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장벽에 막힌 낡은 설비, 산업 붕괴의 서막... 단기 처방 넘어 '탄소 예산' 기반 산업 재편 시급
수익성 넘어 ‘에너지 전환 가능성’으로 구조조정 틀 바꿔야
국가 차원의 조기 실증 및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 기업 리스크 분담할 수 있는 제도 촉구
여수·대산·울산 등 국내 석유화학 거점들이 탄소 규제로 인해 거대한 ‘좌초자산’으로 전락할 거란 경고가 나온 가운데, 산업 생존을 위한 ‘NCC(나프타 분해시설) 전기화’ 등 공정 전환을 석유화학 특별법의 핵심 전략기술로 명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17일 국회 기후위기 탈탄소 경제포럼과 기후솔루션이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의실에서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단순 기술 개발을 넘어 지역 기반의 대규모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과 국가 차원의 실증 지원을 결합해, 저탄소 전환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국내 제조업 생산액 5위, 수출액 4위의 기간산업인 석유화학은 여수·울산·대산 경제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심장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발 공급과잉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글로벌 환경 규제가 맞물리며 산업 전체가 생사 기로에 섰다. 범용 제품 위주의 생산 전략이 한계에 다다르고 가동률 하락과 투자 정체는 지역 산업 생태계의 붕괴 위기로 번지고 있다. 이번 토론회는 이 같은 구조적 위기 속에서, 석유화학이 탄소중립을 도약의 발판 삼아 지역 경제의 실질적 전환 전략을 모색하고자 마련됐다.
이날 첫번째 발제를 맡은 기후솔루션 석유화학팀 김아영 연구원은 석유화학 공정 배출의 약 70%를 차지하는 NCC 공정의 연료를 재생에너지 기반의 ‘전기’로 대체하는 NCC 전기화가 산업 생존의 유일한 돌파구라고 짚었다.
김 연구원은 BASF나 SABIC 등 해외 선도 기업들이 이미 대규모 실증 설비를 가동하며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반면, 한국은 아직 소규모 기술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태를 지적했다. 글로벌 실증 격차를 해소하고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NCC 전기화 기술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신속한 실증 지원과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원은 “지역 기반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과 함께 NCC 전기화와 같은 핵심 공정 전환 기술을 석유화학 특별법의 핵심 전략기술에 포함해 산업의 저탄소 전환과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발제자로 나선 플랜잇 박진수 대표 역시 NCC 전기화가 산업 경쟁력을 살릴 유일한 해법으로 꼽으면서, 초기 수요와 관련한 리스크를 정부가 함께 짊어져줘야 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석유화학 탈탄소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방법으로 독일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한국형 탄소차액계약제도(K-CCfD) 도입을 제안했다. CCfD는 기업이 저탄소 기술에 투자할 때, 탄소배출권 가격이 낮아져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정부가 보전해줌으로써, 기업이 안심하고 저탄소 기술에 선제 투자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탄소 투자 보장 제도’다.
더불어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정부 주도의 전략적 설비 대통합(LLP)도 제시했다. 이어 기업이 재생에너지 직접 조달(PPA)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정부는 기업의 실질적인 리스크를 함께 분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기업과 정부 차원에서 산업 경쟁력과 탄소 절감을 위해 진행 중인 계획과 제언들이 공유됐다.
장용희 LG화학 저탄소추진팀장 “전기화 NCC는 혁신적인 기술이나, 대규모 인프라 구축에 시간이 소요돼 당장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한 '즉효약'이 되기엔 물리적 한계가 있다”며 “반면 이미 사업화 단계에 접어든 바이오 원료 활용 및 리사이클링 기술을 활용하는 게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김동하 HD현대케미칼 팀장은 “전기료 등 현재 상황을 따졌을 때, 경제성이 담보되지 않는 전기화에 의구심이 있다”며 “지금 당장 친환경 탄소 저감과 원가 경쟁력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NCC(납사분해설비) 에탄 혼합 투입”이라고 했다. 이어 “에탄 탱크 터미널 같은 핵심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하고, NCC 에탄 혼합 투입을 위한 실증 기술 확보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최정윤 국회입법조사처 산업자원농수산팀 입법조사관은 “현재 석유화학 특별법은 ‘사업 재편 절차’ 위주로 짜여 있고, 전기화-수소화에 필수적인 전력망 보강, 재생전력 장기조달, 청정수소 공급망 등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책은 빠져있다”고 지적하면서 “기존 설비를 ‘전환 자산’으로 육성하려면 탄소 집약도, 탄소 에너지 조달 가능성, 고기능 제품 확장성 등을 평가해 지원 대상을 가릴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우숙 충남도청 미래산업과 금속화학신소재팀장은 “대산 1호의 NCC 전기화 등 근본적인 체질 개선은 물론, 롯데케미칼과 현대케미칼의 설비 통합 등 산업 구조 재편을 통해 고부가 신산업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며 “지역 단위의 위기 극복 실행력을 높이려면 중앙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호순 기후에너지환경부 탈탄소녹색산업혁신과장은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기업의 탄소중립 투자를 이끌어내려면 정부의 명확한 방향 제시가 필수적이라는 점에 공감한다“며 “산업별 맞춤형 'K-GX(녹색전환)' 전략을 수립해 투자의 불확실성을 낮추고, 나아가 '탄소중립산업법' 제정 및 장기적인 전환금융 지원 체계를 마련해 기업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노귀석 산업통상부 화학산업과 사무관은 “기업 구조개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역 경제와 고용의 충격을 최소화하고자 재정·고용·산업 등 관계 부처가 융합해 지원 패키지를 2호, 3호로 계속 확대해 나갈 것”이라며 “정부가 앞장서 고부가 전환 R&D 로드맵을 제시해 마중물 역할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남 LG화학의 2030년 전기 NCC 실증 같은 민관 협력 성과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국회 기후위기 탈탄소 경제포럼 소속 김정호 의원은 축사에서 "여수, 울산, 대산 등 석유화학 산단은 지역 경제와 고용의 핵심 기반"이라며 "석유화학 산업의 탈탄소 전환은 단순 환경 정책을 넘어 산업 경쟁력과 지역경제를 지키는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술개발 지원, 전환금융,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인프라 확충 등 종합적인 정책 지원을 위해 제도와 정책 마련에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같은 포럼 소속 박정현 의원도 "정부는 산단 구조개편에서 지역 경제 부흥과 탄소중립을 위한 맞춤 정책과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며 "동시에 지방정부도 지역단위에서 중앙부처와 함께 전환을 지원할 업무를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지혜 의원은 "해외 선도 기업들은 전기 기반의 NCC 실증 설비를 가동해 빠르게 미래를 준비하는 반면, 우리의 기술 개발은 소규모 실험에 머물러있다”면서 "막대한 초기 비용 부담을 덜어줄 전환투자 지원과 신속한 기술 상용화를 위한 조기 실증 지원, 그리고 지역의 재생에너지 전력 인프라 확충 등 실효성 있는 정책 과제가 제도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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