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활동하다 인도네시아에서 유명해지는 방법
“저희랑 사진 한 장 찍고 싶대요.”
인도네시아 고론탈로를 다녀온 후, 가끔 구글맵에서 그때 들렀던 식당들을 찾아보곤 한다. 혹시나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이 남아 있진 않을까 해서다. 동료인 이탈리아 출신 엘레오노라와 나를 포함한 한국인 팀원, 그리고 일본 단체 세 명 동료가 함께 인도네시아 고론탈로, 그중에서도 외곽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신기했을까. 아이들은 우리를 보며 깔깔 웃었고, 나는 손을 흔들며 장난스럽게 유명인 흉내를 냈다. 엘레오노라는 어느새 “고론탈로에서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인”이 되어 있었다.

발리도 아니고, 고론탈로라니. 평생 언제 가볼 수 있을까 싶은 곳이었다.
“한국이 여기서 생산되는 목재펠릿의 60%를 수입하고 있어요. 고론탈로는 이제 시작이에요. 앞으로 싹 밀릴 거예요.”
기후솔루션 산림팀을 4년간 이끌고 있는 한새님의 설명이었다. 2020년 이후 고론탈로에는 축구장 8천여 개에 달하는 면적의 숲이 사라졌지만, 앞으로 더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기후솔루션에서 지낸 지 3년이 지나며 노트북을 두드리는 내가 기후활동을 하고 있는 게 맞을까 고민하던 시기였다.
“같이 가시죠.”
답답한 마음에 시원한 한 마디였다. 그래. 같이 가자. 인도네시아 고론탈로의 산림파괴 문제를 담아 한국에 알리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고론탈로로 향했다.
고론탈로에 닿다
산림파괴 현장까지는 꽤나 멀었다. 7시간을 날아 자카르타에 도착한 뒤, 다시 고론탈로 시내까지 4시간 정도였다. 그곳에서 산림파괴 현장까지는 차로 멀게는 5시간이었다. 이 외딴곳에 한국인들이 올까 싶었지만, 인도네시아 현지 단체에서 활동하는 크리스(활동명)는 한국인을 종종 본다고 했다. “여기서 보는 한국인들 다 목재펠릿 때문에 오는 거예요”
도착한 산림파괴 현장에서 주민들은 분노에 찬 증언을 쏟아냈다. 인도네시아 현지 단체가 인터뷰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 줬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내용보다 목소리의 떨림이 더 크게 들렸다. 서울에 와서 내용을 확인했을 때 충격은 더했다. 그들은 정확히 ‘한국’을 말하고 있었다.
"저는 일본과 한국 정부가 진실을 알기를 바랍니다. 자국의 에너지원이 파괴된 자연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입니다."



상실된 민주주의와 산림파괴
한 날은 우리 차 뒤로 경찰이 따라붙었다고 한다. 저녁 식당에선 옆 테이블에 앉아 우리 식사자리를 엿들었다고 했다. 우릴 비롯한 일본 단체가 놀란 것과 달리 인도네시아 현지 단체에서 일하는 크리스는 차분히 문제를 해결했다. 다행히 경찰은 하루 정도 미행하다 사라졌지만, 크리스의 차분한 반응을 보니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 인터뷰도 조심해달라고 수차례 당부했다. 주민들 얼굴을 가려달라고, 음성변조 꼭 해달라고.

인도네시아의 상실된 민주주의와 산림파괴는 연결되어 있다. 과거 고론탈로 숲에는 주인이 없었다. 지역 주민들은 주인 없는 숲에서 브라운 슈가를 채취해 팔거나 농경생활을 하며 살았다. 어느 날 갑자기 숲에 들어가려고 보니 경찰들이 막아섰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한국과 일본 기업들에게 숲을 팔기 시작하면서 주민들 모르게 숲의 주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주민들은 숲에서 자유롭게 공존하며 살던 질서를 잃었고, 그 자리엔 새로운 질서가 생겼다. 공권력을 이용해 주민들을 입막음하는 것이었다. 경찰은 정부의 편이었고, 주민들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군가에겐 빼앗긴 땅, 한국 기업에겐 기회의 땅
또다른 산림 파괴 현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인도네시아 단체 활동가들의 무용담이 이어졌다. 인도네시아의 환경단체인 아우리가 누산타라를 이끄는 티메르는 말했다. “이 지역에 갈 때는 목사였고, 저기 갈 때는 선교사였어요. 가짜 신분증만 몇 개예요.”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였다. 본인이 없는 아내와 딸만 있는 집에 경찰들이 찾아와 불시 검문하는 일도 잦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부패는 한국 기업에겐 기회였다. 한국 정부는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이름으로 바이오매스 사업에 수조 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나무는 다시 심으면 배출된 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태양광 발전보다 더 높게 책정된 보조금 때문에 한국의 숲과 나무는 목재펠릿이란 땔감이 되었고, 곧 해외에서 나무를 베고 들여오는 기업들의 수익으로 이어졌다. 그중 나무를 쉽게 벨 수 있는 숲이 많은, 정부가 기업의 편을 드는 나라. 주민들의 반대를 공권력으로 짓누르는 인도네시아는 그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서울에 돌아와 나에게 남은 숙제는, 한국의 전기를 켜기 위해 사라지는 인도네시아 숲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지였다. 약 15시간 떨어진 고론탈로와 서울 사이, 이 외딴곳의 파괴된 숲을 우리가 알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는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심리적 거리일지도 모른다. 산림파괴의 현실은 시차로 따지면 서울보다 4시간 정도 늦지만, 서울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멀고도 먼 미래의 일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얼마나 많은 거리를 좁힐 수 있었을까. 민주주의가 사라진 곳에서는 숲도, 사람도 보호받지 못한다. 인도네시아 고론탈로의 주민들에게 민주주의는 상실되었지만, 우리에겐 아직 남아있다. 말할 수 있고, 의견을 남길 수 있다. 우리의 영상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면 댓글 한 줄이라도 남겨보자. 당신의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순 없겠지만, 그 문장들이 모여 기업과 정부에 닿을 수 있고, 인도네시아 고론탈로와 한국의 거리를 조금 더 좁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