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은 ‘돈만 쓰는 블랙홀'이란 오해를 받아왔습니다. 석탄 발전을 줄이면 전기요금이 오르고,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지역 경제가 무너질 거라는 걱정도 반복돼 왔고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다른 나라들의 경험은 전혀 다릅니다. 돈이 흘러가는 방향을 조금 틀어, 탈석탄과 산업 전환을 이뤄냈죠.
영국은 어떻게 '비싼 풍력'을 세계 1위 산업으로 키웠을까요?
10여 년 전만 해도 해상풍력은 '너무 비싸고 위험하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여기에 공적 자금을 투입했어요. 초기 위험을 정부가 나눠 부담하고, 고정가격계약(CfD) 제도*를 통해 발전 사업자들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게 보장한 것이죠.
이 장치가 마련되자 민간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뛰어들었고, 영국은 단숨에 세계 1위 해상풍력 국가로 올라섰어요. 지금은 영국 전력의 25% 이상을 해상풍력이 담당하고 있고, 수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습니다. 돈의 흐름을 석탄에서 재생에너지로 돌리자 산업의 판도가 바뀐 거예요.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가 전력 시장의 가격 변동에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전력 판매 수익을 보장받고, 소비자는 소비자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정부가 발전 사업자와 차액을 정산하는 제도
석탄 도시 독일 라인란트, 어떻게 새로운 산업 기지가 됐을까요?

독일 라인란트 지역은 유럽 최대 갈탄 광산지대였습니다. 석탄 덕분에 살아온 지역이었기에, 탈석탄은 곧 지역 몰락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죠. 하지만 독일 정부는 달랐습니다. 석탄퇴출법으로 발전소와 광산의 폐쇄 일정을 2038년으로 확정 짓고, 동시에 국책은행 KfW와 기후전환기금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이 돈은 단순히 발전소를 닫는 데만 쓰인 게 아닙니다. 재생에너지 확충, 새로운 산업 유치, 직업 재교육, 인프라 개선에 쓰였어요. 그 결과, 석탄이 빠져나간 지역은 쇠락하지 않고 새로운 산업 기반을 갖춘 도시로 탈바꿈했죠. 돈을 어디에 쓰느냐가 지역의 미래를 결정한 셈입니다.
스페인은 어떻게 단기간에 석탄을 닫고도 사회적 합의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스페인 정부는 탈석탄을 서두르면서도 사회적 반발을 최소화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해답은 정의로운 전환 협정이었어요. 정부는 국채, 특히 50억 유로 규모의 그린본드를 발행해 재원을 마련하고, 노조와 지자체와 함께 협정을 맺었습니다.
노동자들에게는 재교육과 고용 안전망을, 지역에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와 경제 대책을 보장했어요. 덕분에 스페인은 단기간에 석탄발전을 모두 멈출 수 있었고, 지금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고 있죠.
세 나라의 전환, 공통된 비밀은 무엇일까요?
영국, 독일, 스페인 모두 새로운 기술을 발명해서 탈석탄에 성공한 게 아니에요. 공통점은 하나, 돈의 흐름을 바꿨다는 겁니다. 석탄에 묶여 있던 자금을 재생에너지, 지역 전환, 노동자 지원으로 돌리자 사회적 합의도 가능했고, 산업 경쟁력도 오히려 강화됐죠.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요?
한국은 아직 화석 중심의 금융에 묶여 있습니다. 2023년 기준 화석연료에는 174조 원이 투자된 반면, 재생에너지 투자 규모는 25조 원에 그쳤어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같은 공적 금융기관이 화석연료 투자 자금의 60%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 구조를 바꾸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공적 금융자금이 흐르는 방향만 틀어도, 한국도 영국처럼 해상풍력을, 독일처럼 지역 산업 전환을, 스페인처럼 정의로운 전환을 현실로 만들 수 있습니다.
탈석탄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입니다. 산업 전환은 ‘부담’이 아니라 ‘기회'이고요. 결국 미래를 결정짓는 건 '돈이 어디로 흐르느냐'예요. 영국, 독일, 스페인이 이미 보여줬어요. 이제 한국 차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