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석탄 4

이제 시장은 '값싼 철'을 찾지 않는다

발행일
2026-09-20

편집자
이우영

지난 편에서 우리는 기업의 기후 책임이 더 이상 공장 담장 안에 머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급망 전체의 배출을 관리해야 하고, 고객사와 투자자, 규제기관까지 그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따라옵니다. 시장은 실제로 무엇을 요구하고 있을까요.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시장은 이제 철강회사에 "철을 많이 만들라"고 하지 않습니다.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철을 만들어달라"고 합니다. 환경단체만의 주장이 아니에요. 자동차 기업과 투자자, 금융기관, 정부가 동시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계 철강산업의 경쟁 규칙 자체가 뿌리부터 바뀌는 중입니다.

자동차 회사들은 왜 철강을 보기 시작했나

전기차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자동차 기업들은 뜻밖의 벽을 만났습니다. 차가 도로를 달릴 때 나오는 탄소는 줄었는데, 정작 그 차를 만드는 과정의 탄소는 여전히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이죠. 전기차 한 대에는 철강과 알루미늄, 배터리 소재가 잔뜩 들어갑니다. 이 소재들이 탄소를 펑펑 뿜으며 만들어졌다면, 전기차를 아무리 팔아도 공급망 배출(Scope 3)은 꿈쩍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기업들은 자사 공장을 넘어 공급망으로 눈을 돌렸고, 그중에서도 철강을 주목했습니다. 실제로 철강사 SSAB와 볼보 자동차는 저탄소 철강 공급 계약을 맺었어요. 볼보는 양산차에 저탄소 철강을 세계 최초로 적용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차를 만들 때 나오는 소재 배출의 25%가 철강에서 나온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철은 단순한 원재료가 아닙니다. '어떤 철을 쓰느냐'가 자동차 기업의 기후 전략이자 브랜드 경쟁력을 가르는 시대가 된 겁니다.

철강산업의 판이 바뀐다

과거 철강산업의 규칙은 명확했습니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싸게 만드느냐." 하지만 지금 시장이 던지는 질문은 다릅니다.

"얼마나 저탄소로 만드나."

자동차 산업은 세계 철강 수요의 12%를 차지하는 큰손입니다. 이 큰손의 구매 기준이 바뀌면 철강사의 투자 방향도 따라 바뀔 수밖에 없어요. 자동차 산업이 '녹색철강' 시장을 여는 핵심 동력으로 꼽히는 이유죠. 유럽과 미국에서는 저탄소 철강을 우선 구매하는 공공조달 정책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철강회사의 진짜 경쟁 상대는 더 이상 옆 동네 철강사가 아닙니다. 누가 미래 시장의 저탄소 기준에 먼저 올라타느냐, 여기서 승부가 갈립니다.

세계는 이미 공정 전환으로 달린다

그렇다면 세계 철강산업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요즘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단연 '그린스틸(Green Steel)'입니다. 그린스틸은 기존 공장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돌리는 수준이 아니라, 철을 만드는 방식 자체를 판갈이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 중심에 수소환원제철(H₂-DRI)이 있어요.

지금은 대부분 석탄을 때는 고로 공정으로 철을 만듭니다.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는 데 석탄을 쓰니 이산화탄소가 쏟아지죠. 수소환원제철은 그 석탄 자리에 수소를 넣습니다. 배출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들이 평가하는 방식이에요. 물론 비용과 기술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모든 기업이 오늘 당장 바꿀 수 있느냐'가 아니라 '세계 시장이 어느 쪽으로 돛을 올렸느냐'입니다. 그리고 그 바람은 분명히 저탄소 철강 쪽으로 불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의 눈에 보이는 것

이 흐름은 규제와 공시 제도에서도 뚜렷합니다. 유럽연합의 기업 지속가능성 공시지침(CSRD)이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IFRS S2를 보면, 이제 기업은 "우리 공장 굴뚝은 깨끗해요"라고 우길 수 없습니다.

  • 어떤 공급망을 갖고 있는지

  • 어떤 저탄소 기술에 투자하는지

  • 미래 전환 전략을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지

투자자들은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기업 가치를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ESG가 보고서 한구석을 장식하는 이벤트였다면, 이제는 투자와 재무, 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들어온 셈입니다.

결국 우리가 지키려는 건 '같은 미래'

이번 시리즈는 포스코 고로 개수를 둘러싼 기후소송에서 출발했습니다. 세계 기후소송의 흐름, 기업 책임의 변화, 공급망의 역할, 그리고 철강산업을 둘러싼 세계 시장의 움직임까지 짚어왔죠.

처음엔 환경과 산업이 팽팽히 맞서는 싸움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기후를 말하면 기업이 손해 보고, 산업을 말하면 환경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세계 시장의 흐름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동차 기업이 저탄소 철강을 찾는 것도, 투자자가 공급망의 기후 위험을 따지는 것도, 각국 정부가 산업 전환에 매달리는 것도 이유는 하나입니다. 미래에도 살아남기 위해서죠.

기후위기는 시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폭염과 가뭄, 홍수는 기업의 생산성과 공급망을 흔들고, 탄소 규제와 시장 변화는 기업의 수익과 생존을 직접 때립니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와 기업이 사업을 이어갈 미래는 따로 있지 않아요. 그래서 기후위기 대응은 산업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기업이 미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건에 가깝습니다.

고로 소송 역시 설비 하나를 고칠지 말지를 다투는 단편적 논쟁이 아닙니다. 어떤 산업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죠. 탄소를 줄이는 일은 지구를 위한 선택인 동시에, 우리 기업과 산업이 살아남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전략입니다. 그리고 세계는 이미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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