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가스, 사용할 때보다 생산할 때 메탄 배출 10배 많아
한국은 세계 5대 수입국, 생산국의 메탄 규제 유도할 의무·권리 있어
EU는 ‘정보 요구’, ’성과 기준 부여’ 등 단계적인 규제...한국도 도입해야
세계 5대 석유·가스 수입국인 한국이 국외에서 국내보다 10배 이상의 메탄을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 5000만 톤에 육박하는 이 ‘국경 밖 메탄’을 규제하면 2100년까지 전 세계 기후 피해를 약 200조 원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단순한 환경 규제를 넘어, 경제·사회적 타당성을 제시한 전략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울대학교 유종현 교수와 기후솔루션이 공동으로 연구하고 3일 발간한 보고서 ‘화석연료 수입국 한국의 메탄 감축을 통한 사회적 편익'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이 수입한 석탄·석유·가스의 생산국에서 발생한 메탄 배출량은 약 4670만 톤에 달한다. 연료를 땅에서 추출하거나 운반하면서 발생하는 탈루로 인한 배출량이다. 이는 국내 에너지 부문 메탄 배출량의 10배가 넘는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수입 에너지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약 80배 강력한 단기 온실가스다. 대기 중 체류시간이 12년으로, 빠른 시간 안에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키는 물질이다. 스모그, 호흡기 질환, 작물 수확량 저하 등 다양한 연쇄적 피해를 유발한다. 이 때문에 메탄은 감축 시 기후·보건 분야에서 개선 효과를 빠르게 낼 수 있는 핵심 타깃으로 평가된다.
그림1. 한국으로 수입되는 석유와 가스의 국내 배출량과 생산 단계에서 배출량 비교
이날 함께 발간된 보고서 '석유·가스 수입국 한국의 메탄 감축 기회’는 한국이 수입 석유·가스의 메탄 누출을 규제하는 ‘메탄 수입 기준’을 도입할 경우,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1.5℃ 감축 경로에 따라 전 세계에서 약 192조8000억 원, 한국에서는 약 1조7300억 원 규모의 기후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2℃ 시나리오를 적용하더라도 전 세계 기준 약 165조 원, 국내 1.4조 원의 비용 절감이 기대된다. 이 추정액은 한국이 수입하는 석유·가스가 생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 배출량을 기준으로, 메탄 감축을 통해 기대되는 자연피해 위험 감소, 농업 생산성 향상, 공중보건 비용 절감, 조기 사망률 감소 등 사회 전반의 편익을 반영해 산출했다.
보고서는 메탄 감축 기술 대부분이 비용이 낮거나 오히려 경제성이 있음에도, 정책적 유인이 없어서 실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메탄 규제는 산업계에 일방적인 부담을 주는 규제가 아니라, 감축을 실행 가능케 하고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실용적 접근이라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LDAR(누출 감지 및 복구), VRU(폐가스 회수장치) 같은 기술은 이미 상용화돼 있으며, 대부분 1톤을 감축하는 데 드는 비용이 ‘0’에 수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글로벌 생산국에서의 도입률은 20~30%에 불과하다.
이에 보고서는 한국이 적용 가능한 네 가지 규제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유럽연합(EU)이 실제 도입을 추진 중인 방안들이다. 특히 ‘정보 기반 규제’는 수입 제품에 대한 메탄 배출량 정보를 수출국이 측정·보고·검증(MRV)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EU는 2025년부터 석유·가스 제품에 이 정보를 요구할 계획이다. 나아가 EU는 2030년부터 고메탄 화석연료에 직접 제재를 가할 예정이다.
보고서는 ‘정보 기반 규제’ 외 세 가지 접근법을 추가로 제시했다. ‘처방적 규제’는 수입 조건으로 LDAR와 VRU 등 기술의 설치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들은 비용 대비 효과가 크고, 큰 부담 없이 도입 가능하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높다. ‘성과 기반 규제’는 제품 단위 메탄 배출량에 상한선을 정해 기준을 초과하는 수입품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메탄 감축 실적을 비교 가능케 해 국제 표준화 논의에 기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장 기반 규제’는 기준을 넘는 수입 화석연료에 메탄세를 부과하거나 기존 탄소세 체계에 연계하는 방식으로, 자발적인 감축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성과 정책 유연성이 기대된다.
보고서는 위 네 가지 접근법을 통해 산업계의 수용성을 높이면서, 실질적인 감축 유인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국제 공급망의 수요국이자, G7급 에너지 수입국으로서 가지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이 같은 규제는 국내 정책을 넘어 글로벌 메탄 감축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보고서 '석유·가스 수입국 한국의 메탄 감축 기회’를 쓴 카본리미츠(Carbon Limits)의 이리나 세미키나(Irina Semykina) 박사는 “한국이 자체적인 규제 방안을 마련하는 것보다도 EU 등 국제 기준과 발 맞춰 규제안을 마련할 때 글로벌 메탄 감축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제언했다.
메탄 감축은 기후 대응을 넘어 다양한 정성적 편익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메탄 감축은 대기오염 물질인 오존의 생성을 억제해 스모그와 호흡기 질환 발생률을 낮추며, 이는 의료비 절감과 국민 건강 증진으로 이어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메탄 감축이 조기 사망률을 최대 10%까지 낮출 수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또 국제메탄서약(Global Methane Pledge) 이행에도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어, 국제사회에서의 협상력과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아울러 메탄 감축 시스템과 감축 기술의 표준화를 선도해, 기술 수출의 기회도 마련할 수 있다.
기후솔루션 메탄팀의 노진선 팀장은 “한국은 유럽, 일본 등과 같이 화석연료 거대 수입국이다. 화석연료 수출국에 메탄 배출량 정보를 요구하면, 온실가스 정보 투명성 제고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온도 상승 저지를 위한 초석을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2030년까지 국제메탄서약에 따라 메탄을 30% 감축해야 하고, 2050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메탄 감축이 필수적이다. 특히 앞서 발간된 보고서 ‘우리나라 2030 메탄 감축 로드맵은 1.5도 상승을 막을 수 있을까’에 따르면 수입된 화석연료 생산 시 배출되는 ‘숨겨진 온실가스‘도 감축 대상에 포함해야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이번 보고서는 이 ‘숨겨진 온실가스’ 감축이 가져올 편익을 정량·정성적으로 보여줬다는 데서 유의미하며, 향후 정책의 당위성과 수용성을 높이는 데 활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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