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과잉 속 샤힌프로젝트 설비 가동 임박 … “구조조정 효과 상쇄”
대규모 석유화학 공장 ‘샤힌프로젝트’가 본격적인 가동 준비에 돌입한 가운데, 공급 과잉을 해소하려는 업계의 감산 기조와 거꾸로 가는 증설 행보가 산업의 체질 개선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기후솔루션은 3일 ‘감산 시대에 증설? 한국 석유화학의 위험한 베팅’ 이슈브리프를 발간하고, 한국 석유화학 산업이 공급과잉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한편에서는 범용 플라스틱을 대량 생산하는 샤힌프로젝트 가동을 앞두고 있는 아이러니를 꼬집었다.

실제 정부와 업계는 지난해부터 나프타분해시설(NCC) 생산능력을 에틸렌 기준 270만~370만 톤가량 줄이고 대산과 여수에서 설비를 통합하는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다. 범용제품 중심의 사업 구조를 고부가가치 스페셜티(고기능성 특수화학) 제품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그러나 내년 초 울산에서 샤힌프로젝트가 가동되면 에틸렌 180만 톤의 생산능력이 늘어나는 동시에 폴리에틸렌(PE) 생산능력 또한 현재 840만 톤 수준에서 970만 톤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애써 줄인 범용제품의 생산능력을 다른 쪽에서 다시 늘리는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생산이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최근 5년간 폴리에틸렌 수출은 사실상 정체됐고 내수 공급은 줄었다. 그 결과 한국의 폴리에틸렌 생산설비 가동률은 6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전 세계 가동률(81%)을 크게 밑도는 수준으로, 산업이 직면한 문제가 생산능력 부족이 아니라 수요 정체와 공급과잉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설비가 추가되면 한정된 수요를 더 많은 설비가 나눠 갖게 돼 산업 전반의 가동률과 수익성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수출 활로를 찾기도 쉽지 않다. 과거 한국 석유화학의 최대 고객인 중국은 이제 직접 생산을 넘어서서 수출 시장도 넘보고 있다. 중국은 에틸렌 생산능력을 2024년 5,500만 톤에서 2028년 8,000만 톤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최대 고객이 최대 경쟁자가 된 셈이다. 미국 또한 셰일가스를 앞세워 에탄 기반의 석유화학 생산을 늘리고 있다. 미국의 에탄 생산량은 2014년~2024년 10년 사이 하루 100만 배럴에서 280만 배럴로 늘었으며, 2024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강화된 규제 역시 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일회용 플라스틱 지침(SUPD)과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 등 관련 규제를 도입함에 따라 일회용 플라스틱 및 플라스틱 포장재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업계는 샤힌프로젝트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홍보하고 있지만, 실제 증설이 고용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신규 설비가 들어서는 지역에서는 일시적인 일자리 효과가 생기더라도 생산능력 감축과 설비 폐쇄가 진행되는 다른 지역은 경쟁 심화로 오히려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고 ▲샤힌프로젝트가 집중하는 범용 플라스틱은 이미 공급과잉과 수익성 저하에 직면해 있어 장기적으로는 생산 규모 축소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수 있어서다. 실제 지난해 12월 발간된 한국고용정보원의 보고서 ‘산업전환에 따른 석유화학산업 동향 및 고용 현황 분석’에 따르면, 범용 제품 생산에 집중한 사업체는 매출과 고용 모두에서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
김도윤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결국 생산능력 확대만으로는 국내 석유화학의 고용을 제약하는 구조적 문제를 풀 수 없다”며 “고용 둔화는 고효율 설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글로벌 수요 정체와 공급과잉, 범용제품의 수익성 악화라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브리프는 신규 범용 설비 투자보다 기존 설비를 줄이고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정부의 정책·재정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스페셜티에 집중한 기업의 총주주수익률(TSR) 중앙값은 55%로 범용 제품 중심 기업(17%)의 세 배를 웃돈다. 전환이 늦어질수록 고용 위기를 부른 범용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구조재편 이후 생산능력 재확대를 막을 정책적 목표와 이행 수단을 보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도윤 연구원은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설비가 아니라 더 나은 전환”이라며 “기후위기 시대에 변화하는 국제사회의 규범 속에서 범용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어 “감산을 유도하면서도 증설의 문까지 여는 엇박자가 계속된다면, 구조조정의 성과는 물론 그 고통을 감내한 기업과 노동자의 노력도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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