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달 힘들게 모은 돈,
자연의 위기에 투자되고 있다면?
매달 월급 받아서 세금 떼고, 월세 내고, 공과금 떼고… 얼마 남지 않은 생활비지만 그래도 우리는 훗날 집이나 차를 위해, 더 소소하게는 자신에게 선물할 짧은 여행을 위해 저축을 합니다. 또 쪼개서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액수와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러면 향후 10년, 우리의 통장을 넘보는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일까요? ‘다보스포럼’이라고도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은 생물다양성 손실과 생태계 붕괴를 기후변화와 함께 향후 10년 인류가 마주한 3대 위기로 꼽았습니다. 자연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자원과 환경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세계의 국내총생산(GDP) 절반이 생태계 서비스에 의존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은행은 우리가 미래를 위해 모아둔 돈을 어디에 쓸까요? 자연을 보호하고 기후변화를 막는 데 투자해 고객의 예금을 지키고 있을까요? 아니면 숲을 베고, 환경을 훼손해 우리 모두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을까요? 짐작하다시피, 둘 다입니다. 하지만 놀라운 건, 국내 주요 은행이 산림파괴 고위험 산업에 지난 4년간 1조 원을 넘게 쏟아부었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생태계를 보전하는 투자는 자료 수집도 하지 않아 알 수도 없다고 합니다.
생물다양성을 지키고, 자연과 공존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금융’이 필요합니다. ‘더 많은 자연’(Nature-Positive)을 위해 한국과 은행산업이 투자해야 할 몫을 알려드립니다
출처: Nature Positive Initiative
‘1천조 원 챌린지’,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대표적인 약속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파리협정’입니다. 2015년 세계가 서명한 공동의 목표에 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가 이번 세기 중반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마찬가지로, 빠르게 파괴되는 자연을 지키기 위한 거대한 협상 테이블도 있는데요. 바로, 생물다양성협약(CBD)입니다. 지난 2022년 CBD 당사국 총회에서 체결된 ‘자연을 위한 파리협정’을 바로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라고 합니다.
GBF는 훼손되는 자연 세계를 지키고, 이미 사라진 곳을 복원하고, 나아가 2050년까지 인류가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 전 세계 육지와 바다의 30%를 보호하자는 목표를 포함해 무려 23개의 실천목표가 있는데요. 그중에서 이번 주제인 ‘금융’과 관련된 중요한 목표는 18번과 19번입니다.
이들 목표는 2030년까지 자연금융을 연간 2,000억 달러(260조 원) 추가하고, 자연을 해치는 ‘유해보조금’을 5,000억 달러(647조 원) 줄이고자 합니다. 이 두 개를 합해 7,000억 달러, 즉 1천조 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글로벌 자연금융 격차’라고 합니다. 흔히 미국 국방비가 1천조 원이라고 하는데, 상당한 돈이 필요한 셈이지요.
7,000억 달러의 글로벌 자연금융 격차와 해소 방법
한국은 2030년까지 자연금융 3배로 늘려야
자연금융 2,000억 달러 확대 목표에서 한국이 감당해야 할 몫은 얼마일까요? 우리나라의 인구, 경제규모, 생태발자국을 고려해 계산해 보니, 26억 7천만 달러, 즉 3조 7천억 원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총액의 1.33%인 만큼 얼마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세계 모든 나라 중 한국의 면적이 0.07%에 불과하니 단순 비교하면 국토 19배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지요.
이 숫자는 공공과 민간 부문을 모두 포함합니다. 2020년 정부의 생물다양성 관련 지출이 1조 9천억 원이라고 하니, 한국의 추가 몫인 3조 7천억 원을 더하면 2030년까지 총 5조 6천억 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의 자연금융 규모를 세 배로 늘려야 한다는 말이지요. 2030년까지 정부의 생물다양성 지출이 3조 5천억 원으로 증가한다고 해도, 민간에서 최소 2조 원의 투자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만약, (아니길 바라지만) GBF의 실천목표처럼 유해보조금을 제때 줄이지 못한다면? 글로벌 자연금융 격차는 여전할 테니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겠죠!
글로벌 자연금융 격차 해소에 필요한 한국의 자연금융 5조 5,500억 원
산림파괴에 1조 원 투자한 5대 시중은행
자연금융을 늘리는 데 있어 일차적인 역할은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가 맡아야 합니다. 금융기관이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사업에 투자하지 않도록 규칙을 세워야지요. 한편으로는, 실제로 투자 결정을 하고, 자금을 투입하는 시중 은행의 노력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팜유 플랜테이션을 세운다거나, 나무를 베어 전기를 만드는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짓고자 돈을 빌리러 오면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양심에 기대는 것을 넘어, 은행의 투자 정책에 이러한 생물다양성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후솔루션은 국내 5대 민간 시중은행으로 알려진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농협은행의 생물다양성 정책을 분석해 봤습니다. 많은 은행이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투자를 제한할 수 있는 정책은 불충분하거나 아예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특히, 가장 많은 자산을 굴리는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명시적인 산림파괴 금지 정책이 없었습니다. 두 은행은 산림훼손, 탄소배출, 인권침해로 논란이 되는 바이오에너지 사업을 자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장려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자연금융 관련 정책
이들 5대 은행은 2020년~2023년 9월 사이 산림파괴 리스크가 높은 바이오매스, 펄프제지, 팜유, 목재 등 산업에 1조 1천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는 사업에 지원을 피하는 제대로 된 정책이 없었기 때문이었겠지요. 반면, 더 많은 자연을 위한 투자액은 체계적으로 관리하지도 않아 정량적 비교가 힘들었습니다. 오직 농협은행만이 생물다양성 보전 금융 총액을 공개하고 있었지요. 또한, 5대 은행 모두 공개 자료를 통해 찾을 수 있는 사례도 나무심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일회성 성격의 비금융 자원봉사만으로 자연금융에 진심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겠지요.
기후위기 뒤에는 자연위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행히 세계는 자연금융 확대의 중요성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지금, 이 순간(10월 21일~11월 1일)에도, 각국의 대표단은 콜롬비아에서 제16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BD COP16) 협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생물다양성 보전은 아직도 많이 부족한 기후변화 대응보다도 더 적은 관심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기후위기를 전기 아껴 쓰기로 막을 수 없듯, 자연위기도 우리 사회를 만들어 온 경제와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특히 금융은 자연과 기후를 해칠 수도, 지킬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지요. 물론, 수천억, 수조 원을 이야기하는 금융기관의 지속가능성 정책을 들으면 과연 우리의 작은 행동이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때 낯설었던 탄소중립도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이제는 시대 목표가 되었습니다.
생물다양성 보전과 자연금융 확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이 시작입니다. 더 많은 자연을 원하는 시민의 힘은 은행은 물론, 기업과 정부도 바꿀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자연금융 격차 진단 보고서에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