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시장정책 1

전기의 일생

발행일
2026-07-27

편집자
임소연

매일 아침 우리는 무심코 스위치를 누릅니다. 형광등이 켜지고, 커피머신이 윙윙 돌아가고, 충전기에 꽂아둔 휴대폰이 100%가 돼 있죠. 너무 익숙해서 누구도 묻지 않습니다. 이 전기, 어디서 와서 어떻게 우리 집까지 도착했을까요?

전기에게도 '일생'이 있습니다

모든 전기는 네 단계의 여정을 거치죠.

먼저 멀리 떨어진 발전소에서 태어나고(발전), 거대한 송전탑과 굵은 전선을 타고 도시 근처까지 머나먼 여행을 떠납니다(송전). 도시에 도착하면 동네 골목 작은 전봇대로 갈아탄 뒤(배전),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팔리죠(판매).

발전 → 송전 → 배전 → 판매. 산지에서 태어난 사과 한 알이 농장 → 트럭 → 도매시장 → 동네 마트 → 우리 집 식탁까지 오는 여정과 똑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떠올릴 거예요. 그럼 이 네 단계 각각에 다른 회사가 있겠구나? 농부 따로, 운송사 따로, 도매상 따로, 마트 따로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한국 전기 시장의 그림은 좀 다릅니다.

'전기'가 통하는 모든 길의 끝엔 한 회사가 있다

발전부터 판매까지 이 네 단계를 사실상 한 회사가 다 쥐고 있거든요. 바로 한국전력공사, 한전 입니다.

전기를 만드는 발전 단계부터 볼까요.

한국에서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의 70% 이상은 한전의 자회사 6곳(한국수력원자력·남동발전·중부발전·서부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이 운영합니다. 민간 발전회사들도 있지만, 이들이 만든 전기조차 결국은 한전이 사들여서 흘려보냅니다.

전기를 실어 나르는 송전·배전 단계는 더 노골적입니다.

전국의 송전탑과 송전선, 동네 변압기와 배전선까지 — 전기가 흐르는 모든 길은 100% 한전 소유입니다. 누군가 새 발전소를 짓고 싶어도, 한전이 깐 전선에 연결하지 않으면 전기를 단 1kWh도 팔 수 없죠.

마지막 판매 단계. 우리 집에 매달 날아오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떠올려보세요. 발신인이 누구죠? 그렇습니다. 일부 대규모 산업체의 직접거래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가정과 상점, 공장에 전기를 파는 회사는 사실상 한전 하나뿐이에요.

정리하면 이래요.

💡발전 70%↑ + 송전 100% + 배전 100% + 판매 사실상 100% = 한 회사

세계 어디에도 흔치 않은 '원앤온리' 구조

이게 당연하다고 느껴지시나요? 사실 글로벌 기준에선 꽤 보기 드문 모습입니다.

독일 가정은 수십 개의 전력 판매사 중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계약합니다. 더 저렴한 곳, 100% 재생에너지만 파는 곳, 동네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곳까지. 영국은 1990년대에 이미 거대한 국영 전력공사를 발전·송전·판매로 쪼개버렸어요. 일본도 2016년부터 가정용 전력 소매를 자유화해, 도쿄전력 외에 수백 개 사업자가 경쟁합니다.

한마디로 발전·송전·판매를 각각 다른 회사가 맡는 게 글로벌 표준입니다. 발전소 짓는 회사, 전선 관리하는 회사, 우리에게 전기 파는 회사를 분리해두는 거죠. 한 회사가 다 가지면 견제도 경쟁도 사라지니까요.

이 구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한 회사가 다 가지면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거 아닌가? 충분히 합리적인 의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한 회사 독점' 구조 때문에, 우리는 매년 이상한 풍경을 목격하고 있어요.

  • 햇볕이 쨍쨍한 날, 멀쩡히 돌아가고 있는 태양광 발전소가 강제로 꺼지는 일.

  • 새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줄을 서서 수년 째 전선에 연결조차 못 하는 일.

  • 전 세계가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갈아타는 동안, 한국만 이상하게 석탄·LNG 발전이 끈질기게 살아남는 일.

겉으로 보기엔 따로 떨어진 사건들 같지만, 사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가지들입니다. 발전·송전·배전·판매를 한 회사가 다 쥐고 있는 그 구조 말이에요.

이번 시리즈에서 들여다볼 것

기후101 세 번째 시리즈는, 매일 우리가 누르는 그 스위치 너머의 풍경을 한 단계씩 들여다봅니다.

  • 2편 발전 : 한전이 발전을 쥐고 있는 한국에서, 어떤 전기가 만들어지고 어떤 전기가 외면 받고 있을까요?

  • 3편 송배전 : 새 발전소가 전선에 연결되는 순서는 사실상 '선착순'. 그런데 그 줄 끝이 안 보입니다.

  • 4편 판매·시장 : 시장의 심판과 선수가 한 몸이라면, 그 경기는 누구를 위한 경기일까요?

  • 5편 해법 : '원앤온리' 한전 시대를 끝내고, 전기를 다시 흐르게 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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