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책 [입장문] 유연한 재생에너지 시대, 뻣뻣한 전력수급기본계획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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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재생에너지 시대, 뻣뻣한 전력수급기본계획: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엔 무계획인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1월 12일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최종 확정되었다. 향후 15년간의 전력 수요 예측과 그에 따른 공급 설비 확충 계획이 담겨있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은 정부가 국가 경제를 위해 어떤 동력을, 어떻게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는 선언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기본은 실무안 발표 직후부터 ‘탄소중립’이라는 전 세계적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가받았고, 이러한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최종 확정되었다. 이번 전기본이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에 전념하지 않겠다는 선언문으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1. 탄소중립 시대, “현실성”으로 무장한 현실적이지 못한 전력수급기본계획
21.6%라는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는 날로 높아지는 한국의 국가적 위상에 반하는 아쉬운 수치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반대로 가는 목표다. 

한국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은 기후위기가 현실화되고 국제 에너지 위기가 장기화함에 따라 재생에너지를 야심 차게 늘려나가고 있다. 그 어떤 국제 정세에도 흔들리지 않는 깨끗하고 저렴한 바람과 태양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국의 태양광 및 풍력 발전비중은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에 머물러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되려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이하 NDC)에 따른 기존 목표인 30.2%보다 대폭 줄여 21.6%로 설정했다. 

정부는 “현실 가능성”을 고려하여 재생에너지 비중을 하향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선진국들도 재생에너지 확대가 “현실적”이어서가 아닌 에너지 안보 강화 및 국가의 미래를 위해 꼭 “해야 하는” 것이기에 결단을 내렸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에너지안보를 강화하고 국가의 미래를 고려하면 재생에너지의 도전적인 확대가 오히려 “현실적”이다.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21.6%로 한국이 G20을 넘어 G7에 버금가는 선진국으로 도약할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다. 

2. RE100 시대, 기업들에 한국에서 떠나라고 떠미는 전력수급기본계획
21.6%라는 2030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는 “모든 정부부처가 산업부화 되어야”한다는 현 정부의 경제중심 정책 드라이브와도 모순된다. 기업의 전력수요를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캠페인인 RE100에 가입하는 기업들이 빠르게 늘었고 협력 업체까지도 RE100 준수를 요구받고 있다. 지난해 국내 최고 에너지 다소비 기업 중 하나인 삼성전자가 RE100을 선언하며 더 많은 국내 기업들 역시 재생에너지를 찾게 됐다. 

전기본에는 “RE100 하고 싶어도 재생에너지 공급이 부족해서 하기 힘든 현실”이라는 기업들의 목소리가 녹아들지 못했다. 전 세계가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장려하는 가운데 오히려 산업부가 전기본을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에 제동을 걸어 우리나라 산업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기업들로부터 '국내에선 재생에너지 조달이 어려우니 국외로 나가라는 말이냐'는 소리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리쇼어링이 화두인 현 국제 정세에서 우리나라는 부족한 재생에너지로 하마터면 오프쇼어링이 쟁점이 될 수 있다.

3. 저무는 화석연료 시대, 좌초될 자산에 되려 돈을 대겠다는 전력수급기본계획
이번 전기본에 따르면 화력발전(석탄 및 가스) 비중은 2030년에 무려 43%에 달할 전망이다. 국제사회에서는 탄소중립을 위해 선진국의 경우 2035년까지 전력부문에서 탈탄소를 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전문가들은 한국이 탄소중립을 하려면 석탄발전은 2030년까지, 가스발전은 2035년까지 전면 퇴출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정부는 2030년에도 국가 전력의 절반가량을 화력발전으로부터 끌어오겠다는 것이다. 
또한 ‘탄소 없는 섬’ 목표를 내세운 제주에서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300MW급의 대형 신규 가스발전소 건설 계획이 제주 수급 계획에 포함됐다. 수소 혼소를 통해 온실가스를 저감하겠다는 계획이 반영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제주도가 재생에너지 공급량이 충분한 상황임에도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미미하고 기술이 아직 미숙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부문에 투자를 통해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다한 화력발전 자산의 수명을 연장해주겠다는 결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여전히 화력발전을 통해 미래의 전력수급을 감당하겠다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제주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대될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를 보다 심화해 시장 생태계를 위축시키고 화력발전 자산이 존속될 수 있다는 잘못된 정책적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4. 결론 
재생에너지 시대라는 미래에 어울리지 않은 전기본을 바탕으로 한 에너지 정책을 숙고해야 한다. 이제는 기후위기 해결이라는 시대적 사명과 재생에너지라는 신무역장벽 앞에 재생에너지의 혁신적인 보급을 위해 선진화된 전력시장 시스템을 마련할 때다. 

구시대적 화력발전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굼뜨고 뻣뻣한 전기본은 유연한 재생에너지의 특성에 호환되는 에너지정책이 아니다. 전통적인 화력발전은 정부 정책에 의해 중앙집중적으로 보급되는 단방향 공급체제인 반면 재생에너지는 양방향 수요관리 체제이기 때문이다. 단방향식 중앙 전력계획이 재생에너지의 보급을 임의로 제약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편의주의적으로 현재의 계통 수준을 핑계로 재생에너지 목표를 낮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재생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혁신적이고 유연한 전력계통 운영 정책을 내놓을 때다. 재생에너지의 관리기술과 저장방법을 개선하여 어떻게 신뢰할 수 있고 깨끗한 전력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길이 재생에너지 확대의 실현 가능성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현재와 같은 계획대로라면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른 2030년 NDC 달성이 불투명하다. 환경부마저 전기본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자료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지적했으나 온실가스 배출 감축 전망치에 대한 근거와 감축 이행계획은 결국 발표되지 않았다. 근거 없이 무작정 NDC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실”로부터 가장 동떨어진 계획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