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석탄 1

고로가 뭐길래, 소송까지 갔을까

발행일
2026-09-20

편집자
박준희

한 번 붙이면 꺼지지 않는 불

포항이나 광양에서 자란 아이들은 굴뚝 연기를 보며 등교합니다. 창문을 잠깐 열어두면 창틀에 철가루가 쌓이고, 미세먼지에 온종일 목이 칼칼해도 "포스코 덕분에 우리가 먹고산다"는 어른들의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죠. 소송에 참여한 청소년 김정원 씨가 기자회견에서 전한 이야기입니다.

그 연기가 나오는 곳이 고로(高爐)입니다. 안쪽 온도는 1,500도가 넘습니다. 한번 불을 붙이면 15년이고 20년이고 끄지 않아요. 식으면 안쪽 벽돌이 깨지고, 다시 데우는 데만 며칠이 걸리거든요. 끄고 켜는 스위치가 아니라, 한번 붙이면 십수 년을 내리 타는 불인 겁니다.

2025년 2월 27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에 그 불을 멈춰달라는 소장이 접수됐습니다. 원고는 만 11세부터 18세까지 청소년 10명. 피고는 대한민국 온실가스 배출량 1위 기업, 포스코입니다.

청구 취지는 한 문장이었습니다. "광양 제2고로 개수 공사를 멈춰달라.”

'개수'라는 낯선 단어 하나 때문에 초등학생까지 법정에 서게 된 이유, 무엇일까요.

철을 만드는 원리가 곧 탄소를 만드는 원리

고로는 말 그대로 '높은 용광로'입니다. 아파트 10층 높이의 솥단지에 철광석과 석탄을 함께 넣고 태워 쇳물을 뽑아냅니다.

여기서 석탄은 그냥 땔감이 아닙니다. 철광석은 산소를 꽉 붙들고 있는데, 순수한 철이 되려면 이 산소를 누군가 떼어내 대신 업고 나가야 해요. 그 짐꾼이 바로 석탄의 탄소입니다. 산소를 업은 탄소는 이산화탄소가 되어 굴뚝으로 빠져나가죠.

그럼 설비를 더 좋게 고치면 배출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어렵습니다. 철을 만드는 원리 자체가 곧 이산화탄소를 만드는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연료를 바꾸고 효율을 높이는 것으로는 한계가 뚜렷하죠. 전문가들이 '효율 개선'이 아니라 '공정 자체를 바꾸는 감축'을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결과는 숫자로 드러납니다. 포스코는 철강제품 생산량의 약 97%를 이 고로 방식으로 만들고, 2011년 기업별 배출량 통계가 처음 공개된 뒤 단 한 번도 배출 1위를 내준 적이 없습니다. 철강 산업 전체로 넓히면 국내 산업부문 배출의 46%, 국가 전체의 약 17%를 차지하고요.

나오는 건 온실가스만이 아닙니다. 2023년 환경부 집계에서 광양제철소와 포항제철소는 각각 2만 8,257톤, 2만 80톤의 대기오염물질을 내뿜어 전국 943개 사업장 중 1, 2위에 나란히 올랐습니다. 2021년 한 연구에서는 국내 3개 제철소에서 배출된 대기오염물질과 관련된 조기 사망 위험을 약 506명으로 추정하기도 했죠.

김정원 씨가 말한 창틀의 철가루를 통계로 옮기면, 딱 이런 모습이었던 겁니다.

‘개수’는 수리가 아닙니다

고로 안쪽에는 1,500도 이상의 쇳물과 열을 견디는 내화벽돌이 촘촘히 쌓여 있습니다. 보통 15~20년가량 가동하면 내화물 등이 마모 되기 때문에, 내화벽돌을 교체하는 등 설비를 대대적으로 정비합니다. 이것이 '개수'입니다. 말은 '수리'지만, 실은 "앞으로 15년 더 태우겠다"는 예약에 가깝습니다.

돈부터 다릅니다. 앞서 손 본 포항 제4고로는 5,300억 원이 들었고, 광양 제2고로 개수 예산은 계약 금액만 2,830억 원입니다. 그리고 한번 하면 최소 15년입니다. 이번 개수가 곧 "이 설비를 2040년 무렵까지 돌리겠다"는 선언인 이유죠.

광양 제2고로는 1988년 첫 불을 붙여 2005년에 한 차례 개수했습니다. 이번이 19년 만의 두 번째 연장입니다.

이번 개수로 앞으로 15년간 쌓일 탄소는 약 1억 3,702만 톤. 국민 980만 명이 1년 동안 내뿜는 양이자, 서울에 등록된 차량(318만 대)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승용차 368만 대가 폐차될 때까지 뿜는 양입니다.

남은 예산은 5억 5천만 톤

탄소에도 통장이 있습니다.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묶으려면 인류가 앞으로 쓸 수 있는 이산화탄소 잔액이 정해져 있거든요. 2024년 10월 기후솔루션은 이 '탄소 예산(Carbon Budget)' 개념으로 <광양 제2고로, 수명 연장만큼 멀어지는 탄소중립과의 거리> 보고서를 냈습니다.

IPCC의 탄소예산을 바탕으로 국가별·산업별 배분을 적용해 분석한 결과, 한국 철강산업에 할당되는 탄소 예산은 약 5억 5,000만 톤으로 추산됐습니다.

2024년 기후솔루션 보고서가 제시한 탄소 예산 기반 폐쇄 시나리오는, 1.5도 목표에 부합하려면 2025년 광양 제2고로를 시작으로 2034년까지 지금 돌아가는 고로를 순서대로 닫아야 한다고 봅니다.

  • 2025년 광양 제2고로 폐쇄(마지막 개수로부터 20년 경과)

  • 2030년 현대제철 당진 1, 2고로, 포스코 광양 제1고로 등 3기 폐쇄

  • 2033년 현대제철 당진 3고로, 포스코 포항 제2고로 등 2기 폐쇄

  • 2034년 파이넥스 2기를 제외한 나머지 고로 5기 전부 폐쇄

그런데 그 명단에서 가장 먼저 꺼야 할 바로 그 고로가, 거꾸로 15년을 더 쓰겠다며 불을 다시 지피고 있습니다. 통장 잔액을 넘겨 쓰면 결국 다른 산업이 그만큼 더 아껴야 합니다. 예산 초과는 1.5도를 위협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누가 더 참느냐는 형평성 다툼으로 번지죠.

포스코의 약속과 어긋나는 지점

포스코는 2020년 12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습니다. 2030년까지 788만 톤을 줄이겠다고 했죠. 그런데 이번 개수 한 건으로 앞으로 15년간 쌓일 탄소는 1억 3,702만 톤입니다. 줄이겠다고 약속한 양의 열일곱 배가 넘는 배출을, 스스로 예약해둔 셈입니다.

수소환원제철 이야기는 더 얄궂습니다. 포스코는 수소 기반 제철 기술 개발에 8,000억 원 이상의 정부 지원을 요청하며 "민간 혼자선 어렵다"고 했어요. 그런데 정작 포항·광양 고로 개수에는 그보다 많은 돈을 제 손으로 씁니다. 미래 기술엔 나랏돈을 빌리고, 낡은 석탄 설비엔 제 돈을 붓는 셈이죠.

세계는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영국 포트 탤벗은 2024년 9월 마지막 고로를 끄고 2027년까지 전기로로 갈아탑니다. 일본제철·타타스틸·아르셀로미탈도 고로를 줄이고 전기로로 옮겨가고요. 한 시장조사기관은 2023년 24억 달러였던 녹색 철강 시장이 2030년 3,206억 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먼저 목소리를 낸 사람들

2025년 2월 11일, 기후솔루션과 광양·포항·충남환경운동연합, 빅웨이브, 플랜1.5, 환경운동연합이 서울 포스코센터 앞에 모였습니다. 국내외 17개 시민사회가 서명한 공개서한도 전달했죠. 요구는 네 가지였어요.

  • 광양 제2고로 개수를 즉각 중단하고 폐쇄할 것

  • 모든 고로의 단계별 폐쇄 계획을 탄소중립 로드맵에 포함할 것

  •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전까지의 정량적 감축 계획을 공개할 것

  • 석탄 기반 생산 방식을 지속하지 않겠다고 공식 표명할 것

하지만 공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주 뒤, 청소년들이 법원으로 향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봄과 가을이 사라지는 것을”

원고 10명 중 다수는 제철소가 있는 동네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2명은 광양 제2고로 바로 곁에 삽니다.

최연소 원고 김유현 군은 초등학생으로서 마지막이 될 겨울방학에 기자회견장에 섰습니다. 좋아하는 봄과 가을이 사라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나왔다고 했어요.

포항에 사는 이주원 군은 포스코가 지원하는 환경수업을 들었습니다. 거기서 배운 게 탄소중립인데, 정작 회사는 수명이 다한 고로를 계속 고쳐 쓴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해요. 환경 수업 말고 고로 개수 중단으로 진심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창틀 이야기를 전한 김정원 씨는, 포항에서 직접 청소년환경단체를 꾸려 활동해왔습니다. '배은망덕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요. 그런 그가 이제는 '철강도시'라는 이름에 더는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주민들의 생각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한국리서치가 포항·광양·당진·순천 등 철강벨트 주민 2,500여 명에게 물었더니, 10명 중 7명이 "탄소를 많이 뿜는 산업은 언젠가 규제나 무역제재를 맞을 것"이라 답했습니다. 탈탄소 전환이 지역경제에 좋다는 응답도 70%를 넘었고요. 탈탄소가 지역을 해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역이 살아남을 조건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겁니다.

두 개의 ‘최초’

이 소송에는 두 가지 최초가 붙습니다.

하나는 국내 최초입니다. 2024년 8월 헌법재판소가 국가의 기후 대응 의무를 인정한 뒤, 그 논리로 기업의 책임을 정면으로 묻는 첫 소송이에요. 국가가 아니라 민간 기업을 상대로, 미래세대가 환경권과 생명권을 든 겁니다.

다른 하나는 세계 최초입니다. ‘고로 개수’라는 결정 자체를 법정에서 직접 다투는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

소송을 대리한 기후솔루션 김예니 변호사는, 고로 개수가 미래세대의 환경권·생명권을 침해할 수 있고 15년 넘게 수명을 늘리는 것은 국제 규범과 감축 요구를 외면하는 행위인 만큼, 민사상 공사중지를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직 답하지 않은 질문

2025년 3월, 포스코는 ‘전면 개수’ 계획을 ‘부분 개수’로 수정했습니다. 고로 수명을 십수 년 연장한다는 본질은 그대로라는 것이 원고 측 입장입니다.

다른 나라 철강사는 다릅니다. 일본 JFE스틸은 고로 개수 일정과 비용을 공개했고, 독일 티센크루프는 어느 고로를 언제 대체할지 밝혔으며, 스웨덴 SSAB는 폐쇄 시점과 투자액, 감축 전망을 녹색금융보고서에 담았습니다. 어떤 고로를 언제 끄고 탄소를 몇 톤 줄일지 밝히는 것을, 지속가능 금융의 기본 전제로 삼는 거죠.

포스코도 2022년 리스폰서블스틸 인증을 아시아 최초로 받았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이 인증의 근거가 되는 생산표준은 기업과 사업장에 파리협정에 부합하는 기후목표를 세우고, 온실가스 감축 계획과 배출량을 공개하도록 요구합니다.

2026년 7월로 예정됐던 2차 변론은 서면 공방을 위해 미뤄졌고, 소송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지지 서명에는 시민 3,000명이 넘게 참여했고, 'Steel the Future'라는 이름 아래 일본과 유럽의 기후단체도 연대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꺼지지 않는 불 앞에서

고로의 불은 한번 붙이면 좀처럼 꺼지지 않습니다. 그게 이 설비의 특성이자, 이 소송이 다투는 문제의 성격이기도 해요. 개수 결정 하나가 15년의 배출을 정합니다. 그런데 그 15년을 살아갈 사람들은, 정작 그 결정에 아무 말도 보탤 수 없었죠. 그래서 열두 살이 법정에 섰습니다.

이 소송의 질문은 고로 한 기를 고칠지 말지가 아닙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거대한 배출 설비의 수명을 늘리는 기업의 결정을 법이 그냥 두어도 되는가. 아직 아무도 답하지 않은 질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질문이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세계 곳곳의 법정에서 벌어지는 기후소송의 흐름을 따라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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