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석탄 2

피고석에 앉기 시작한 기업들

발행일
2026-09-20

기후소송이라고 하면 보통 시민이 정부를 상대로 따지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실제로 지난 10여 년간 기후소송의 주인공은 대체로 국가였어요. 그런데 요즘 피고석 풍경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정부 대신, 회사 이름이 적힌 명패가 놓이기 시작한 겁니다.

기후소송은 기후변화가 불러올 피해를 미리 막거나, 이미 벌어진 일에 책임을 묻는 소송입니다. 특이한 건 목적입니다. 이겨서 무언가를 받아내는 것보다, 소송을 거는 행위 자체로 정책과 제도를 바꾸고, 핵심 이해관계자를 움직이고, 대중의 인식을 끌어올리는 데 방점이 찍혀 있죠.

기후소송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초기 기후소송은 주로 미국과 호주에서 나왔습니다. 대부분 정부를 상대로 "환경 기준을 더 높이라"고 요구하는 행정소송이었죠. 첫 축에 꼽히는 게 1990년 로스앤젤레스시 등이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을 상대로 낸 사건입니다. 자동차 연비 기준을 정하면서 온실가스가 기후에 미칠 영향을 따지지 않은 건 환경영향평가법 위반이라는 주장이었어요.

흐름이 확 커진 건 2015년입니다. 파리협정 채택과 네덜란드 우르헨다 소송 승소가 겹치면서 전 세계로 소송이 번졌습니다. 무대도 미국·호주에서 유럽으로 넓어졌고, 지금도 계속 퍼지는 중이에요. 2023년에는 파나마와 포르투갈에서도 첫 기후소송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흐름 속에서 새로운 갈래가 갈라져 나옵니다. 정부가 아니라, 기후변화에 원인을 제공한 기업을 겨누는 소송이죠.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이 소송들은 피해 배상만 요구하지 않습니다. 시민들은 "그 회사의 사업계획 자체가 틀렸다"고 말합니다. 얼마를 물어내라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라는 요구인 겁니다. 대표적인 세 사례를 보겠습니다.

셸(Shell) "45%를 줄이라"는 초유의 명령

2019년, 네덜란드 일곱 개 단체와 시민 1만 7000여 명이 석유 기업 셸을 법정에 세웠습니다. 셸의 사업계획이 파리협정과 어긋나니, 회사 스스로 배출을 줄일 법적 의무가 있다는 주장이었어요.

2021년 헤이그 지방법원의 답은 놀라웠습니다.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온실가스를 순 45% 줄이라고 명령한 겁니다. 그것도 셸이 직접 뿜는 양만이 아니라, 소비자가 셸의 기름을 태울 때 나오는 배출량(Scope 3)까지 포함해서요. 사기업에 구체적인 감축 수치를 콕 집어 명령한 건 세계 최초였습니다.

2024년 11월 항소심은 이 명령을 취소했습니다. 다만 이유가 중요해요. "셸에 책임이 없다"가 아니라, "법원이 개별 기업에 특정 감축 비율을 지정할 만큼 명확한 기준이 아직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형 오염 기업이 기후에 대응할 의무를 진다는 점만큼은, 항소심도 인정한 셈입니다.

엑손모빌(Exxon) 기후 전략은 누가 정하는가

엑손모빌 소송의 핵심 질문은 '얼마나 배출했나'가 아닙니다. '기후 위험을 투자자에게 제대로 알렸나'입니다. 주주와 투자자들은 엑손모빌이 기후 관련 비용과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투자자를 오도했다고 봤어요.

2024년, 온실가스 감축을 더 강화하라는 주주제안이 올라오자 엑손모빌은 제안을 낸 주주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규제기관(SEC)을 건너뛰고 곧장 법원으로 간 이 전략은 기관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을 샀죠.

사건은 법원의 실질 판단 없이 끝났지만, 쟁점은 분명합니다. 기후 전략은 누가 정하는가. 이사회인가, 주주인가. 기후 문제가 배출량 통계를 넘어, 기업의 지배구조와 공시 영역으로 옮겨왔다는 신호입니다.

토탈에너지(TotalEnergies) "기름을 팔았으면 끝까지 책임져라”

가장 최근 소식은 프랑스에서 나왔습니다. 환경단체 세 곳과 파리시가 함께 토탈에너지에 소송을 걸었고, 2017년 제정된 '기업 주의의무법'이 근거였습니다.

2026년 6월, 파리 법원은 기후위험이 이 법의 적용 대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Scope 3 배출까지 회사의 책임 범위에 넣었어요. 토탈에너지 탄소발자국의 약 90%를 차지하는 부분입니다. 법원의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석유 한 배럴을 캐고 정제해 파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그 기름의 연소로 이어진다는 것. 팔았으면 태워질 걸 알았을 테고, 그렇다면 그 배출도 회사 몫이라는 논리죠.

법원은 6개월 안에 기후 위험 평가와 대응책을 담은 새 계획을 내라고 명령했습니다. 다만 신규 화석연료 개발 중단이나 구체적 감축목표까지는 명령하지 않았어요. 조치가 미흡하면 추가 명령이 가능하고, 후속 심리는 2027년 1월로 잡혔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지고 있나

세 사건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과거에 입힌 피해를 돈으로 갚아라"가 아니라, "앞으로의 결정을 바꾸라"는 것. 그리고 이런 소송이 이어지면서, 법원도 기업의 투자계획과 전환계획을 직접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 연비 기준을 문제 삼던 소송에서 출발해 이제는 기업의 사업 전략 그 자체가 법정의 심사대에 오른 겁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청소년들이 포스코의 고로 수명 연장을 걸고 소송을 냈고, 농민들은 한국전력과 발전 자회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세계 법정에서 벼려지고 있는 논리들은 머잖아 한국 법정에서도 쓰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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