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단체들 감사원 앞 기자회견… “불투명한 결정, 기후·건강 모두 위협”
“50% 기준·5년 유예로 사실상 투자제한 무력화… 전략 수립 과정도 비공개”
질병·보건 전문가 정은경 신임 복지부 장관, 국민 생명·건강 위협하는 '기후위기' 적극 대응해야
전국 시민사회 연대체 ‘국민연금기후행동’이 국민연금의 ‘석탄 관련 기업 투자제한 전략’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이들은 해당 전략의 수립 과정과 내용 모두에서 절차적 투명성과 정책적 타당성이 심각하게 결여돼 있다고 비판하며, 새롭게 임명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도 국민연금 탈석탄에 있어 정책적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22일 오전 11시 국민연금기후행동은 서울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연금의 석탄투자 제한전략에 대한 공익감사 청구 취지를 밝혔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석탄 관련 기업의 에너지 전환을 위한 투자전략’을 의결했다. 이는 2021년 ‘탈석탄 선언’ 이후 약 3년 반 만에 발표된 후속 전략으로, 국내 최대 연기금이자 글로벌 3대 연기금으로서 기후위기 대응에 본격 나설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발표된 전략은 기대와 달리 실효성이 낮고 의사결정 과정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돼, 국민 자산을 다루는 공적 기관으로서의 책임을 저버렸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국민연금은 전략 수립 과정에서 석탄기업 식별 기준으로 가장 완화된 ‘매출 비중 50% 이상’을 택했다. 여기에 ‘5년간 비공개 대화’, ‘국내 적용 5년 유예’ 같은 느슨한 예외조항을 추가함으로써, 전체 석탄 투자 중 70% 이상을 차지하는 국내 자산에는 향후 수 년간 사실상 아무런 제한도 가하지 않게 됐다. 국민연금이 의뢰한 관련 연구용역에서는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매출 비중 30% 이상’ 기준과 함께 실행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정성 기준 및 전환지원 방안 등이 주로 제안됐지만, 국민연금은 그 중 가장 소극적이고 후퇴한 수준의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이날 첫 발언에 나선 기후솔루션의 황보은영 연구원은 “국민연금 석탄투자 중에서도 특히 국내 비중이 더 높은 상황에서 국내 기업에 대해선 2030년부터 절차를 적용하겠다는 건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국민연금은 또 스스로 발주한 연구용역 결과조차 따르지 않은 채, 국제적 기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전략을 택했다는 점에서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 미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략이 어떤 검토 과정을 거쳐 결정됐는지 공개되지 않았고, 외부 이해관계자나 국민이 이를 평가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기회도 제공되지 않았다“며 “이는 공공의 검증을 회피한 결정인 동시에 공공자산을 다루는 기관으로서 국민연금이 공공성과 책임을 스스로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도유라 활동가는 “34조 원 규모의 석탄투자와 실효성 없는 전략은 청년들이 살아가야 할 기후환경과 연금의 장기적 수익 모두를 위협하는 파괴적인 정책”이라며 “지금의 석탄투자 제한전략은 필요성에 대한 이해도, 탈석탄에 대한 의지도 없다는 걸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이 막대한 영향력을 인식하고 진짜 탈석탄 이행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남환경운동연합 조순형 탈석탄 팀장은 “이재명 정부가 약속한 2040 탈석탄을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기후금융의 석탄발전 투자제한 전략”이라며 “국민연금 포트폴리오 내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한국전력공사, 포스코홀딩스, 현대제철 등 기업의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국민연금의 수익성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연금의 석탄발전소 투자로 인한 대기오염과 건강피해는 석탄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더 큰 고통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60+기후행동 강남식 운영위원은 “폭염과 이상기후는 65세 이상 노년층, 특히 취약계층 노년층에게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시급하고 심각한 위협”이라며 “기후위기 증폭과 연금 고갈을 동시에 초래하는 국민연금의 화석연료 투자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국민연금기후행동은 제21대 정부의 '공적 연기금의 책임투자 강화' 공약을 언급하며, 정은경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국민연금 탈석탄을 주도할 것을 촉구했다. 기후위기는 환경 문제를 넘어 폭염 등 기후재난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직접 위협하는 국가적 보건 위기이며, 질병·보건 전문가인 정 장관이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반드시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기후솔루션과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의 앞선 분석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탈석탄 선언 이후 별다른 후속 정책을 내놓지 않은 2021~2022년 동안 석탄발전소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1970명에 달했고, 이 중 10% 이상인 220건은 국민연금의 석탄 투자로 인한 피해로 추정됐다.
또한 앞서 국민연금기후행동 연대체로 활동 중인 기후솔루션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5일 발표한 ‘기후변화-에너지 국민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4%가 ‘국민연금이 석탄발전 투자를 축소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국민연금이 투자 결정을 내릴 때 ‘국민적 공감과 합의’와 ‘ESG’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답변이 주를 이뤘다. 국민연금이 기후위기 대응과 책임투자에 있어 더 분명하고 강력한 탈석탄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들 단체는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며 국민연금의 정책 변화를 촉구했다. 구체적으로 ▲석탄투자 제한전략을 재검토할 것 ▲국민들의 보험료를 관리하고 운용하는 수탁자로서 금융배출량 감축과 장기 수익률 제고를 위한 적극적 주주활동 방안을 마련할 것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국민에게 그 내용을 공개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번 청구에는 약 400명의 국민이 서명에 참여해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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