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글로벌 채권에 기후 리스크 누락…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공익신고 접수
위반 사실 확인 시, 향후 한전 해외 채권 발행 및 자금 조달 과정에 큰 타격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해외 증권거래소에 110억 달러 규모(15조3500억 원)의 글로벌 채권 프로그램을 상장하며 기후 리스크 관련 부분을 고의로 누락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9일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한전이 글로벌 중기채권 프로그램 투자설명서에 석탄 및 LNG 등 화석연료 의존에 따른 주요 위험 요소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신고가 싱가포르 증권거래소(SGX)에 접수됐다. 한전이 지난 2월 SGX에 상장한 11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채권 프로그램의 공시가 싱가포르 증권선물법(SFA)과 SGX 거래소 규정을 위반했는지 판단해달라는 게 신고의 핵심이다.
신고 내용에 따르면 한전은 파리협정과 국제 탈탄소 목표에 의거해 구체적으로 밝혀야 할 석탄 발전 계획을 명확히 내놓지 않았다. 2030년까지 석탄을 전면 퇴출해야 한다는 국제에너지기구(IEA) 지침과 달리, 한전은 퇴출 시점을 2050년까지로 잡고 있다. 한전은 또 LNG 가격 변동성과 사업 지연에 따른 주요 재무 리스크도 축소해 공시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아울러 수소 및 암모니아 혼소 기술을 ‘탄소 제로’로 과장해 소개하는 등 투자자가 오해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싱가포르의 SFA와 SGX 거래소 규정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내용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메인보드 규정이란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증권을 상장한 주요 기업들이 지켜야 할 정보 공개, 회계, 지배구조, 투자자 보호 관련 규칙이다. 이번 신고를 통해 한전의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향후 한전의 해외 채권 발행 및 자금 조달 과정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한전은 지금껏 누적된 수십조 원대 적자로 2022년부터 총 7차례에 걸쳐 42억 달러(5조9000억 원)의 채권을 글로벌 시장에서 발행해왔다. 특히 2024년까지는 이를 모두 ‘그린’ 또는 ‘지속가능’이란 이름을 붙여 채권을 발행했다. 그러나 실제 자금 집행이 그 목적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불투명해 지난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에 표시광고법 위반 등 혐의로 신고된 바 있다. 올해 2월 한전은 지속가능 채권이 아닌 일반채권 형태의 자금조달 방식으로 전환해 리스크 공개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올 2월 한전이 이번 중기채권 프로그램을 통해 발행한 채권 규모는 애초 10억 달러대에서 4억 달러대로 줄었다. 이처럼 해외 채권 발행이 계속 감소한다면 기존 적자에 더해 한전에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기후솔루션은 한전의 투자설명서에 기후 리스크를 누락한 사실이 명확한 만큼, SGX가 정식 조사에 착수하고 필요한 규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한전의 이같은 공시 방식이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금융시장의 ESG 정책을 퇴행시키는 위험한 전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솔루션의 이관행 외국 변호사(미국 캘리포니아)는 “투자자들은 발행 기업이 직면한 기후 리스크에 대한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한전은 투자설명서에 석탄의존성과 LNG 수요 감소 리스크 등을 누락하고, 수소-암모니아 혼소를 ‘탄소 제로’라고 홍보하는 등 당사의 미흡한 기후위기 대응으로 인한 위험 요소들을 투자자들에게 제공하지 않았다”며 “기후 리스크는 곧 재무 리스크고, 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시장을 오도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번 신고 건은 SGX가 기후 공시와 관련된 문제 제기에 대해 어떠한 규제를 적용할지 가늠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은 그린워싱과 좌초자산 리스크, 화석연료 의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 에일린 리퍼트 연구원은 “이번 사안은 단지 한 기업의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라 금융 시스템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제고할 중요한 계기”라며 “한전 같은 발전사가 화석연료 관련 리스크를 왜곡하면 시장 질서를 훼손하고 투자자 신뢰를 무너뜨린다. 이런 불투명한 채권에 자금을 대는 것 역시 무책임한 금융 행위”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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