 붙은 셈입니다.

기준을 바꿔야 줄이 움직입니다

현행 선착순 제도를 바꿔야 재생에너지가 실제로 쓰일 수 있습니다.

핵심은 세가지 입니다.

  1. 실제로 사업을 진행 중인 곳을 먼저 연결할 것
    착공도 안 한 가스발전소 사업이 먼저 줄을 섰다는 이유만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2. 탈탄소 및 지역 전환 기여도를 접속 기준에 반영할 것
    석탄 폐지 지역의 환경과 경제를 모두 살릴 수 있는 재생에너지의 우선순위가 높아져야 합니다.

  3. 계통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
    어디가 왜 막혔는지, 대기열이 어떻게 구성됐는지 밝혀야 문제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영국은 '준비됐고 필요한'(ready and needed) 사업을 우선 연결하는 방식으로 계통 제도를 전면 개편했고, 독일은 법으로 재생에너지 우선 접속을 못 박아 뒀어요.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 보급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계통을 바꾸지 않으면 이 약속은 공허한 구호로 남을 거예요.

이제 '전력망이 부족하다'는 말은 완벽한 핑계가 되지 못합니다. 부족한 전력망을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먼저 배정할 것인지. 그게 진짜 문제니까요.

발전에서 한 번, 송배전에서 또 한 번. 재생에너지는 두 단계를 거치는 동안 두 번이나 한전 앞에서 막혔어요.
그렇다면 마지막 단계인 '판매'에서는 어떨까요. 어렵게 줄 서고 어렵게 흘러간 전기는, 자유롭게 팔리고 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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