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솔루션에서 HFC(수소불화탄소)를 연구하는 연구원으로서, 지난 2025년 7월 7일부터 11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린 ‘오존층 보호를 위한 몬트리올의정서 당사국 공개작업반 제47차 회의(OEWG47)’에 참석했습니다. OEWG47은 기후변화 대응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몬트리올 의정서의 향후 이행 방향을 가늠하고, 특히 HFC 감축과 관련된 국제 협력을 심화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 회의인 만큼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HFC는 에어컨이나 냉장고에 들어 있는 ‘냉매가스’로, 공기를 차갑게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이 가스는 공기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기기 내부에서 열을 흡수해 냉각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HFC가 기기에서 새어 나와 대기 중으로 방출되면,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강력한 온실가스로 작용합니다.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 효과가 수천 배 이상 강해, 적은 양만 유출돼도 기온 상승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HFC는 주요 온실가스로 분류되어, 전 세계적으로 단계적 감축과 규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요 출입구를 지나면 볼 수 있는 환영 안내판
프리세션부터 폐회까지 다 참여한 첫 다자회의였던 만큼, 행사장 안팎에서의 숨 가쁜 네트워킹, 하루에도 몇 개씩 열리는 사이드 이벤트들이 있어서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만큼의 빡빡한 스케줄을 경험했습니다. 실제 회의장에서 공식적인 논의과정과 의사과정만으로는 회의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각국의 협상과 타협은, 회의 전후의 준비 과정과 개입은 물론 공식적인 자리뿐만 아니라 비공식적인 만남과 대화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환경 보호를 단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여기는 사람들의 노력이 없다면, 어떤 협정도 실효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다자간 협의체는 결국 시민이나 지역의 목소리와 같은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민주적으로 반영하는 과정을 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OEWG 회의에서, 시민사회 활동가야말로 이런 원칙이 실현되는 데 핵심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각국이 단 하나의 표만을 행사할 수 있는 이 회의에서, 시민사회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지가 각 국가의 리더십을 드러나는 기준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국제 회담에서 이 역할은 항상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 의미를 잠시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IA(환경 조사 기관)가 주최한 공식 부대 행사에서 기조 연설을 하는 모습 – 사진 제공에 감사드립니다!

각국의 시민사회 참석자들과 찍은 단체 사진
오존층 보호가 기후변화 대응의 숨은 일등 공신인 이유
몬트리올의정서는 “가장 성공적인 환경 협정”으로 자주 언급되며, 심지어는 “가장 성공적인 국제 협약”이라고까지 평가받습니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비준했고, 각국의 이행률도 거의 완벽에 가깝습니다. 덕분에 오존층 파괴 물질(ODS)은 98% 이상 퇴출되었고, 그 결과 오존층은 회복 궤도에 올랐습니다. 덤으로 피부암과 백내장 예방 효과로 인류 전체에 최소 1.8조 달러 규모의 건강상 편익도 따랐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익히 알려졌지만 대중적으로는 다소 덜 조명되는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몬트리올의정서가 기후변화 완화에도 지대한 기여를 해왔다는 점입니다. 의정서가 규제한 CFC(염화불화탄소)와 HCFC(염화수소불화탄소) 같은 오존층 파괴 물질은 동시에 강력한 온실가스이기도 했습니다. 속칭 프레온가스라고 불렸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CFC는 CO₂(이산화탄소)보다 무려 1만 배 이상 강력한 온실 효과를 가집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몬트리올의정서는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약 10억 이산화탄소 환산 톤의 배출을 막았습니다. 이 수치는 교토의정서가 2008~2012년에 달성하려 했던 연간 감축 목표보다 5배 이상 큽니다. 모든 국가가 해마다 목표치의 5배를 감축한 것과 같은 셈입니다. 몬트리올의정서는 이미 그런 성과를 이뤄낸 것입니다.
예측에 따르면, 이 협정은 2100년까지 최대 1.5℃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피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2016년에는 ‘키갈리 개정’을 통해 온실가스로 지정된 HFCs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하면서, 이 협정은 진짜 기후 협정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이는 에너지 효율 향상이나 누출 최소화와 같은 간접 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보수적인 수치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합니다. 협정 하나가 1.5℃ 목표 달성에 이바지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과’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몬트리올의정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칙들
국제 협정의 성공 여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평가할 수 있지만, 몬트리올 의정서만큼은 그 성공을 가능하게 한 몇 가지 핵심 원칙이 있었습니다.
예방원칙(Precautionary Principle)
1980년대 초 의정서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 CFC가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과학적 증거는 아직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정책 결정자들은 ‘완전한 과학적 확신이 없더라도 심각하거나 되돌릴 수 없는 환경 피해가 우려된다면, 예방 조치를 먼저 취해야 한다’는 철학에 동의했습니다. 이처럼 과학의 확실성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 행동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공동이행책임과 차등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개발도상국에는 10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으며, 선진국이 먼저 이행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키갈리 개정에서도 비슷한 원칙이 적용되어, 더운 지역에 위치한 국가들은 더 긴 유예기간을 부여받고, 추운 나라들은 더 빠르게 감축 의무를 지게 되었습니다.오염자 부담 원칙(Polluter Pays Principle)
의정서 이행을 위한 다자간 기금(Multilateral Fund)은 선진국이 재원을 부담하고, 개발도상국이 친환경 대체물질 전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이는 오염을 유발한 주체가 정화 및 예방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의 구체적인 실현 사례입니다.
몬트리올 의정서(MOP)에서 이제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로, 그리고 한국의 역할은?
몬트리올 의정서는 오존층 파괴 물질이자 강력한 온실 가스인 물질의 단계적 폐지라는 명백한 성공으로 사실상 기후 협약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그러나 2016년 키갈리 개정안을 통해 HFC가 규제 물질 목록에 추가됨으로써 몬트리올 의정서는 단순히 형식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기후 협약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 정부 대표들의 인식에는 아직 반영되지 않은 듯 합니다. 한국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HFC 감축 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 회의는 한국이 세계 4~5위의 수출 규모를 가진 난방, 환기, 냉방 및 냉동(HVAC&R) 산업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대표들이 수많은 연락 그룹 회의와 부대 협상을 참석하느라 비어 있는 주 회의장
앞으로 다자간 기후 협정 체제가 계속 확대되고 이러한 유해한 온실가스를 규제하기 위한 새로운 메커니즘을 도입할수록, 한국은 이러 논의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논의는 주권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이루어지는 최고 수준의 협의체입니다. 이런 논의에 참여함으로서 기후변화 완화에 필요한 통찰력을 얻고, 한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걸맞게 산업의 탈탄소화 및 녹색 전환 전반에서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다자주의(여러 국가가 국제기구나 협정을 통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가 쇠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몬트리올 의정서에서 다자주의가 여전히 활기차고 강력하게 기능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탄소중립 사회로 향하는 우리 공동의 노력을 이루는 데 다자주의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된다면 지구를 회복의 길로 다시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전진해야 할 때입니다.

행사장에서 태극기와 함께 찍은 박범철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