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권거래제 현행 유지 시EU에 2040년부터 연간 1910억원 내야···배출권거래제 개정 및 수소환원제철 전환하면 유럽탄소세 74% 감축 가능
정부,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2026년부터 20%p씩 높이면 연간 66.5조 원, 누적 621조 원의 수익 확보 가능
“EU CBAM 등 녹색 무역 관세로 타 국가에 지불해야 할 금액을 국내로 걷어들이고, 탄소중립 기술을 개발하는 온실가스 감축 재원으로 활용해야”
철강업계가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로 인해 2040년에는 EU에 탄소배출 대가로 연간 1910억 원을 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배출권거래제 개편과 탄소 저감 생산 기술이 결합한다면 CBAM 무역 관세의 74%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배출권거래제를 취지에 맞게 개편할 경우 확보할 수 있는 우리의 기후대응 공적기금은 연간 66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13일 국내 기후단체 기후솔루션은 ‘무상배출을 중단하라: 시장 활성화 시나리오 분석을 통한 배출권거래제 개선 방향 제안’ 보고서를 내고, 현행 배출권거래제(Emission Trading System, ETS)의 문제점을 짚는 한편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환경부와 기획재정부가 2026~2030년 제도를 규정하는 ‘제4차 계획기간’ 개편의 기본계획을 올해 말까지 수립해 야 하는 시점을 겨냥해 낸 보고서다.
정부는 기업들에게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배출허용량(배출권)을 정해주고, 기업들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양과 상응하는 배출권을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정부에서 할당해준 배출량을 기준으로 온실가스를 더 많거나 적게 배출한 기업들이 시장을 통해 배출권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를 배출권거래제라고 한다.
보고서는 이 같은 배출권거래제가 산업의 탄소 배출 감축 기능을 하지 못하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배출권거래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이유로 과도한 배출허용량과 높은 무상할당 비중을 꼽았다. 실제로 배출권거래제 제3차 계획기간 시작인 2021년부터는 산업 전체적으로 잉여배출권이 발생했다. 이는 기업들이 감축 노력을 하지 않아도 배출권이 남을 만큼 배출허용량을 많이 할당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정부는 현재 탄소집약적이고 수출비중이 높은 산업에게 무상으로 배출권을 할당해 주고 있는데, 배출권 전량을 무상으로 받고 있는 철강 기업들은 이러한 공짜 배출권으로 돈까지 벌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제도 도입 이래 지금까지 배출권 판매로 약 1965억 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배출권 자체의 공급량이 많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 배출권의 가격은 유럽연합 배출권 가격의 10분의 1도 못 미치는 8000원대로 형성돼 있다. 배출권의 가격이 싸다 보니,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에 투자하기보단 배출권을 사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로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한 2015년부터 2022년에 이르기까지 산업부문의 배출량은 거의 감소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이하 CBAM)가 본격 시행되면서 이러한 한국의 배출권거래제의 문제점이 산업의 감축 부진에서 나아가, 무역 관세를 통한 실제 사업 타격으로 직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CBAM은 철강 등 탄소 집약적인 제품을 유럽연합으로 수출할 때 생산과정에서 배출한 탄소량에 상응하는 인증서 구매를 의무화한 일종의 관세 제도다. EU는 2026년부터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CBAM 항목의 무상할당을 폐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BAM 대상 품목은 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전력, 수소 부문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CBAM 품목 EU 수출량 중 철강이 차지하는 비중이 89.3%에 달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대(對) EU 철강 수출량은 317만t, 철강 제품은 22만t이 수출되고 있다. 보고서는 CBAM 철강 제품의 평균 탄소배출량을 계산한 결과 현재의 전량 무상할당 및 고로(용광로)-전로 공정 유지 시 우리나라 철강업계는 EU에 CBAM 철강 제품에 대한 인증서 비용으로 2040년엔 연간 약 1900억 원을 지불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수출품 중 하나인 자동차 제조의 핵심 자재 평판압연의 CBAM 인증서 비용은 2040년까지 제품 톤당 최대 86만7719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CBAM인증서는 생산국에 지불한 탄소비용을 상쇄해 주게 되어 있다. 자국에 탄소비용을 지불한다면 그에 상응하여 유럽연합에 내야 할 비용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경우 배출권을 현행 전부 무상할당으로 받고 있기 때문에 상쇄할 탄소비용이 없다. 보고서는 “철강 산업 부문 전반이 100% 무상할당을 받고 있고 배출권 가격이 매우 낮은 우리나라의 경우, EU의 방침으로 무역 관세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예상이 현실화될 것”이라 경고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유상할당 비중을 높이면 온실가스 감축뿐만 아니라 유상할당으로 인한 수익을 기업의 저탄소 기술에 재투자해 CBAM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유상할당 수익 확대 세 가지 시나리오 ▲현 정책 시나리오(2026 부터 매 계획기간 연간 유상할당 비중 15%p확대) ▲NDC 상향 시나리오(2026년 유상할당 비중 20%를 시작으로 매년 10%p씩 확대) ▲탄소중립 시나리오(2026년 유상할당 비중 20%를 시작으로 매년 20%p 적극적으로 확대)를 제시했고, 시나리오별 배출권 평균 가격은2040년까지 약 8만1000원(현 정책 시나리오)에서 13만6000원 (탄소중립 시나리오) 사이에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시나리오 별로 정부가 확보할 수 있는 2040년 연간 유상할당 수익은 ‘현 정책 시나리오’의 경우 약 32.4조 원,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경우 약 66.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따를 경우에는 배출권거래제 제4차~6차 계획기간인 2026년부터 2040년까지 누적 621조 원의 유상할당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배출권거래제 개정 시나리오 (배출권 공급 및 무상할당 비중)>
<배출권 할당 대상 전체 유상할당 수익 전망>
특히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경우 2033년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철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술 ‘수소환원제철’ 상용화를 가정한 시나리오로, 이 같은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따를 땐2040년 CBAM 철강 제품 인증서 가격은 약 500억 원으로, 무려 74%가 절감된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수소환원제철에 대한 정부 지원액은 2685억 원으로 선진국 지원 규모[1]에 비해 매우 낮은 상황이다. 따라서 보고서는 유상할당 수익을 탄소중립 재원에 활용하고, CBAM의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의 저자인 기후솔루션 김다슬 연구원은 “세계는 이미 탄소중립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배출권거래제의 개편으로 국내에서 탄소 배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당장은 산업에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이는 EU CBAM 등 점차 확대되는 녹색 무역 관세로 타 국가에 지불해야 할 금액을 국가 재원으로 걷어들이는 것과 같다. 이러한 재원을 온실가스 감축과 지역경제 전환 기금으로 활용하면 오히려 국가 경쟁력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 수소환원제철 지원 규모: 독일 약 10.2조원, 일본 약 4조 원, 미국 약 2조 원, 스웨덴 약 1.4조 원 *기후솔루션 보고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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