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시장 [보고서 발간] 뻣뻣함을 유연함으로 바꿀 열쇠 ‘유연성 자원’…재생에너지 위한 전력계통, 업그레이드 방안은?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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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 화력발전 중심의 전력시장과 계통…재생에너지와 유연성자원엔 불리해
“소규모·분산형 에너지 및 유연성 자원 중심 전력시장과 다층적 시장 구축해야”

 

기후위기에 국가적인 대응을 하고 수출 위주의 산업 경쟁력을 이어가려면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구조로 변화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분산되고 중소형으로 발전된다. 날씨에 영향을 받아 변동성이나 간헐성이 단점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그 틈새를 막아주는 ‘유연성 자원’이라는 기술적 대안이 있다. 이미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선진국에서 그 역할을 톡톡히 증명해내고 있다.

22일 기후솔루션은 보고서 ‘에너지 전환의 열쇠: 한국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유연성 자원 활성화 정책 제언’을 발간해 유연성 자원에 대한 이해와 현황을 알리고 유연성 자원이 적극 도입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폈다.

보고서는 기후에 대응하는 동시에 신기술이 도입되는 등 다원화되는 전력계통에 맞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먼저 대규모·중앙집중형 화력발전 중심의 전력시장에서 소규모·분산형 재생에너지 및 신규 유연성 자원 중심 전력시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또 실시간 시장, 보조서비스 시장 등 다층적인 시장을 구축하는 등 전력시장을 고도화해 유연성 자원이 자리 잡을 수 있게 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보고서 저자인 기후솔루션 김자현 연구원은 “이대로는 한국은 공중전화 쓰던 시절의 시스템으로 5G 통신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현재 한국 전력시장은 주요 에너지원으로 부상하는 재생에너지를 위해 유연성 자원에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화력발전 중심 계통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유연성을 제공해오던 가스발전에 경제성을 보장해주는 구조”라며 꼬집었다. 이어 “새로운 전력 시스템에 걸맞은 다양한 신규 유연성 자원에 적절한 가격신호를 전달하도록 공평하고 투명한 선진 전력시장 구조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보고서 내용을 기반으로 유연성 자원에 관한 내용을 질문과 답변으로 정리했다.

Q. 유연성 자원을 더 쉽게 설명하면?
유연성 자원은 전력계통에서 전기 공급과 소비를 유연하게 해주거나 유연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기술과 자원을 총칭한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유연성 자원은 에너지저장장치(Energy Storage System, ESS)로 이는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에 전기를 저장해두고 발전량이 적을 때 출력해준다. 전력 공급이 남는 심야 시간에 물을 끌어올려 위치에너지로 전환했다가 전력 수요가 큰 낮 시간대에 수력으로 발전하는 양수발전도 같은 개념이다. 물리적인 자원이 아니라 전력시장을 활용한 방식과 스마트그리드를 활용한 자원도 있다. 전기 소비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전력 소비 시간대를 바꿔 전력계통을 안정적으로 운영케 하는 수요반응자원(Demand Response)도, 정보 통신 기술(ICT)과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주변에 흩어져 있는 전력을 모아뒀다가 필요할 때 전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가상발전(Virtual Power Plant)도 유연성 자원 중 하나다.

유연성 자원은 재생에너지의 변동성과 간헐성을 보완해준다. 급격히 요동치는 전력 공급과 수요 그래프를 상대적으로 균등하게 하고, 경직된 계통망과 비교해 다양한 외부요인으로부터 유연하게 대응해 계통의 안정성을 유지케 한다. 유연성 자원은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계통이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꼭 필요하다.

 

그림1
그림 1 중앙집중형 전력계통은 분산되고 유연하게 개선되고 있는 추세다

 

Q. 한국에서 유연성 자원의 현황은? 
한국의 전력계통에선 재생에너지와 유연성 자원이 활성화되기 위한 제도가 미흡해 결국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가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며 국가 온실가스 배출 목표(NDC)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8.6%p 줄였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소극적인 정부의 제스처는 자연스럽게 유연성 자원까지 이어지고 있다. 

Q. 유연성 자원에 불리하다면, 그 이유는?
한국의 전력망은 대규모·중앙집중형 화력발전 중심으로 구성됐다. 그에 따라 전력시장은 화석연료 발전원 중심으로 가치가 산정됐다. 기저발전원이라든지 첨두부하와 같은 전통적인 개념도 이런 바탕에서 나왔다. 화력발전 중심의 전력시장은 발전사업자가 손실을 보지 않게 하는 총괄원가 보상원칙을 적용하고 있고, 발전사 입찰가가 아닌 연료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변동비 반영시장의 특징을 띤다. 이런 구조에서 새롭게 등장한 유연성 자원은 제대로 된 가치평가를 받기 어렵고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가 가장 두드러지는 지점은 용량요금과 보조서비스 정산금이다. 얼마나 큰 용량을 안정적으로 제공하느냐에 따라 정산받는 용량요금은 기존에 전통적 유연성 자원이었던 가스발전에 제공된다. 그러나 더 효과적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용량을 제공할 수 있는 ESS나 새로운 유연성 자원에는 지급되지 않고 있다. 계통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도록 주파수 조정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가로 받는 보조서비스 정산금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전력시장 정산구조 내 불공정성은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유연성 자원에 경제적 유인을 거의 제공하지 못한다. 이런 구조에서 한국의 전력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하지 못하고 구식의 시스템을 고수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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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화력발전에 기울어진 전력시장에선 재생에너지와 유연성 자원의 공정한 경쟁은 어렵다


Q. 전력시장에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현행 전력시장은 하루 전에 발전사들로부터 공급 가능 용량을 입찰받는 유일한 현물시장뿐이다. 다양성을 반영하기 어려운 단층적인 구조다. 과거 화력발전 위주의 단순한 전력계통이었을 때는 유효했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재생에너지를 비롯해 다양한 발전원의 시장 참여가 늘어나면서 하루 전 단일 현물시장으로는 계통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워졌다. 또 이러한 시장 여건으로는 유연성 자원이 화석연료 발전과 동등하게 경쟁을 벌일 수 없고, 유연성 자원이 시장에 참여할 경제적 유인도 부족하다. 

이런 이유에서 보고서는 실시간 시장, 보조서비스 시장 등 다층적인 시장을 구축하여 전력시장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Q. 유연성 자원이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한 사례가 있다면?
가장 많은 전력 수요(첨두부하)를 대비하려면 추가로 가스발전소를 짓거나 수요반응자원을 활용하는 두 가지 대안이 있다. 그러나 수요반응자원에 대한 대우와 가치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다. 결국 가동률이 높지 않을 수많은 가스발전소를 예비력을 갖추겠다는 명분으로 짓고 있다. 수요반응자원에 대한 적절한 대우를 하고 가스발전과 합리적인 경쟁을 벌일 수 있었다면 신규 가스발전소가 지어지지 않을 것이다. 가스발전 설비를 구축하는 데 들어가는 기회비용도 에너지 전환에 투자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잠재적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다.

제주도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 제주에선 재생에너지 발전이 과다하다며 출력을 제어하는 일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 기존 화력발전설비의 용량을 동기조상기로 대체하는 동시에 ESS를 구축하여 출력제어로 버려지는 재생에너지를 저장한다면 제주는 화석연료 발전 의존도를 급격히 낮출 수 있다. 재생에너지 출력제한 문제도 해결되며 ‘2030년 탄소 없는 섬’ 달성에도 급속히 가까워진다. 그러나 유연성 자원에 적절한 대우가 없어 참여 유인이 부족한 상황이다. 제주도엔 충분한 양의 ESS가 추가되거나 수요반응자원이 활용되지 못하고 이 대신 전력 상당량을 가스와 중유를 태우는 화력발전설비를 통해 생산하고 있다. 문제는 반복될 양상이다. 제주도에는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문제 해결은 요원하고 오히려 2036년까지 600MW짜리 가스발전소를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