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 -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
- 발행일
- 2026-07-27
- 편집자
- 권혜민
더 큰 문제는 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앞으로도 이대로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전 세계가 석탄에서 손을 떼는 와중에, 한국은 2024~2025년에 신규 석탄발전소인 삼척블루파워 1·2호기를 가동했어요. 노후 석탄을 닫는 자리마저 가스로 채우면서, 화석연료 설비는 계속 새로 깔리고 있고요.
화력발전소는 한번 지으면 30~40년을 돌려야 합니다. 2050 탄소중립을 약속한 나라가, 한 세대 동안 화석연료에 발목 잡힐 구조를 지금도 더 단단히 짓고 있는 셈이죠.
스위치를 켜면 전기가 켜집니다.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묻지 않죠. 이 전기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겉으로 똑같아 보이는 전기에도 출신이 있습니다. 석탄을 태워 만든 전기, 우라늄에서 나온 전기, 햇빛이 만든 전기. 우리가 매일 쓰는 전기 한 줌의 출신을 따라가 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한국 전력시장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2편에서는 전기가 태어나는 첫 순간, 발전을 들여다봅니다.
전기에도 출신이 있다
전기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예요.
석탄발전은 석탄을 태워 물을 끓이고, 그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듭니다. 가스발전도 비슷하게 가스의 힘을 씁니다. 원자력은 우라늄이 핵분열할 때 나오는 열을 쓰고요. 태양광은 햇빛을 패널로 받아 전기로 바꾸고, 풍력은 바람으로 날개를 돌립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석탄·가스·원전은 연료가 필요해 끊임없이 수입해야 하지만, 태양광과 풍력은 햇빛과 바람만 있어도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에요.
한국 전기는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나

그럼 우리가 지금 쓰는 전기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요.
2024년 한국이 만든 전기의 연료 비중을 보면, 원자력 31.7%, 가스 28.1%, 석탄 28.1%, 그리고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약 10.6%입니다. 석탄과 가스를 합한 화석연료만 56%, 절반이 넘어요. (출처: 2024년 에너지 수급 동향)
이 숫자, 다른 나라와 나란히 놓고 보면 그림이 달라집니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약 36%. 한국은 그 3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흔히 "한국은 날씨 때문에 재생에너지 만들기 힘들지 않아?"라고 생각하지만, 답은 다른 곳에 있어요. 발전 구조 자체가 화석연료 위주로 굳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박히면 좀처럼 빠지지 않는, 기울어진 운동장이죠.
지금부터 그 운동장의 기울기를 하나씩 들여다볼게요.
화석연료로 기울어진 운동장
싼 것부터 돌려요
수많은 발전소가 동시에 다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발전 단가가 낮은 순서대로 차례로 돌리거든요.
가장 먼저 바닥에 깔리는 건 원전과 석탄. 가스보다 연료비가 싸고, 한번 켜면 좀처럼 끄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그 다음 자리에 재생에너지, 마지막에 가스가 채워집니다.
여기까지 보면 이상하지 않나요? 원전과 석탄 다음 순서가 재생에너지라면서, 왜 재생에너지 비중은 가장 적을까요?
한번 켜면 꺼지지 않아요
원전과 석탄이 먼저 깔리는 이유는 연료비 말고 또 있어요.
이런 대규모 발전소는 수십 년 전 경제 성장기에, 값싼 전기를 대량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할 목적으로 지어졌어요. 한번 켜면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가는 구조죠. 출력을 너무 낮추면 설비가 손상되고 대기오염 물질도 더 나옵니다. 그래서 "최소한 이만큼은 돌려야 한다"는 하한선, 즉 최소발전용량이 정해져 있어요.
문제는 한국의 최소발전용량 하한선이 국제 기준보다 유독 높다는 점입니다. 최소가 최소가 아닌 셈이죠.
💡한국 최소발전용량 평균 50-60%
국제 권고 수준 30-40%
일본 30%, 인도 40% 하향 로드맵 수립, 중국 30-40%
화력발전이 먼저 바닥의 절반 이상을 깔고 앉아 있으니, 그 위에 재생에너지가 들어설 자리가 좁아집니다. 햇빛과 바람이 아무리 좋아도 "지금 충분히 만들고 있으니 멈춰라"는 신호가 떨어지죠. 만들어 놓은 재생에너지 전기가 그대로 버려지는 모순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화력발전이 자리를 차지하고 버티는 만큼, 재생에너지가 들어설 틈은 사라집니다.
발전하지 않아도 돈을 벌어요
여기서 한 발 더 나갑니다. 화력발전소는 전기를 만들지 않을 때도 돈을 받아요.
용량요금이라고 부릅니다. "혹시 모를 비상 상황을 대비해 대기해줘서 고맙다"는 명목으로 지급되는 돈이에요. 그 액수가 만만치 않습니다.
💡2024년 한전의 총 전력구매비용 73조 7,807억 원 중 용량정산금 8조 2,274억 원.
한전이 전기를 사는 데 쓴 비용의 약 10%가 '대기 수당'으로 빠져나간 셈입니다.
원래 용량요금은 비상시 예비 전기를 확보하려는 정당한 유인책이에요. 하지만 그 액수가 과도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실제로는 거의 돌리지 않는 노후 화력발전소들이 이 돈을 연금처럼 받으며 수명을 연장하고 있거든요.
다시 정리해 봅시다. 한쪽에서는 어렵게 만든 재생에너지 전기가 버려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발전기를 돌리지 않는 화력발전소가 돈을 받습니다. 이 기이한 구조가 한국 전력시장에서 1년 내내 일어나고 있어요.
재생에너지는 힘들게 태어나도 갈 곳이 없다

지금까지 본 문제들이 겹쳐서 한국의 발전 시장 자체가 화력에 특혜를 주도록 짜여 있습니다.
이렇게 운동장이 기울어 있으니,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보다 더 깨끗해도, 더 싸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요. 사실 가격 측면에서 재생에너지는 이미 화석연료를 따라잡았습니다.
💡태양광 발전 단가는 2010년 이후 약 90% 하락
2024년 전 세계에서 새로 지은 재생에너지의 91% 이상이 신규 화석연료 발전소보다 더 낮은 비용으로 전력 생산출처: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더 큰 문제는 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앞으로도 이대로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전 세계가 석탄에서 손을 떼는 와중에, 한국은 2024~2025년에 신규 석탄발전소인 삼척블루파워 1·2호기를 가동했어요. 노후 석탄을 닫는 자리마저 가스로 채우면서, 화석연료 설비는 계속 새로 깔리고 있고요.
화력발전소는 한번 지으면 30~40년을 돌려야 합니다. 2050 탄소중립을 약속한 나라가, 한 세대 동안 화석연료에 발목 잡힐 구조를 지금도 더 단단히 짓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재생에너지의 설움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어렵게 태어난 재생에너지 전기는 전선이라는 길 위에서 또 한 번 막힙니다. 만들어 놓고도 흘려보내지 못하는 거죠.
햇볕은 쨍쨍한데 태양광은 강제로 멈춰 서는 모순. 새로운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전선에 연결되려고 수년째 줄서서 기다리는 풍경.
다음 3편 '송배전'에서 꽉 막힌 길을 따라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