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지구, 다른 청구서
- 발행일
- 2026-08-09
- 편집자
- 이우영
2022년 여름, 파키스탄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습니다. 3,300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집과 농지, 학교와 병원이 흙탕물 속으로 사라졌어요.



같은 시기 아프리카 사헬 지역은 끝이 보이지 않는 가뭄으로 극심한 식량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은 해마다 차오르는 바닷물을 보며 나라가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가 뉴스에서 이런 소식들을 접하는 방식은 조금 이상합니다. 프랑스에서 폭염으로 수천 명이 숨졌다는 소식은 헤드라인이 됩니다. 반면 개발도상국에서 이미 수십 년째 반복되어온 기후재난은 좀처럼 헤드라인이 되지 않았어요.
프랑스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는 물론 안타깝고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 됩니다. 다만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선진국인 프랑스조차 피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 너머에,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개도국의 소리 없는 비극이 있다는 것.
기후위기는 이제 모두에게 찾아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위기에는 명확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어요. 그리고 이 불평등한 현실은 국제사회에 아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기후위기를 만들었고, 누가 그 대가를 목숨으로 치르고 있는가?"
기후위기에는 이름이 있다
기후위기는 자연재해가 아닙니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를 뜨겁게 달군 탄소의 대부분은 미국·유럽·일본 등 먼저 산업화를 이룬 선진국들과 거대 다배출 기업들에서 나왔어요. 이들이 이 위기의 가해자입니다.
반면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은 개발도상국과 취약계층은, 기후위기를 만든 데 보탠 것이 거의 없는데도 재난의 맨 앞줄에서 가장 참혹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된 거죠.
같은 폭염과 홍수라도 피해를 복구하고 견뎌낼 돈과 시스템이 부족한 개도국에게 기후위기는 단순한 이상기후가 아니라 생존의 파괴입니다. 결국 기후위기는 환경 문제를 넘어 지독하게 불평등한 정의(Justice)의 문제예요.
가장 약한 곳에 먼저 떨어지는 청구서
이 불평등의 청구서는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취약계층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유니세프가 202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년간 44개 나라에서 기상 재해로 인해 4310만 명의 어린이가 자국 내에서 강제 이주를 겪었습니다. 하루에 약 2만 명의 아이들이 살던 집을 떠난 셈이에요.

여성과 소녀들이 겪는 위험도 커지고 있습니다. 유엔 스포트라이트 이니셔티브가 2025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평균기온이 1℃ 오를 때 가정폭력이 약 4.7%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폭염 기간에는 여성 살해(femicide)가 최대 28%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어요.
폭염만 폭력을 늘리는 게 아닙니다. 2022년 학술지 <The Lancet>에 실린 연구는 기후변화로 인한 극단적 기상현상이 경제 불안정, 식량 부족, 사회 인프라 붕괴로 이어지고, 이 상황이 기존의 젠더 불평등과 결합하면서 여성과 소녀들을 성폭력·착취·가정폭력 위험에 더 크게 노출시킨다고 설명합니다.
가뭄으로 생계가 무너지고, 홍수로 공동체가 해체되고, 난민이 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들. 이들의 삶은 누가 보상해줄까요.
'손실과 피해’ - 가해자는 어떤 책임을 지고 있을까?
개발도상국들은 오랫동안 국제사회에 이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당신들이 만든 위기의 대가를, 왜 우리가 치르고 있나"
그래서 2009년, 선진국들은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를 개도국 기후 대응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어요. 하지만 이 약속은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마저도 대출·차관 비중이 커서, 개도국 입장에선 '지원'이 아니라 '빚'으로 남는 경우가 많았죠.
재원 지원조차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이미 벌어진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온실가스를 줄이는 '감축'이나 재난에 대비하는 '적응'만으로는 이미 잃어버린 집과 농지, 목숨을 돌려놓을 수 없기 때문에 개도국들이 30년 넘게 요구해온 어젠다가 바로 '손실과 피해'입니다.
이 논의는 2022년 COP27(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마침내 '손실과 피해 기금' 설립 합의로 이어졌고, 이듬해 COP28에서 기금이 공식 출범했어요. 하지만 문제는 규모입니다. 초기 공약된 금액이 개도국이 매년 겪는 재난 피해액에 비하면 상징적인 수준이었거든요. '계좌는 만들어졌지만, 안은 여전히 비어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죠.
국제 기후협상의 핵심에는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BDR)'이라는 원칙이 있어요. 모두가 책임은 있지만, 더 많이 배출한 쪽이 더 큰 몫을 져야 한다는 원칙이죠.
"기후위기를 만든 선진국들이 더 큰 청구서를 받아야 한다"는 개도국의 요구와, "중국·한국 같은 신흥 경제 대국들도 책임과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선진국의 주장. 이 두 입장은 매년 COP에서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어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한국의 독특한 위치
이 지점에서 한국의 위치가 애매해집니다.
과거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던 개발도상국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OECD 회원국이자 세계적 경제 대국이고, 동시에 세계 주요 온실가스 다배출국 중 하나입니다.
한국도 이상기후로 인한 폭우·폭염·농작물 피해를 겪는 피해자가 맞아요. 그런데 국제사회가 바라보는 한국은 동시에 가해자 쪽에 가깝습니다. 한국이 그동안 뿜어낸 온실가스가 다른 나라들의 재난에 기여한 몫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국제사회는 한국에 더 이상 '지원을 받는 나라'가 아니라 '손실과 피해 기금에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나라'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여전히 이 요구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요.
한국이 얼마나 큰 탄소 청구서를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청구서에 누구의 이름이 적혀야 하는지. 그 이야기는 이 시리즈의 3편에서 자세히 풀어봅니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짜 청구서
기후위기는 이제 선진국과 개도국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폭염 사망 소식이 우리를 놀라게 했듯, 앞으로도 이 위기는 어떤 안전지대도 남겨두지 않을 거예요.
그 속에서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조금 불편해할 때, 누군가는 국토와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요.
국제사회는 이제 단순히 "탄소를 얼마나 줄일 것인가"를 넘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어떻게 보상하고 책임질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 질문은 이제 우리나라, 한국을 향하고 있고요.
한국은 여전히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나라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만든 탄소 부채에 대해 책임 있게 청구서를 지불하는 나라일까요?
우리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기후위기 시대 속 대한민국의 위상과 미래가 결정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